2026-09-14 09:02

여울목/ 명분과 근거 없는 항만공사 통합 위험하다



정부가 4대 항만공사를 통합하기로 해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항만 발전을 위축시킬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9월3일 109개의 공공기관을 감축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기능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도 16곳을 5곳으로 통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를 한국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관리 울산항만관리 부산항보안공사 인천항보안공사 여수엑스포관리를 한국항만보안시설공단 ▲국립울진해양과학관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국립해양박물관을 한국해양문화진흥원으로 각각 통폐합하고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을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병합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항만공사의 경우 4개 기업을 하나로 통합해 정책과 기획 기능을 일원화하고 항만공사가 있던 지역에 지사를 둬 특화사업을 수행토록 할 방침이다. 정부에서 항만공사 통합을 추진하는 건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1년 이후 15년 만이다.

재경부 발표 이후 남재헌 해양수산부 차관은 지난 8일 부산 본부에서 4개 항만공사 사장을 만나 통합법인 추진단 구성 방안과 현안, 일정 등을 논의하는 등 발 빠르게 기관 통합 작업에 착수했다. 남 차관은 이 자리에서 “항만공사의 성공적인 통합을 위해 지자체, 관계 기관, 이해 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방침을 두고 해당 지역과 항만공사 노조의 반발이 거세 항만공사 통합이 원활히 이뤄질지 미지수다. 지역사회는 항만공사 통합이 지방 분권을 훼손하고 각 항만의 독자적인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인천항발전협의회 인천항만물류협회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인천 지역 16개 시민단체는 성명에서 항만공사의 주요 의사결정 권한이 한 곳으로 통합되면 독자적으로 인천항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를 결정하지 못해 자생 기반이 크게 약화할 거라고 정부의 분별없는 항만공사 통합 추진을 비판했다.

부산항발전협의회와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는 “글로벌 공급망의 거점인 항만공사의 통합은 다른 공기업과 달리 국익과 외교적 측면에서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며 통합 가부와 의견을 묻는 국민 공청회와 국회 논의를 거치고 현장과 지역 사회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급기야 부발협과 인발협 인천경실련 울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여수광양발전협의회 등 4개 지역 300개 시민단체는 지난 7일 각 지역에서 일제히 기자회견을 열고 항만공사 통합 추진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항만공사의 통합이 단순한 공공기관 조직 개편이 아닌 국가 항만·해양 경쟁력과 해운·물류산업의 미래, 지역 경제와 지방분권의 방향과 직결된 중대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기능 중복과 과당 경쟁이 4대 항만공사 간에 나타나지 않아 통합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컨테이너·환적항만, 인천항은 수도권 국제물류 관문, 울산항은 국가 에너지산업을 뒷받침하는 에너지항만, 여수광양항은 철강·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을 지원하는 산업항만으로 차별화된 성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과 배후산업, 물동량과 발전 전략이 서로 다른 항만을 하나의 거대 조직으로 묶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지역사회는 질타했다. 

 


통합 대상인 항만공사 노조도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4개 항만공사 노조 위원장들은 8일 세종시 재정경제부 청사 앞에서 통합 철회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노조는 재경부가 9월3일 통합을 발표한 뒤 이튿날 편익 분석에 착수했다는 언론 보도를 들어 효과를 분석하고 통합을 결정한 게 아니라, 통합부터 결정하고 그 효과를 뒤늦게 찾고 있다고 쓴소리했다.

앞서 항만공사 통합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는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에서 연구용역을 실시한 뒤 효과가 없는 걸로 나오자 통합 정책을 백지화했다. 2011년 항만공사 운영 개선 대책 방안을 연구한 중앙대는 4개 항만공사 통합으로 발생하는 비용 절감 규모가 연간 50억원에 불과해 소요 비용 등을 고려할 때 통합 효과가 크지 않고 조직 효율성도 기존 체제에 비해 하향 평준화한다고 평가했다. 

노조는 항만공사가 애초에 중앙집권적 항만관리에서 벗어나 항만별 자율성과 전문성, 지역 책임성을 높이려고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을 들어 무분별한 공기업 쪼개기와 민영화를 차단하기 위해 추진하는 공공기관 통합 정책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항만공사법에 항만별로 항만공사를 설립하도록 규정해 태생적으로 배후 경제권과 산업구조, 취급 화물과 고객, 발전 전략이 4개 항만마다 모두 다른 상황에서 통합 본부를 설립할 경우 옥상옥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기능 중복과 과당 경쟁이 항만공사 간에 나타나지 않아 통합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시민단체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세계 주요 항만들 역시 우리나라처럼 항만별 운영 주체가 지역과 시장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지역 분권형 운영 체계, 이른바 항만공사(PA) 체제를 지배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도 노조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노조는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 개혁 방안에서 제시한 K-마루처럼 항만공사도 해외거점과 마케팅, 정보시스템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협업할 수 있는데도 이런 대안을 찾지 않고 되돌리기 어려운 물리적 통합을 선택했는지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따져 물었다. 

지역사회와 노조의 주장처럼 항만공사 통합은 근거와 명분이 매우 떨어진다. 항만공사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지역사회에 항만을 돌려주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항만공사 체제에 독립채산제를 채택한 이유다. 결국 항만공사 통합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 정책을 같은 민주당 정부에서 뒤집는 것이자 5극3특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지방 균형 발전 정책에도 역행하는 행정인 셈이다.

아울러 국내 항만들이 중국과 싱가포르 등 글로벌 항만과 환적 허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기관 통합으로 의사결정이 뒤처지고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항만공사 통합이 항만공사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라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점도 숙제다. 정일영 허종식 배준영 등 인천 지역 국회의원과 부산시의회 등 여야를 막론하고 항만공사 통합에 반대하고 있어 항만공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을 걸로 보인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항만공사 통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 개혁이란 명제에 매몰돼 정작 지방분권을 훼손하고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항만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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