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자에 이어>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판례는 해상운송 계약 및 컨테이너 사용료와 관련된 분쟁에서, 운송계약의 당사자와 컨테이너 반환 및 사용료 지급 책임에 대해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가. 원고는 해운업 등을 목적으로 등기한 주식회사이고, 피고 B는 ‘D’이라는 상호로 잡자재 무역업 등을 하는 개인사업자이며, 피고 주식회사 C(이하 ‘피고 회사’라 한다)는 해상화물 운송 및 주선업 등을 목적으로 등기한 주식회사이다.
그리고 E은 ‘F’이라는 상호로 무역업·상품운송중개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이다.
나. 피고 C는 E로부터 가죽끈 화물(36,480kg)의 해상운송 주선을 의뢰받아 원고에게 인천항에서 베트남 하이퐁항까지의 운송을 요청했다.
다. 원고는 2023년 4월21일 빈 컨테이너 두 대를 제공하고, 화물을 운송해 2023년 5월26일 하이퐁항에 도착시켰으나 수하인이 화물을 인수하지 않아 컨테이너가 반환되지 않았다.
라. 위 과정에서 원고는 해상화물운송장을 발행했다.(원고는 해상화물운송장이 상법 제862조에 따라 발행한 선하증권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원고가 발행한 문서에 ‘BILL OF LADING’이라는 영문이 적혀 있기는 하나, 이와 함께 ‘WAYBILL’이라는 영문이 적혀 있고, 원고 내부적으로 작성·관리한 이 사건 화물의 추적내역에도 ‘Seaway-Bill’이라고 적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상법 제863조에 따른 해상화물운송장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마. 이후 원고와 피고 C 간 이메일 교섭에서 사용료 감액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바. 원고는 2024년 5월16일 피고들을 상대로,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인도와 이미 발생한,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사용료(보관료와 체화료)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3. 법원의 판단
1) 컨테이너 인도 및 사용료 지급 책임 성립
가) 피고 B에 대한 청구
피고 B가 이 사건 화물의 실제 송하인으로서 원고와 사이에 이 사건 화물운송장에 적힌 내용의 해상운송 계약(이하 ‘이 사건 운송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했고, 원고가 피고 B에게 (이 사건 운송계약에 부수해) 이 사건 컨테이너들을 제공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는데, 피고 B는 화물의 실제 송하인으로 원고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들을 인도(반환)하고 적정한 사용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나) 피고 C에 대한 청구
운송주선인은 자기의 명의로 물건운송의 주선을 영업으로 하고(상법 제114조), 원칙적으로 자신 명의로 운송인과 운송계약을 체결하며 운송인에 대해 직접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한다(상법 제123조, 제102조).
피고 C는 이 사건 운송계약에서 단순히 송하인의 대리인에 불과하므로 계약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① 갑 제1호증의 기재에 따르면, 이 사건 화물운송장의 송하인(Shipper)란에 ‘C. O’이라고 적혀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선하증권의 송하인란에 반드시 운송계약의 당사자만을 송하인으로 기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넓은 의미의 하주를 송하인으로 기재할 수도 있으므로(대법원 2000년 3월10일 선고 99다55052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이 사건 화물운송장의 송하인란 기재는 ‘D’ 내지 피고 B가 이 사건 화물의 하주이고 피고들의 내부적인 관계가 운송주선 내지 위탁 관계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점, ②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이 사건 화물운송장과 별개의) 운송계약서가 작성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원고와 피고 C가 직접 이 사건 화물의 운송계약조건을 교섭하고 운송료를 지급하는 등 이 사건 운송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이며, 이 사건 운송계약의 체결이나 이행 과정에서 피고 B나 E이 개입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는 점, ③ 이 사건 화물이 하역항에 도착한 뒤에도 수하인이 이를 인수하지 않자, 원고는 피고 C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현지 상황 등을 확인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피고 C도 원고에게 (자신이 이 사건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아님을 주장·항의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체화료 감액 등을 요청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 C는 자신의 명의로 원고와 이 사건 운송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 C는 이 사건 운송계약의 당사자로서 하이퐁항에 도착한 이 사건 화물을 수령하거나 수하인으로 해금 수령하게 한 뒤 원고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를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이같이 해상운송인이 화물운송을 위해 송하인 측에게 (빈) 컨테이너를 사용하게 하는 경우에는, 거래 관행상 일반적으로 컨테이너의 운송이 완료된 후에도 컨테이너에서 화물을 적출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송하인이나 수하인이 컨테이너를 반납할 때까지 컨테이너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무료장치기간 내지 무료사용기간, free time)을 미리 정하고, 이 무료사용기간이 경과하면 송하인 등은 운송인에게 반납지연료를 지급하되, 컨테이너가 양하항(= 도착지 항구)의 컨테이너 야드(= 컨테이너 보관장소)에 도착한 뒤에도 수하인이 컨테이너를 인수해가지 않을 때에는 체화료(Demurrage)를 지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 운송계약의 당사자로서 해상화물 운송 및 주선업 등을 하는 피고 C로서는 컨테이너의 반환이 지체될 경우 일반적인 요율의 컨테이너 보관료 및 체화료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반환채무불이행에 따른 통상손해로서 일반적인 요율의 컨테이너 보관료 및 체화료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2) 피고들의 구체적인 사용료 지급책임액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채권은 당사자가 외국통화로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액이 외국통화로 지정된 외화채권이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5년 7월28일 선고 2003다12083 판결 등 참조).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거나 손해부담의 공평을 기하기 위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채무자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 특히 원고도 피고 회사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무료사용기간을 30일로 연장하고 사용료를 50% 감액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는 점에다,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해 인정할 수 있는 추가 사정들, 즉 ① 원고의 요율표에 따른 컨테이너 보관료와 체화료에 관해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합의 또는 교섭이 있었다거나 원고가 피고들에게 그 금액을 설명·고지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② 피고들도 수하인의 이 사건 화물 미인수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 손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이고, 하주 내지 송하인 측에서 베트남으로 출국해 현지업체 등과 이 사건 화물 인수방안을 협의하는 등 손해 확대를 막고자 노력했던 정황이 있는 점, ③ 체화료는 화물 반출 지체 시 컨테이너를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운송인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하주 등이 운송인에게 지급할 금액을 1일당 요율의 형태로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서, 하주의 컨테이너 반환 채무 불이행 사실이 발생한 경우 그 손해배상을 위해 일정한 금전을 지급하기로 미리 정해둔 손해배상의 예정액이라 볼 수 있는데, 체화료 요율은 원고가 일방적으로 정해 공고하는 비율로서 미반환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체화요율이 단계별로 누진(累進)되며, 체화료 발생기간의 상한(上限)이 없어 컨테이너 반환지체에 따른 체화료가 원고가 받은 운임보다 지나치게 크게 되는 점, ④ 컨테이너가 지나치게 장기간 미반환되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컨테이너의 재제작에 필요한 기간과 비용 등을 감안하면 체화료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 등을 종합하면, 손해의 공평부담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피고들의 사용료 지급책임을 60%로 제한함이 상당하다.
3) 피고들의 컨테이너 반환 및 사용료 지급책임의 공동관계
이 사건 운송계약은 원고와 피고들 모두에게 상행위가 되는 행위로 맺어진 것이므로,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인도(반환) 및 사용료 지급책임을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상법 제57조 제1항).
4. 검토 및 시사점
컨테이너 지체료는 컨테이너가 도착항에서 수하인의 사유로 제때에 수하인에게 인도되지 않거나, 선적항에서 송하인의 사유로 제때에 선적되지 않을 경우, 컨테이너에 대한 활용 지체를 화주로부터 보상받기 위해 운송인이 화주에게 청구하는 비용이다. 보관료는 운송인의 컨테이너가 수출항이나 수입항에서 항구 free time을 도과해 항구 부지를 지속 점유하는 경우, 그 점유의 도과기간 동안 항구 터미널사가 운송인에게 부과하는 비용이다. 다만, 실무상으로는 항구 터미널사로부터 운송인이 보관료를 청구 받을 경우, 운송인이 보관료도 컨테이너 지체료에 포함해 화주에게 전가해 청구하기 때문에 이 사건과 같이 한 번에 청구하는 것이 실무상 관례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도 보관료와 체화료를 함께 ‘사용료’로 청구했다.
운송주선인은 위탁자를 위해 물건운송계약을 체결할 것 등의 위탁을 인수하는 것을 본래적인 영업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운송주선인이 다른 사람의 운송목적 실현에 도움을 주는 부수적 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고, 실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상품의 통관절차, 운송물의 검수, 보관, 부보, 운송물의 수령인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대법원 1987년 10월13일 선고 85다카1080 판결, 대법원 2018년 12월13일 선고 2015다246186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피고 C가 직접 화물의 운송계약조건을 교섭하고 운송료를 지급했으며, 피고 B는 운송계약의 체결이나 이행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계약 체결 당시의 상황과, 화물이 하역항에 도착한 뒤에도 수하인이 이를 인수하지 않자, 피고 C도 원고에게 이 사건 컨테이너들의 체화료 감액 등을 요청한 점 등을 종합해 운송주선인의 지위를 인정했다.
또한, 컨테이너 지체료의 법적 성질에 대해 손해배상설과 특별보수설이 대립하고 있다. 특별보수설이 감액이나 상계처리를 불허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판결에서 피고의 손해 확대 방지 노력 등을 고려해 원고의 청구액을 60%로 감액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하급심 판례들과 같이 사용료를 컨테이너 반환 채무 불이행 사실이 발생한 경우 그 손해배상을 위해 일정한 금전을 지급하기로 미리 정해둔 손해배상의 예정액이라고 보아 손해배상설의 입장에 따른 판례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판례들이 주로 운송인과 운송주선인의 구별에 초점을 맞추어 왔던 것과 달리, 본 판결은 운송주선인 자체의 책임 범위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운송주선인과 단순 대리인의 역할에 대한 구분을 보다 구체화하고, 실무적으로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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