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항만콘퍼런스(BIPC)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대격변의 시대, 컨테이너 해운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라는 주제를 두고 앞으로는 선박 대형화, 선대 확장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다만 얼라이언스(운항 동맹) 개편이라는 변수를 앞둔 상황에서 덴마크 머스크와 독일 하파크로이트가 뭉친 제미니(Gemini Cooperation)엔 각기 다른 견해를 보였다.
지난 9월24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싱가포르 해운조사기관 라이너리티카의 탄 화주 대표는 “제미니가 강조하는 정시성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과거 머스크가 시행했던 ‘데일리 머스크’ 서비스를 반추하며, “시장은 절대적인 정시성에 프리미엄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이전에도 허브 앤드 스포크(Hub&Spoke) 방식으로 정시성을 제시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탄 대표는 두 선사의 선복 부족 문제도 지적했다. “머스크는 지난 7년 동안 선대 확장을 가장 적게 한 선사인데 하파크로이트도 비슷하다”면서 “가장 취약한 선사들을 뭉쳐놓은 꼴”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MSC와 대조를 보이는 머스크의 신조 발주량을 지적했다. 그는 머스크가 지난 4년 간 수익성이 높은 기간에 선대를 늘리지 않아 시장 점유율을 대폭 상실한 점을 거론하며 머스크의 전략적 실책이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제미니를 가장 파트너십이 약한 얼라이언스라고 진단했다. 탄 대표는 “제미니의 기항지는 머스크가 운영하는 항만이 대다수다. 머스크는 지배력을 유지할 선사로 하파크로이트를 찾은 것”이라고 분석하며, “특히 미국 서안은 제미니는 주간 4회밖에 운항하지 않는데, 주 12회 운항하는 오션얼라이언스와 주 10회 운항하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에 비하면 너무 적다”고 말했다.
▲탄 화주(TAN Hua Joo) 라이너리티카 대표 |
탄 화주 대표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제미니의 방식이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제미니 모델은 홍해 사태 전에 발표한 것이다. 지금은 우회항로를 이용하면서 선박 40척, 선복으로는 30만TEU가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허브 앤드 스포크 방식이 직접 기항하는 것보다 나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복이 부족한 데 따른 궁여지책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환적 비용이 올라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홍해 위기, 잉여공급 흡수했다
라이너리티카 분석에 따르면 홍해 사태는 실질적으로 전 세계 선대의 7%를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 화주 대표는 “올해 2분기가 신조 인수의 정점이었다”면서 “이제는 정점을 지나 매달 15만TEU 수준으로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4년간 연간 4~5% 수준에서 신규 공급이 이뤄지면 시장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란 진단이다. 다만 “홍해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렇다”고 단서를 달면서 “위기가 해결되면 1개월 내에 공급 과잉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앞서 발표한 덴마크 컨설팅기업 베스푸치마리타임의 라스 얀센 대표는 올해 해운시장을 돌이키며 “홍해 사태로 피크시즌이 너무 빨리 왔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변수인 홍해 사태에 따라 앞으로 수에즈운하가 운행되면 공급 과잉으로 시장이 급락하고 한동안 항만 혼잡이 이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년도 올해와 비슷하게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더 많은 선박이 발주되니 사태 관리가 더 수월할 것”이라면서, “지난 10년 간 공급 과잉을 걱정했으나 홍해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것이 오히려 비상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베스푸치마리타임의 라스 얀센 대표(왼쪽)와 라이너리티카의 탄 화주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해운 전문가들은 홍해 사태가 불러온 호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얀센 대표는 “운 좋게 오버캐파(공급 과잉)가 있어서 홍해 위기에 대처했다”고 해석했으며, 탄 대표는 “예상치 못한 보너스를 제공했다”면서 “선박이 우회하고 화물 수요가 반등하면서 지난해 늘어난 용량을 모두 흡수했다. 홍해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한 2024년 내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라스 얀센 대표 역시 제미니가 핵심으로 삼은 허브 앤드 스포크 방식에는 우려의 시선을 보였다. 탄 화주 대표가 지적한 머스크와 하파크로이트의 선박 부족 문제에 동의하면서, “환적 비용이 늘기 때문에 선박 활용도, 운용 효율을 높이는 게 상업성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엔 “대형 선박을 수용할 수 없는 항만에는 (셔틀 운행 방식의) 제미니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얀센 대표는 “이미 지난 10년 동안 업계가 다 시도했던 방식”이라면서 “더 작은 선박으로 정밀한 서비스를 운영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대형 선박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이에 잘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제미니 선사가 강조한 정시성을 두고선 탄 대표와 반대 의견을 보였다. 얀센 대표는 “과거에는 정시성이 상업적 타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이제 정시성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얼라이언스 개편을 “서비스 콘셉트가 다양화되는 것”으로 보고, “선사들은 효율적이고 신뢰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올해로 12회차를 맞이한 이번 행사는 9월 24일과 25일 양일 진행됐다. 첫날엔 라스 얀센, 탄 화주 대표 외에도 미국 롱비치항만청 노엘 하세가바 부청장, 독일 함부르크항만공사 옌스 마이어 사장, 시애틀항만청 샘 조 항만위원장이 참석해 탈탄소화와 자동화 등 해운·항만 업계의 공동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항만들의 파트너십과 성공 사례를 공유했다. 둘째 날엔 BIPC에서 처음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함께 선진항만과 개발도상국 항만 간 협력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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