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1 09:05

공급망혼란 막으려면 ‘장기운송계약 확대’ 필수

해상공급망 안정화 세미나서 선복·컨테이너난 해소방안 제시


홍해사태 장기화로 물류대란이 재연되자 전문가들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해법 찾기에 나섰다.

지난 17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된 ‘해상 공급망 안정화 방안’ 세미나에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코로나 사태와 유사한 물류대란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며 법적·제도적 변화를 강조했다. 이날 해운물류 분야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해소하려면 비일상의 일상화를 인정하고 예측 불허의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유창근 전 HMM 사장은 기조연설을 발표하며, 홍해 사태 장기화가 불러온 여파로 싱가포르 항만 적체, 컨테이너박스 부족 심화, 운임 폭등을 꼽았다. 최근 해양진흥공사가 발표한 해상 운임(KCCI)은 40피트 컨테이너(FEU) 기준으로 미동안과 북유럽에서 각각 9000달러 8000달러를 넘어섰다. 유 전 사장은 “코로나19 당시 기록한 최고치의 70~80% 수준”이라며 “후티 반군의 위협이 극적으로 없어지지 않는 한 하반기 말에나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시금 불거진 공급망 변수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예측 모델 개발 △국내 선·화주의 안정적인 물량 협조 △선·화주 장기운송계약 이행 △컨테이너박스 제조공장 인수 △해외 소재 자영 터미널 확보 △국제 협력으로 국내 선·화주 불이익 사전 방지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김인현 교수는 해상법 분야에서 사적·공적 차원으로 나눠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장기운송계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철저히 이행하도록) 계약상 문구를 좀 더 구속력 있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장기운송계약은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어 공급망 운영에 안정성을 가져다 주지만 우리나라는 현물(스폿) 계약이 대부분인 데다 운임이 폭등하는 상황에선 계약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운임을 SCFI(상하이발운임지수)와 연동해 변동하도록 열어두는 한편, 해운법상 장기운송계약 규정 내 손해배상 항목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행 계약은 선복, 컨테이너박스 등을 보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약 자체가 구속력이 없어 한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파크로이트는 장기운송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약정된 보상금을 지급하고, 일본은 계약을 이행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깔려있다”면서 “계약을 잘 지키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교수는 공적·국가적 차원에서 컨테이너박스 공적 개념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컨테이너박스의 95%는 중국에서 제작한다”며, “적어도 10%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해 어려울 때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컨테이너박스를 상법상 물적 설비로 규정하고 등록 제도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을 요구하며 “여유분의 장비를 갖춰야 하지만 개별 회사 차원에선 한계가 있으니 선복과 컨테이너박스를 관리하는 공적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적으로 컨테이너박스를 등록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있으면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해군력 증강도 강조됐다. 우리 해군은 홍해·아덴만 인근에서 벌어지는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군함 한 척을 파병한 바 있다. 이날 해양연맹 총재이자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윤희 회장은 앞선 축사에서 “법·제도적 장치와 함께 근본적으로 해양 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군의 상선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김인현 교수도 마찬가지로 “중국은 해군이 컨테이너선에 붙어 호위를 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언급하며 “국적 컨테이너선의 운항을 도울 수 있도록 임무 확대와 구축함 추가 파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인현(왼쪽)·한종길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태평양 시대서 인도양 시대로 전환”

이날 세미나에서는 세계 무역 주체가 인도로 옮겨감에 따라 전 세계 항로가 재편되는 과정에 놓여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성결대학교 글로벌물류학부 한종길 교수는 “태평양의 시대에서 인도양의 시대로 바뀌는 전환점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2월부터 시행되는 머스크와 하파크로이트의 제미니 동맹이 유럽항로에서 부산항을 모항으로 이용하지 않고 말레이시아의 탄중펠레파스에서 환적한다고 발표한 것을 변화의 시작으로 내다봤다.

이어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물동량이 우리나라 부산항으로 옮겨가 다시 회복하지 못한 사례를 들며, “부산 진해신항이 개장을 앞둔 상황에서 부산항은 제미니의 정책에 보다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한종길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해운·항만 정책에서 우리가 동북아의 관문항이라는 점을 핵심으로 뒀지만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면서 “부산항이 지리적 요건에서 유리하다는 건 태평양 시대의 이야기”라고 쓴소리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대비 0.5%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항로별로 나눠 봤을 때 인도·중동을 오간 화물은 11.5% 증가하는 고성장을 일궜다.

그는 공급사슬이 변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의 일상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무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60%며 수출 화물의 99%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불안정에 대응할 방안을 반드시 가지고 가야한다”며, 한국적 거래 관행의 개선과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정기선 해운은 국가 간 경쟁인데 한쪽만 이익을 보려고 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대형 화주만 이익을 보고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는 운임 변동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에서 벗어나 팀 코리아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안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어진 토론 자리에서 패널로 참석한 한국국제물류협회 배경한 수석부회장은 “리스크가 발생하면 대부분 포워더가 떠안는 것이 현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하며, “물류 총괄 관리 창구를 만들어 일원화하면 지금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관심과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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