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슈퍼맨. 바다에서 온갖 역할을 담당하는 선박이 있다. 주된 업무는 다른 선박이나 해양구조물 등을 끌거나 밀어 이동시키는 것이지만, 유류오염 사고에 투입되어 방제작업을 하거나 해상화재 사고에서 화재 진압작업을 수행하기도 한다. 대형 선박의 입항과 출항을 보조하는 역할도 주 업무 중 하나이다. 이 정도면 슈퍼맨급 활약이다. 그 이름은 예인선이다.
예인선은 자신의 동력을 이용하여 앞에서 끌어당기거나(예항) 밀어내는 방식(압항)으로 다른 선박 또는 물건(이하 편의상 “피예인선”)을 이동시킨다. 따라서 예인선은 기본적으로 피예인선과 예인삭(예인줄)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하나로 결합되어 운항된다. 그러다 보니 예인선과 피예인선 사이에 연결된 예인삭과 관련된 선박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어선이 예인선과 피예인선 사이를 지나가다가 예인삭에 걸리는 사고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예인선과 피예인선이 예인삭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예선열 일체의 원칙”이 인정되었다. 제3자에 대한 책임관계에서 예인선과 피예인선을 하나의 선박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해상법 종주국인 영국은 1912년 Devonshire 판결을 통해, 우리나라는 1998년 판결(대법원 1998년 3월25일자 97마2758 결정)을 통해 위 원칙에 종말을 고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인선과 피예인선은 책임의 유무와 범위를 결정함에 있어 완전히 별개의 선박으로 처리되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이 원칙이 주로 논의되는 분야는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절차(이하 “선주책임제한절차”)이다. 예인선이 피예인선을 예인하면서 예선열을 이루어 운항하던 중 발생한 사고와 관련하여 예인선과 피예인선을 일체로 보아 책임한도액을 산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예인선 또는 피예인선을 개별적으로 보아야 책임한도액을 산정해야 하는지가 문제되었던 것이다. 2번에 걸친 대법원의 판결(위 대법원 97마2758 결정, 대법원 2010년 7월30일자 2010마660 결정)을 통하여 관련 법리는 정리되었다고 평가된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로 많은 논문과 칼럼들이 해당 법리를 소개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요약만 하기로 한다.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법리는 다음과 같다. (i) 예인선의 선주가 피예인선을 자신의 기업조직에 편입시켜 기업활동의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예인선 측의 과실이 피예인선의 항해에도 관련이 있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인선과 피예인선의 각 톤수로 산정한 책임한도액을 합산한 금액이 예인선 선주의 책임한도액이 되고, (ii) 피예인선이 단순히 예인목적물로서 예인된 경우에 불과하고 예인선 선주가 피예인선에 관하여 선박소유자와 동일한 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예인선의 톤수로 산정한 책임한도액만이 예인선 선주의 책임한도액이라는 것이다(이 경우 피예인선측에게는 아무런 과실이 없어 피예인선 선주는 제3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위 두 판결들은 모두 예인선에 의하여 예인되던 “피예인선”이 제3의 선박 또는 물건과 충돌한 사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피예인선을 예인하던 “예인선”이 제3의 선박 또는 물건과 직접 충돌한 사실관계에 대하여도 대법원의 위 논리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한편, 이러한 책임한도액 산정과 관련된 실무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책임한도액의 결정은 선주책임제한절차의 개시 전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나오는 문제이다. 즉, 법원이 예인선 선주의 책임한도액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피예인선의 소유 및 계약관계와 귀책사유의 존부 등 선박운항에 관련된 실체관계에 대한 심리를 선주책임제한절차를 개시하기 전에 마칠 필요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피해자(제한채권자)의 참여 없이 오로지 신청인(예인선 선주)이 제출한 소명자료에만 기초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하는데, 공정하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예인선의 톤수가 피예인선의 톤수에 비하여 상당히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책임한도액의 산정이 잘못될 경우 제한채권자가 입는 손해는 막심할 수밖에 없다. 즉시항고를 통해 다툴 수는 있다고 하나, 즉시항고 기한 내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제대로 법률검토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선박의 톤수를 가지고 기계적으로 책임한도액을 산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선주책임제한절차 사건과는 달리, 실체관계에 대한 심리를 필요로 하는 예인선 및 피예인선과 관련된 사건을 진행할 때에는 법원은 보다 엄격하게 직권조사권을 행사해야 하고, 변론에 의한 심리를 진행하는 등 가능하다면 제한채권자 등에게 선제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동력을 기반으로 궂은 일을 다 하는 예인선은 해운업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선박이다. 그만큼 각종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고 다양한 법률관계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상법은 예인선의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실무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Knock for Knock 원칙에 관한 법리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인선과 관련된 법률관계가 올바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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