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사태로 물가 인상 압박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가 나왔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진행한 UN 일일 언론 브리핑에서 최근 무역 혼란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얀 호프만 UNCATAD 의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흑해가 봉쇄되고 기후 변화에 따라 파나마운하 통항이 제한된 가운데 홍해 사태까지 가중되면서 공급망 위기가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해상 운송은 전 세계 화물 약 80%를 담당하는 국제 무역 중추로서, 이 중 수에즈운하는 해상 물동량의 12~15%를 차지한다.
12월 미·영 군대가 후티 반군의 거점을 공격하고 잇따라 반격이 일어나면서 대다수 선사들은 홍해·아덴만 지역으로 들어오는 노선을 일시 중단했다. UNCTAD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이 최근 두 달간 42%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주간 컨테이너선 통항량은 고점 대비 67% 급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월 한 달간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선박은 일 평균 46척으로, 두 달 전인 11월 평균 76척과 비교해 약 40% 감소했다.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난 선박은 1월 일 평균 37척을 기록하면서 더 적은 수를 보였다. 물동량도 2개월 사이 급감했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화물량은 하루 평균 531만 6000t에서 264만 4000t으로 50% 줄었고, 바브엘만데브 화물은 526만 2000t에서 215만 1000t으로 59% 줄었다.
예멘과 맞닿은 아덴만행 선박도 줄었다. 영국 조사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월26일 기준 일주일간 아덴만에 입항한 선박 수는 지난해 12월 상반기 대비 63% 감소했다. 특히 매출 기준으로 가스운반선 자동차운반선 컨테이너선이 각각 99% 96% 90%로 크게 감소했으며, 제품운반선은 46% 벌크선은 36% 줄었다.
반면 희망봉을 우회하는 노선은 크게 증가했다고 IMF는 밝혔다. 1월 동안 희망봉 경유 선박은 일 평균 70척을 기록, 11월 평균 49척 대비 43% 늘었다.
공장가동 중단 등 물류 지연 사례 속출
운송 지연에 따라 전 세계에서는 차츰 공급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스웨덴 자동차 제조업체인 볼보는 기어박스 배송이 지연되면서 지난달 12일부터 3일간 벨기에 공장 생산을 중단했으며,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부품 부족으로 1월29일부터 2월11월까지 베를린 인근 공장을 멈췄다. 또한 세계 2위 LNG 수출국인 카타르의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는 LNG 생산엔 문제없지만 대체 경로를 이용하면서 운송 일정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 해운사 NYK의 소가 다카야 사장은 홍해 주변 선박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반 소비재나 제조용 부품·소재의 공급망에 물류 지연, 운송량 감소 등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난달 25일 말했다. 이 선사는 지난 11월 자동차운반선이 나포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까지 홍해를 우회 운항하고 있다.
선사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으로 경유를 결정하면서 운송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고 해상 운임도 치솟았다. 상하이해운거래소가 발표한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2월 첫째 주 2217.73을 기록, 12월 첫 주 1010.81보다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지난 1월12일 2206.03을 기록, 1년 6개월여 만에 2200포인트대에 재진입했다.
선사들 할증료·보혐료 증액 가속페달
상하이발 북유럽행 운임은 1월 한 달 평균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966달러로 집계되며 11월 평균 741달러보다 300% 폭증했다. 지중해행 운임도 1186달러에서 3907달러로 3배(229%) 넘게 올랐다. 상하이발 북미 서안·동안행 운임은 1월 중순 이후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2월2일 기준 각각 5005달러 6652달러로 10주 연속 상승하면서 5000달러 6500달러대에 진입했다. 이 기록은 지난 2022년 8월, 9월 이후 처음이다. 1월 평균 운임은 각각 3870달러 5605달러로 두 달 전(1817달러 2364달러)보다 두 배 이상 상승했다.
현재 각 선사별로 할증료와 보험료를 증액하고 있어 물류 비용 상승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UNCTAD는 이 같은 비용 증가가 에너지, 식품, 기타 상품 등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혼란에 취약하다며, 대처를 위해 해운업계의 신속한 적응과 강력한 국제 협력을 촉구했다.
또한 UNCTAD는 지금처럼 희망봉 우회가 계속되면 환경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박 운항 거리가 늘어나는 데다 이를 만회하려고 가속 운행을 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덴마크 해운조사기관인 시인텔리전스는 선사들이 선복을 늘리려고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소형 선박을 투입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기관은 향후 홍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북유럽·지중해 항로의 탄소배출량이 지금보다 3.5~4.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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