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1 09:15

“바다를 알리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벌써 5년 됐어요”

인터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
동아일보에 칼럼 80회 연재…바다 관련한 다양한 주제 담아


동아일보엔 매달 바다를 주제로 한 흥미진진한 글이 게재된다. 선장 출신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가 집필하는 칼럼 <바다 배 그리고 별>이다. 지난 2018년 10월 연재를 시작해 꼬박 5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말라카해협 해적 이야기를 비롯해 흑산도 여성 선장, 선원들의 ‘상륙 작전’, 별을 이용한 항해 방법 등 바다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들이 독자와 만났다. 김인현 교수는 지난 10월19일 80회 원고를 신문에 실었다.

김 교수는 기자와 만나 “제 칼럼으로 일반 국민들이 바다를 긍정적으로 바라 보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8년 동아일보의 오피니언 담당자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제가 쓴 <바다와 나>라는 자전적인 수필집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더라. 담당 기자는 만남에서 재밌으면서 지식도 전달하는 칼럼 코너를 만들었는데 제가 바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평소에도 중앙 일간지에 해운이나 수산을 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1977년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가 세계 일주를 할 때 동아일보 기자와 신동우 화백이 같이 승선해 세계 일주 장면을 스케치해서 보도한 적 있는데 저도 그 내용을 보면서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웠다. 처음엔 20회 정도만 연재하려고 했는데 계속 이야기가 떠올라 쓰다보니 어느덧 80회에 이르렀다.”

김 교수는 연재한 칼럼 중 해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그의 칼럼은 최근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에 기준점을 제시했다.

“바다에서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바다는 무궁무진한 소재를 갖고 있다. 항해할 때 항상 해류 지도를 봤다. 대만에서부터 시작되는 구로시오라는 해류가 있다. 일본 남단 규슈 가고시마로 흘러 들어간다. 북태평양엔 시계 방향의 큰 해류가 있다.

저는 바다에서 공부한 이 사실을 바탕으로 칼럼을 남겼다. 이런 자연 현상 때문에 과거 유럽의 범선들이 우리나라 남해로 오지 않고 일본 남부로 향하게 됐고 우리나라의 개화가 늦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2월 구로시오 해류를 주제로 칼럼을 썼는데 다섯 달이 지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불거졌다. 제 칼럼이 오염수 이슈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런가 하면 선박 복원력을 주제로 한 칼럼은 목포해양대 시험 문제로 출제됐다. 미국 북서부 롱뷰항에서 화주가 원목을 더 실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선박의 좌우 움직임을 보고 계산한 복원력 지표(GM)가 안 좋게 나와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목포해대 교수는 칼럼 내용을 지문으로 제시하면서 필자가 어떤 방식으로 복원력을 구했는지 기술하라는 문제를 냈다.

“선박을 운항할 때 복원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항하기 전에 간단한 계산식으로 복원력을 계산하고 테스트를 해야 한다. 이걸 교수님이 시험에 냈더라. 제 칼럼이 이런 기능도 하는구나 하고 자부심을 느꼈다.”

태풍이 오면 배는 항구에 있지 말고 바다로 나가야 안전하다고 한 칼럼은 가천대학교 이사장 신년사에 인용됐다. 가천대 이길여 이사장은 김 교수의 칼럼 내용을 빌려와 “큰 파도를 능동적으로 타고 넘으며 역경을 극복하자”고 학교 재단을 독려했다.

김 교수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50회까지의 칼럼을 모아 책자로 만들고 있다”며 “100회까지 연재한 뒤 2권의 책으로 펴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EU 해운 독금법 면제 폐지로 법적 불확실성 커져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바다 전문가로서 각종 해운산업 이슈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최근 해운 노사정이 유급휴가 일수를 늘리고 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을 4개월로 줄이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을 두고 “해운업계와 노조가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들 조치가 선원직 기피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부족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선원 부족난은 인구 절벽 효과가 아닌 3D 업종 기피 현상으로 빚어진 결과인 만큼 선원의 삶의 질을 육상 근로자 수준만큼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견해다.

김 교수는 정부가 선원을 기간산업을 이끄는 국가 인프라로 인식해 육상 근로자보다 3배 이상 높은 임금과 연금을 보장하고 이를 지원하는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인프라는 국가에서 구축하는 것 아닌가. 선원을 국가 인프라로 본다면 국제 수준보다 높은 임금의 차액과 인터넷 사용 비용은 국고에서 나와야 한다. 선주에서 부담할 게 아니라 국가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그는 또 부산과 인천에 소재한 해사고 정원을 확대하고 활성화해 선원 부족 현상이 심각한 내항과 연근해 선원을 육성하고 일반 대학 출신자들을 해기사로 양성하는 해양수산연수원의 오션폴리텍 과정도 선발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유럽연합(EU)이 내년 4월부터 컨테이너선사의 독점금지법 면제 규정(CBER)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해운시장의 법적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지난 10월10일 EU는 내년 4월25일 일몰되는 CBER를 더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과거 3년간의 코로나발 공급망 대란으로 컨테이너 운임이 급등하고 서비스 품질은 나빠진 걸 이유로 해운산업을 보호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동행위(카르텔)를 금지하는 EU기능조약(TFEU) 101조 규정을 준수하는 자체평가서를 제출하면 선사 간 협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일괄 면제에서 개별 면제로 전환한 셈이다.

2010년 4월 도입된 CBER는 가격 담합을 하거나 시장점유율 30%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조건으로 컨테이너선사의 컨소시엄 구성을 일괄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선사들은 이 제도에 근거해 지난 14년 동안 ▲운항 일정, 항만 입항 결정 ▲선복 교환 또는 판매 ▲선박과 항만시설 공동 운영 ▲공동 사무소 이용 ▲컨테이너박스 등의 장비 지원 ▲수요공급 변동에 대응한 수송능력 조절 ▲항만터미널과 관련 서비스 공동 운영 또는 사용 등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정기선사는 얼라이언스(컨소시엄)를 결성해 공급을 공동으로 줄여왔다. 수급이 불안정하면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큰 혜택을 받아온 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선사들이 협력하려면 승인을 얻어야 한다. 임시결항(블랭크세일링)도 승인 대상이다. 현재 상태의 얼라이언스는 존속할 수 없을 거 같다. 대신 슬롯차터(선복 임차) 계약으로 협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엔 HMM이 자사선 12척을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나눠서 운항했다면 앞으로는 월요일에 12척을 한꺼번에 투입해야 한다. 대신 수요일과 금요일엔 얼라이언스 소속 선사 또는 경쟁 선사에게 선복을 빌려서 화물을 수송하는 거지. 이런 측면에서 화주에게 유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HMM의 경우 선대 경쟁력은 확보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기운송계약보다 단발성 계약(스폿)이 많은 구조라 어려움이 예상된다. 화주와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 교수는 또 10년 전부터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해사법원 설치 사업은 소송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지역별로 의견이 달라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사법원 설치는 10년 정도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다. 10년 전보다 해사법원 수요가 오히려 줄어든 게 가장 큰 이유다.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요자가 늘어나야 해사법원을 설치해 달란 요구가 탄력을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

또 자기 지역에만 해사법원을 둬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데 정치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해 10년간 공회전만 하고 있다.” 

그는 대안으로 독립적인 형태의 해사법원보다 법원 내에 해사재판부를 설치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주요 해운 선진국도 이 같은 형태의 해사법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 홍콩 싱가포르에도 독립된 해사법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원 내 하나의 부서로 설치돼 있다. 다만 사건 처리 규칙이 있다. 해사 사건의 특성을 살려 신속하게 전문성 있게 법원이 처리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거지.

우리나라도 서울 부산 인천 어디에나 전문 판사를 둔 민사법원 해사부를 설치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해사 사건을 집중해서 다루고 이를 해사법원이라고 부르면 된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서 해사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처리되도록 업계와 법조계가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외국 당사자가 있는 경우에 대비해 우리 법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해서 제공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한 뒤 여건이 성숙되면 독립적인 해사법원 설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퇴직 이후에도 학자 길 걸을 터

김 교수는 내년 8월 정년퇴직하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동안 선장 출신 법대 교수로서 해운업계가 필요로 하는 법적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나이 마흔에 목포해양대에서 전임 강사로 시작한 교수생활이 어언 25년이 됐다. 한국해양대에서 사실관계만 나열하는 식의 공부만 하다가 고려대 법대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법학이란 체계적인 학문에 매료됐다.

그래서 형법 민법 헌법 등 모든 과목의 강의가 가능하다는 말에 목포해양대학에 갔다. 학문에 대한 욕구가 커 10년간 아침 6시에 학교에 나가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법학사 편입도 해서 2년간 기초를 공부했다.

꿈에도 생각지 않던 고려대 법대 교수가 2009년 됐고 2014년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완전히 업계와 한 몸이 됐다. 업계가 필요한 법적 쟁점은 제가 가장 먼저 알기 쉽게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자는 각오로 열심히 현안에 임했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지금처럼 연구와 칼럼 집필에 골몰하면서 학자로서의 길을 걷는 삶을 이어갈 계획이란다.

“고려대는 20년을 근무하면 명예교수가 된다. 저는 고려대에서 15년, 목포해대에서 8년, 부산대에서 2년간 근무해 이 조건을 충족한다. 학자의 공부는 평생 이어져야 하는 것인 만큼 정년퇴직을 해도 계속 연구하고 외부에서 강의하고 칼럼을 쓸 거다.

또 실용 학문인 해상법의 특성을 살려 업계와 계속해서 교류하려고 한다. 교수가 되기 전 4년간 일했던 김앤장으로 돌아가서 한국 해상법의 세계화에 진력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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