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들리쇼링(friendly-shoring) 등 우호국 간 공급망 재편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물류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이성우 선임 연구원은 지난 19일 여의도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물류 디지털 전환과 HR 전략 세미나’에서 “글로벌 공급망 지역화로 전 세계 물류 패턴이 변하고 물동량 증가세도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중간재 공급망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 선임 연구원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원재료를 받아 국내에서 중간재를 만들고 이를 다시 중국으로 보내서 만든 최종재가 미국으로 가는 3단 물류 패턴에서 우리가 소재를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면 그 곳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자기들이 소비해 버리는 패턴으로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자유무역주의에 따라 여러 거점을 돌아다니던 물건들의 움직임이 적어지면 물동량 증가세도 전보다 둔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임 연구원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중간재가 약 70%에 이르고 중국에서 이걸 가지고 최종재를 만들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으로 수출한 물량이 약 25% 차지했다”며 “중간재 공급망뿐 아니라 부산항 인천항 등 국내 주요 항만의 환적 물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공급망 블록화가 비우호국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일부 고부가가치 품목이나 항공 화물을 제외하곤 기존의 물류 패턴들은 어느 정도 유지될 걸로 내다 봤다.
이 선임 연구원은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취하겠다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말을 인용해 “저가 상품 등 기본적인 자기 소비재는 물가 유지 차원에서 중국과 계속 거래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거”라며 “다만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주요 기술에 대해선 우호국하고만 거래하겠다는 미국 측의 입장에서 향후 물류 공급망 패턴 변화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면 이젠 우리 기업들이 동맹국인 미국의 물류 시장에 적극 진출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 선임 연구원은 “최근 국내 이차전지 등 투자 기업들이 미국 동부로 몰리면서 관련 인프라 구축 등 잠재된 물류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에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오가던 물량들이 파나마운하 등 다양한 운송 루트를 통해 아시아에서 직접 넘어오면서 뉴욕·뉴저지, 서배너 등 미국 동부 항만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 선임 연구원은 “미국 내 투자 수요가 많은 동부 지역엔 물류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거나 물류센터 등 인프라 노후화가 심각한 경우가 많아 여러 기업들이 적극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며 “여기에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 중소기업이라도 이 투자 기업들과 협력해 같은 공급망 안에서 움직인다면 여러 비즈니스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해외 인프라를 확보할 경우 더 이상 한 기업만의 투자로 진행하기엔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공기관, 물류기업, 은행권 등이 힘을 합쳐 사모펀드(PEF)를 활용한 터미널 등 항만물류 인프라 확보에 나갈 것을 추천했다.
이 선임 연구원은 “최근 프랑스 CMA CGM이 미국 동부 뉴저지 엘리자베스 터미널 하나를 인수하는 데 약 2조원이 들었다”며 “우리나라 HMM이 약 1조2000억원에 입찰을 진행했다가 실패했는데,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 PEF 구조의 항만물류 인프라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KMI 이성우 선임 연구원(왼쪽)과 인하대 권오경 교수 |
“제한된 공급망에 단거리 물류 운송 경로 선호 예상”
인하대학교 권오경 교수는 “공급망의 현재 상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급망의 정치화”라고 정의하며 “미중 간 기술 패권, 러우 전쟁 등 대외 환경의 영향을 받아 우호국끼리 똘똘 뭉치며 공급망이 분기화됐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에는 크게 세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본다”며 “지난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다국적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이 세계 공장으로 급부상하고 글로벌 물류 공급망이 확산됐던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이후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쳐 공급망 장애를 겪게 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공급망 블록화가 계속 된다면 국제물류산업의 외형적 확대를 가져온 물동량은 위축될 수 밖에 없고, 여기에 탄소중립 이슈까지 등장하면서 물류 운송 경로도 원거리보단 단거리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로컬 소싱이 많이 일어나게 되면 수출입 물동량에도 영향을 받아 향후 글로벌 물류 산업에 거시적인 큰 변화가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물류 디지털 전환과 HR 전략 세미나’는 지난 9월 19일 여의도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주최하고 한국국제물류협회(KIFFA)가 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엔데믹 이후 공급망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조직 스마트 물류 역량의 중요성과 조직 인재 채용 및 육성 전략을 논의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세미나엔 KIFFA 원제철 회장
(사진), 배경한 부회장, 인하대 권오경 교수, 포스코플로우 김기형 박사, KMI 이성우 선임 연구원, 한국에스지에스 임동민 팀장, LX판토스 심정현 팀장 등 국제 물류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다.
KIFFA 원제철 회장은 “오늘 이 행사는 진보된 디지털, IT 기술을 통한 물류 산업의 개선과 인적 자원(HR)의 현재와 미래를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할지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며 “물류인이 뭉쳐야 물류산업이 발전하고, 물류산업이 발전해야 대한민국 경제가 발전하기에 앞으로 우리 협회는 대한민국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KMI 이 선임 연구원도 환영사를 통해 “물류업계 특히 포워딩업계는 우리나라의 혈맥인데 국가와 국민들이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정부에 포워딩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업계 실무자들에게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자 앞으로도 이 같은 행사를 계속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홍광의 기자 keho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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