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특수를 누렸던 컨테이너선사들이 엔데믹(일상적 유행)을 맞아 공급 과잉의 여파로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최근 발간한 정기 보고서에서 코로나 전후 글로벌 컨테이너선사의 투자 동향을 분석하면서 국적선사에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선사는 코로나 시기 개선된 경영 실적을 바탕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했으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국적선사는 그렇지 못해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평이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에 대한 비상사태 선언을 해제하면서 팬데믹이 사실상 종식 단계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세계 컨테이너 평균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019년 802달러에서 2022년 2572달러까지 상승했다. 용선료, 벙커유가, 운하통항료 등 부대비용의 상승보다 기본 운임 상승 폭이 월등했다. 코로나 이전 3~5%에 불과하던 영업이익률(EBIT마진)이 2021년과 2022년에는 40~50%에 달하면서 컨테이너선사들의 경영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컨테이너 산업 자체도 영업이익(EBIT)이 65억달러에서 2963억달러로 40배 이상 증가했다.
곳간 채운 글로벌선사 물류 투자 확대
글로벌 선사들은 실적 호조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머스크는 308억6000만달러(약 38조8400억원), 하파크로이트는 185억달러(약 22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현금성 자산이 대폭 증가했다. 코스코는 현금성 자산은 소폭 하락했지만 부채 또한 감소해 전체적인 재무건전성은 향상됐다. 무디스는 세 곳을 포함해 완하이, CMA CGM 등 높은 경영 실적을 낸 글로벌 컨테이너선사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KMI는 글로벌 선사들이 늘어난 현금성 자산을 △이익잉여금을 기반으로 재무구조 개선 △신조 발주 증가를 통한 선대 확장 △선사 기능 강화 및 영역 확장을 위한 기업 인수·합병 △해운산업 디지털 전환 및 친환경 연료 공급망 확보 등 4가지 항목에 투자했다고 분석했다.
그중 신조 발주와 기업 인수·합병은 팬데믹 여파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올해 5월 기준 전 세계 컨테이너선 발주 잔량은 766만TEU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0년 하반기에 공급이 부족해지자 상위 10대 선사 중 양밍을 제외한 모든 선사가 신조선 발주 대열에 동참했다. 또 팬데믹 시기 항만 적체를 경험한 컨테이너선사들은 적극적으로 항만 터미널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나섰다. MSC는 항공, 머스크는 철도복합운송, CMA CGM은 물류에 투자하면서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워나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국적선사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 국적 컨테이너선사는 한-일, 한-중 항로에 주로 참여하기에 원양항로에 포진한 글로벌 선사와는 규모에서 차이가 생긴다. KMI는 영국 해운컨설팅사 드류리(Drewry)의 자료를 참조해 근해항로의 운임 상승률은 원양항로에 비하면 큰 편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40피트 컨테이너(FEU)당 항로별 운임 최대상승률이 부산-로스엔젤레스 573.7%, 부산-싱가포르 392.2%였다면 한일, 한중항로인 부산-요코하마가 241.5%, 부산-상하이가 63.2%로 나타났다. 팬데믹 이전에 비해 경영 실적이 개선되긴 했지만 글로벌 선사들처럼 신조 발주, 인수합병, 탈탄소,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기에는 부족했다는 해석이다.
아시아역내항로 신설 봇물…틈새시장 개척해야
최근 아시아역내 항로에 글로벌 선사의 신규 항로 개설이 잦아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악재가 됐다. 기존에 한일항로, 한중항로는 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국적선사들의 대응으로 공급 조절이 이루어졌지만 올해 1분기 들어 글로벌 선사들이 얼라이언스 대신 독자 노선을 개설하고 신규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서비스 수와 투입 선복량이 증가했다. 프랑스 CMA CGM, 덴마크 머스크, 독일 하파크로이트, 중국 코스코가 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는 노선을 신규 개설하거나 기존 항로를 확장했다.
KMI는 공급 충격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2025년까지 연간 200만TEU 이상 신조 인도가 예정돼 있어 컨테이너 운임 약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KMI 최건우 해운금융연구실장 연구팀은 국적선사의 점유율이 높은 항로에 공동 대응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대응 창구를 일원화하면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실행하거나 신고할 때 혹은 여타 단체와 협의할 때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이미 협의회가 존재하는 아시아역내 항로에선 기능을 강화해 공동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한 연구팀은 드류리의 ‘세계 주요 항로 시장집중도’ 자료를 인용해 과열된 동남아항로를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집중도를 나타내는 HHI지수가 1000 이하를 가리키면 완전경쟁시장으로 분류되는데 동남아 시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도 10개 이상의 국적선사가 참여하는 데다 글로벌 선사들 또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어 경쟁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시장을 모색하면서 이미 운영 중인 선사를 인수·합병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놨다. 국적선사들이 공동운항을 하거나 공동 출자하는 법인을 설립해 선대를 공동 투입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톤세제 연장도 필요한 정부 지원책으로 언급했다. 운항선박의 톤수, 운항일수를 고려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운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도입된 톤세제는 내년에 일몰이 예고된 상태다. 해당 제도는 선사 입장에서 세액의 불확실성을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연장하거나 영구화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디지털 플랫폼 이용 시 최적화가 가능해져 수익 극대화, 거래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 자체 시스템 구축이 어려운 중소 국적선사는 이미 서비스를 운영 중인 디지털 포워더와 협력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최건우 해운금융연구실장은 해당 보고서에서 “수요 충격과는 다르게 공급과잉은 장기간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향후 컨테이너 시장의 구조적인 약세는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디지털, 탈탄소와 같은 미래 투자를 소홀히 하면 시장 내 경쟁력이 상실될 수 있으므로 기업과 정부의 구체적·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의견을 밝혔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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