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7 09:05

기획/ 시황 둔화 대응 컨선 공급조절 본격화 폐선·계선 급증

17년來 최저점 찍은 해체량 올해 30배 급증 전망…계선 3배 증가

운임 하락과 수요 부진 등으로 컨테이너선 시황 둔화가 본격화하자 선사들이 공급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 2년간 최저 수준을 기록했던 컨테이너선의 해체가 올해부터 다시 크게 늘어나고 있고 운항을 멈춘 선박 숫자도 급증했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는 올 한 해 컨테이너선 해체 규모가 35만TEU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에 비해 31배 늘어나면서 최근 6년간 최고치를 찍을 거란 예상이다.

그리스 골든데스티니에 따르면 지난 1월 13척의 컨테이너선이 폐선업자에 매각된 것으로 파악된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대만 완하이라인이다. 이 선사는 1994년부터 1998년 사이에 일본 조선소에서 지어진 1088~1368TEU급 선박 10척을 해체 처분했다.

이 밖에 덴마크 머스크가 1999년 대만에서 지어진 1092TEU급 선박 <머스크애버딘>(MAERSK ABERDEEN), 러시아 선사 페스코가 1998년 폴란드에서 지어진 1748TEU급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를 각각 폐선했다. 

컨테이너선 해체 규모는 시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극심한 시황 부진에 시달리던 2009년 38만TEU 선까지 늘어난 뒤 소강 상태를 보이다 선사들의 치킨게임이 본격화된 2012년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 2016년엔 65만5000TEU를 기록, 최고점을 찍었고, 이듬해에도 41만TEU를 웃도는 선박이 폐선소를 찾았다.

이후 10만TEU대를 유지하던 해체량은 코로나발 초호황기가 도래하자 1만TEU대로 뚝 떨어졌다. 2021년 한 해 2005년 이후 최저치인 1만6500TEU를 찍은 데 이어 지난해는 6척 1만904TEU까지 감소하며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지난해는 9월까지 폐선된 선박이 1척에 불과할 만큼 해체시장 수요는 꽁꽁 얼어붙었다. 1973년 지어진 고령선 1727TEU급 <맷소니아>(Matsonia)호가 3월에 고철로 재활용됐을 뿐이다.

하지만 4분기 들어 해운 시황이 빠르게 하락하자 해체 시장도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태국 리저널컨테이너라인(RCL)이 1200TEU급 선박 <마투품>(Mathu Bhum)과 <제타품>(Xetha Bhum)을 10월과 11월 각각 폐선업자에게 처분했다. 연말엔 그리스 유로시즈가 5608TEU급 <아키나다브리지>(Akinada Bridge)호의 해체를 결정했다. 

 


올해는 선사들의 폐선 열기가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운임이 고점에 견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물동량도 하락세를 띠는 까닭이다.

더구나 호황기 때 발주한 신조선 공급 폭탄도 기다리고 있다. 올 한 해 인도되는 신조선은 230만TEU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2001~2020년 사이 신조선 평균 인도량이 97만TEU였다는 점에서 올해 얼마나 많은 선박이 새롭게 투입되는지 알 수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배출 규제도 선사들의 폐선 결정을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해체 매각 가격은 하락세를 타고 있다. 영국 베셀즈밸류에 따르면 2월 현재 폐선 가격은 경배수톤(LDT)당 방글라데시 575달러, 인도 590달러 수준이다. 정점을 찍은 10개월 전에 비해 100달러 이상 떨어졌다.

지난 2016년 2월 말 최저치인 240달러까지 떨어졌던 폐선가는 시나브로 상승하다 코로나발 공급 부족이 표면화된 2021년부터 급등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4월엔 700달러를 돌파하며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시황이 급랭하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해 11월 600달러 선이 무너졌다. 지난달 입찰 방식으로 선박 10척을 인도 해체업자에 매각한 완하이는 총 3200만달러(약 400억원)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LDT당 가격은 510달러였다. 최근 들어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인도 시장이 폐선 매물을 싹쓸이하는 모양새다. 

비운항 선박 비중 2%→5%로 확대

폐선뿐 아니라 운항을 멈춘 컨테이너선들도 크게 늘어났다. 1월 현재 운항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컨테이너선은 상업활동을 하지 않는 계선(繫船)과 정기점검 차 수리조선소에 입거한 선박을 합쳐 총 259척 142만TEU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말의 44만TEU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전체 컨테이너선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1월 2.2%에서 올해 1월 5.5%까지 상승했다.

1만2500TEU급 대형 선박은 지난해 4척에서 올해 36척, 7500~1만2500TEU급 선박은 13척에서 33척으로 급증했다. 특히 1만2500TEU급 선박 중 조선소에 들어간 선박을 뺀 순수 계선 규모는 21척에 이른다.

전체 계선 선대 중 선주들이 보유한 선박은 23척으로, 1년 전 4척에서 6배 늘어났다. 최근 시황 부진으로 용선처 찾기가 어려워진 선주들이 선박을 항구에 무기한 세워 두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선사들은 폐선과 계선 외에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수에즈운하를 이용하지 않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우회하는 방법도 공급 축소 전략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남아공을 돌아서 유럽으로 갈 경우 운항 기간이 크게 늘어나 한 노선당 선박 2척의 공급 흡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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