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화주와 선사 간 장기운송계약을 선호하는 해운물류시장에서 영세 포워더(국제물루주선업체)들의 선복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선복 부족으로 화주들은 현물보단 장기계약 비중을 확대했다. 올해 장기계약 운임은 화주들의 장기계약 비중이 확대되면서 작년 수준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장기계약 운임 상승은 현물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잇따랐다.
실제로 FEU당 아시아-북유럽 평균 입찰가는 1만1900달러, 아시아-북미는 5700달러로 작년보다 크게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미크론 등 코로나19 불확실성에 글로벌 물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수출입 화주들도 장기운송계약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통상 1년 단위로 계약되던 화주-선사 간 장기운송계약이 2~3년 연장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대다수의 중소 포워더들에겐 너무나 높은 진입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자본금이 얼마 없는 중소 포워더들이 사실상 2~3년의 자본 리스크를 떠안고 사업을 운영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선사들도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해 대기업 위주로 운임 정책이 마련되다 보니, 자연스레 영세 포워더들은 후순위로 내몰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 포워더 등록업체 수는 총 4724개로 집계됐다. 자본금 10억원 미만의 포워더 수는 약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 중 자본금 3억원 규모의 업체 수는 85.2%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포워더의 등록기준은 자본금 3억원이다. 그만큼 장기운송계약에 실패한 포워더 대다수는 올해에도 선복을 구하지 못해 영업 환경이 온전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사와 포워더 간 운임계약은 통상 선사에게 운임을 선지불하고 한두 달 뒤 화주에게 다시 해당 금액을 받는 구조로 진행된다. 다만 지금과 같이 높은 운임 상황에선 많은 컨테이너 운반을 감내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포워딩업체 관계자는 “최근 미국 동안행 컨테이너 10개를 싣는 데 개당 2만달러가 지출됐다”며 “그러면 돈이 2억이 드는데, 한달에 100개를 의뢰받으면 벌써 20억이라 자본금 10억 미만인 저희 업체 입장에선 자금 조달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포워딩업체 관계자는 “LG 삼성 글로비스 등 대형 화주들이야 운임만 주면 거의 화물을 다 실을 수 있고 물량도 확보할 수 있지 않냐”며 “운임 인상률은 판가에다가 반영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포워더들은 선복 자체를 구하지 못해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사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서 매출 1000대 수출기업 대상으로 진행한 해운물류 애로조사에 따르면 수출 대기업들은 지난해 상반기 물류비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30.9% 증가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23.8% 늘 것으로 진단했다. 또한 수출 대기업은 장기 해운운송계약이 절대 다수여서 물류비 인상에 대한 영향이 적다는 인식이 많았다.
정부, 장기운송계약체결 중개모델 도입추진…포워더 “아직 멀었다”
최근 정부가 국내 중소기업의 물류난 해소를 위해 장기운송계약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고운임 등 글로벌 물류난이 계속됨에 따라 올해에도 물류바우처, 중소기업 전용 선적공간 등 수출물류 지원을 약속했다. 포워딩업계는 그간 지속적인 정부의 관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실질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영세 포워더까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HMM(옛 현대상선)과 협업을 통해 고정운임으로 장기운송계약을 계속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시행 중인 중소화주 장기운송계약 체결 지원사업은 미국 서안항로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민간의 자발적인 장기계약 활성화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도 강화된다.
업종별 협회나 민간 물류 주선업체가 중소화주 수요를 파악해 장기운송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모델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한 선·화주 간 안정적인 계약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보증상품 제공도 검토된다. 중소기업 전용 선적공간, 특송운임 할인, 풀필먼트 서비스 보조 등 물류난 해소를 위한 여러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한 포워딩업계 관계자는 “세금 감면 등을 지원하는 우수 선화주 인증제가 다소 엄격한 심사 기준과 세제 혜택의 진입 장벽으로 중소 포워더들이 지원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열린 선화주 상생협의회에서 해상법 전문가인 고려대학교 김인현 교수는 “선진국에선 수출입 물류 환경 급변기에도 소형 화주들이 안정적인 운임과 선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업종별 협회와 단체가 수출 화물을 모아서 선사와 직접 장기운송계약을 맺는 게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DHL 등 글로벌포워더 로컬영업 강화
장기운송계약 이슈 외에도 해외 포워딩업체들이 국내 로컬 시장에 본격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국내 중소 포워더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DHL DB쉥커 등 글로벌 포워더들은 통상 해외 네트워크망을 기반으로 노미네이션(현지 지정) 화물을 확보하는데, 시장이 열악해져서 수익이 안 나다 보니 국내 영역에까지 뛰어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포워딩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글로벌 포워더들의 로컬 영업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이들이 LG 삼성 등 대형화주들에게 제공하던 저렴한 금액으로 국내 로컬 영역까지 확대하면서 앞으로 영세 포워더들은 점점 더 궁지에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포워더들은 품목에 따라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한 소형 포워더의 경우 인보이스 비율이 낮아 운임에 민감한 레진(합성수지) 등 석유화학제품을 기존에 운반하던 컨테이너에서 벌크선으로 바꿔 한달에 한박스씩 실어 보내기도 했다.
선복난과 더불어 파나마운하청의 흘수 제한 여파로 중량화물 운송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고민이다. 최근 들어 프랑스 CMA CGM은 20t 이상 중량화물은 지중해쪽 예약(부킹)을 아예 받지 않았고, HMM도 미국 동안행 선박에 대해 20피트 기준 9t 이상의 부킹을 거부했다.
한편 주요 선사들의 선복 잡기가 어려운 영세 포워더에게 중소 선사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 웨스트우드 볼타쉬핑 등 마이너 선사들이 일시적으로 미국 서안의 특정 지역을 겨냥해 일정 부분의 선복을 제공했다. 포워딩업계 입장에선 선사들이 많아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데다 공급도 늘어나 반가울 수 밖에 없다.
포워딩업계에 창고업 바람 분다
선복난이 가중되면서 갈수록 영업환경이 악화되자 포워딩업계에선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간 국제물류에만 주력해 오던 포워더들은 창고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최근 몇몇 포워더들이 창고를 통해 국제물류, 운송, 보관 등의 일괄된 작업을 가능하게 되면서 회사의 매출 성장에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발 물류 공급망 혼선에 따른 선사들의 선박 운항 정시성이 극도로 낮아지면서 컨테이너 지체료(디텐션), 창고 보관료 등 추가 비용이 늘어났다. 통상 터미널은 접안 3일 전까지 컨테이너를 반입하지 못하는데 화주들이 원래 운항 스케줄 기준으로 준비하다 보니, 컨테이너를 보관할 곳이 부족해지는 애로사항이 발생했다. 그 결과 창고 보관 사업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태웅로직스를 꼽을 수 있다. 종합물류기업 태웅로직스는 작년 9월 경남 진해 부산 신항에 위치한 물류센터를 103억원에 인수해 창고업에 본격 뛰어 들었다. 토지 면적과 건물 연면적은 각각 3만7917㎡, 1만6035㎡ 규모에 이른다. 회사 측은 종합물류서비스 기업으로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작년 1월부터 물류센터 매입을 추진해 왔다고 전했다.
태웅로직스는 지금이 창고업 진출의 최적기라고 판단했다. 선복이 부족해 물품을 곧바로 선적하지 못하면서 보관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도 지난해 10월까지 8개월 연속 증가하는 등 역대 최다 기록 경신을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2021년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물류창고업이 등록된 물류창고 수는 전년보다 4.5% 증가한 4705개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4502개에 비해 203개 늘어났다.
< 홍광의 기자 keho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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