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의 선주사업 진출이 사상 초유의 해운 호황이란 복병을 만나 지연되고 있다.
성낙주 해양진흥공사 해운금융2본부장은 지난달 30일 부산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3회 부산해양금융세미나에서 “현재 진행 중인 선주사업 시범사업은 10월 안에 금융 계약을 마칠 예정이고 타당성 검토용역도 막바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당초 공사는 올해 최대 10척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최대 50척을 매입해 합리적인 용선료로 한국형 선주사업을 벌인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시범사업은 올해 5월까지 대상자를 선정해 7월께 주요조건을 협의한 뒤 9월에 계약을 체결하고 투자를 실행하는 내용으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아울러 타당성 검토 용역도 3월까지 업체를 선정해 4~8월 4달간 수행하려고 했다. 시범사업과 연구용역 모두 계획보다 한두 달 정도 일정이 지연된 셈이다.
성 본부장은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심지어 유조선까지 해운 사이클이 굉장한 호황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선박 가격과 운임이 올라가는 시황에서 선주사업이 그렇게 적합하진 않기 때문에 타이밍 측면에서 (공사의 선주사업 진출도)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해운 시황에선 선박을 과거보다 몇 배나 높은 가격에 사들여야 하는 데다 향후 잔존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위험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선주사업의 대표적인 리스크인 고선가 선박 매입과 잔존가치 변동에 모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선주사업이 성공하려면 시장위험 분석과 예측능력, 재무구조 건전성과 저비용 자금 조달, 선박 관리, 회계·세제·법규 등의 제반인프라 정비 등이 필요하다”며 “이와 관련해 공사에 많은 기대와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진공이 추진하는 선주사업은 선박펀드 구조를 활용해 국내 해운사 또는 제3의 선주에게서 중고선을 인수해 해운사에 운용리스(BBC·나용선) 형태로 다시 임대 공급하는 방식이다.
BBC 거래는 지금까지의 소유권이전부나용선(BBCHP) 방식의 지원과 달리 금융계약이 끝난 뒤 선사가 선박을 매입하지 않고 선주사에 되돌려 주기 때문에 영업자산 확보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사는 임대 기간이 끝나면 선사를 대신해 선박의 잔존가치 위험을 인수하게 된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6월 발표한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 전략’에도 이 같은 방식의 금융 지원 정책이 포함됐다.
해진공은 국내에 세운 선박투자회사(SIC)를 통해 해외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선박을 확보하고 이를 해운사에 빌려주는 구조로 선주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성 본부장은 “향후 공사와 선박투자회사 해외SPC 중 누가 진짜 선주사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SPC는 법적인 선박 소유주이고 SIC는 주주일뿐이고 해양진흥공사는 금융을 제공한 입장”이라고 말해 선주사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선박금융에 민간투자 활성화해야
이날 ‘해운 장기 발전 5개년 계획과 해양금융’을 주제로 발표한 김태일 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물류연구본부장은 해운금융시장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국내 선박펀드에 민간금융이 자본 투자 형태로 참여할 수 있는 공모펀드를 늘리고 개인 투자자에게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까지 선박 펀드 투자자들에게 3억원 이하 배당이익은 세금을 감면하는 지원책을 시행했지만 이후 세제 혜택이 줄어들면서 선박펀드시장도 함께 위축됐다는 진단이다.
다만 세제 혜택은 친환경 정책과 연계해 친환경 선박이나 관련 기술이 적용된 선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아울러 투자 위험도가 낮은 선순위 선박금융은 민간자본으로 조달하고 해진공 같은 정책금융기관은 후순위 금융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현재 마련된 선박 신조 지원프로그램을 보완해 국내 선박금융 활성화의 마중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지금까지 신조선 계약량과 BDI(벌크선운임지수)의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전략적으로 저선가에 발주하고 고선가에 선박을 판다고 말을 하지만 역사적으로 경기 추종적으로 투자를 해온 걸 알 수 있다”며 “향후 코로나19로 양적완화에 골몰했던 각국이 돈을 거둬들이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있기 때문에 해운 시장도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금융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레스티스 시나스(Orestis Schinas) 함부르크경영대학원 교수는 “현재 해상운임 강세와 은행 간 금리의 안정으로 선박금융 상황은 매우 좋은 편”이라며 “전체 해양자산가치 1조2000억달러(1436조원) 중 25%인 2940억달러(약 351조원)가 상위 40개 선박금융기관의 대출금”이라고 분석했다.
친환경선박금융에 세제혜택 도입 필요
이기환 한국해양대 해양금융대학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지정토론에서 이영민 HMM 재무본부장은 “해운사가 내야 하는 금융조달 비용은 여전히 부담이 크다”며 “해운사가 친환경 선박을 발주하거나 도입할 때 조달하는 금융 비용에 금리 혜택을 주는 정책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영호 수출입은행 해운산업팀장은 “국내 일부 해운사가 기간용선 형태로 선박을 중장기로 빌려주는 전략형 선주사업을 병행하고 있다”며 “선박의 운용과 소유를 분리하는 게 선주사업의 지향점이긴 하지만 국내 해운산업의 상황을 볼 때 운영과 소유를 병행해 경쟁력을 쌓아가는 과도기적 형태의 선주사업도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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