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러시아 간 수교 30주년(2020년)을 계기로 ‘북극협력 2.0’ 시대를 여는 새로운 북극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2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이전의 북극정책과 차별화된 실용적인 북극전략을 새롭게 추진할 것”이라며 “극동개발과 신동방정책과 연계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실용적인 전략이 수립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KMI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극항로 법률 제정, 자원·인프라 개발, 대규모 투자 계획 등 전방위적인 북극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북극 지역 내 항로 및 자원 개발에 적극 추진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러시아 북극항로의 물동량은 지난 2016년 748만t을 기록한 이후, 2017년 처음으로 1000만t을 돌파하더니 2018년(1968만t), 2019년(3150만t)을 거쳐 3년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향후 북극항로 물동량이 2030년 1억t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KMI, 극동지역 개발 등 ‘북극 협력 2.0’ 5가지 제안
KMI는 신(新)북극전략 수립을 위해 필요한 5가지 사항을 제안했다. 우선 러시아 2035 북극전략에 대응하는 분야별·지역별 맞춤형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35 북극항로와 인프라 개발계획은 우리나라 ‘9개 다리’ 전략과 상당한 연계성을 가지고 있어 이같은 전략이 먹혀 들어 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러시아는 2035년을 목표로 한 ‘2035 북극정책 기본원칙’, ‘2035 북극항로 인프라 개발계획’, ‘2035 러시아 연방 에너지 전략 개정안’, ‘2035 북극 개발 및 국가안보전략’ 등 북극전략 마스터 플랜을 수립한 바 있다.
극동 지역의 개발과 북극사업을 연계한 진출 전략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KMI는 정부 차원에서 한-러 극동시베리아분과위원회, 한-러 북극협의회를 북극의 실질적 협력을 위한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제도를 통해 주요 항만과 건설회사 267개 기업이 920억루블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2035 에너지 전략을 통해 동시베리아와 극동러시아 지역의 에너지 인프라를 개발할 예정이다. 최근 러시아는 재작년 2월 기존의 ‘극동개발부’를 ‘극동북극개발부’로 개편해 극동과 북극을 연계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방 국가의 경제재제가 지속되면서 신동방정책을 강화하고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극동과 북극을 연계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나라와의 협력 여지는 커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국내 지원 체계 확대와 기업의 러시아 진출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투자자들의 러시아 투자 애로사항 해소를 위해 정부와 기업 간 지속적인 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KMI는 경제제재로 인한 러시아 경제침체, 지정학적 불안정성, 인프라 노후화 등의 사유로 한-러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대내적으론 국내 기업의 러시아 진출에 따른 언어적 장벽, 낮은 정보접근성 등 기타 부대비용이 높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이 밖에 러시아 북극 이사회 의장국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한·러 북극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MI는 옵서버 국가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북극의 지속가능한 개발’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북극이사회는 가입된 8개국이 2년을 임기로 순번제로 의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2021년부터 2023년 4월까지 2년에 걸쳐 의장국을 맡을 예정이다.
북극이사회는 러시아 2035년 북극 개발 전략의 대외 협력 플랫폼으로서 활용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제4차 한-러 협의회에서 러시아 북극협력대사는 북극이사회 의장국 프로그램에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앞서 우리나라는 협의회를 통해 친환경 수소 기지인 ‘스노플레이크’ 건설 협력을 포함해 러시아 북극이사회 의장국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할 의향을 내비친 바 있다.
“한러간 실질적 북극 협력성과 中日에 비해 저조”
KMI는 우리나라가 쇄빙LNG운반선 건조 분야 제외하고는 한·러간 실질적인 협력 성과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러시아 북극 협력의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하고 협력사업 발굴이 미흡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러시아 ‘북극 LNG’ 사업 지분 투자와 이와 연계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우리나라도 중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선(先) 지분투자, 후(後) 연계사업 진출’ 모델 적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러시아 ‘야말 LNG(액화천연가스)’와 ‘북극 LNG-2’사업 지분 투자를 통해 해운, 조선, 물류 등에서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야말 LNG’ 프로젝트의 중국 참여는 중국이 ‘일대일로’ 체제를 구축한 이래 양국 간 진행한 최초의 초대형 에너지 협력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은 ‘야말 LNG’와 ‘북극 LNG-2’ 사업에 각각 지분 29.9%와 20%로 참여하고 있다.
야말 프로젝트 공동 개발 시작 이후 실크로드 기금은 프로젝트에 7억3000만 유로의 차관을 제공하고, 중국개발은행이 93억 유로, 중국수출입은행이 13억 유로의 차관을 추가로 제공해 중국이 프로젝트 전체 자금의 60%를 지원했다.
일본은 ‘북극 LNG-2’ 사업에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지분 10%를 투자한 이후 LNG 수입과 물류허브기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기업 닛키와 치요다화공건설이 총 사업비용 약 1조엔 이상으로 추정되는 ‘야말 LNG’ 플랜트 신설 프로젝트의 설계·조달·건설(EPC) 계약을 수주했다.
재작년 6월엔 미쓰이물산과 일본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이 ‘북극 LNG-2’ 프로젝트의 사업주체인 ‘북극 LNG-2’에 총 3000억엔을 출자해 일본 최초로 러시아 북극권 LNG 개발권을 획득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야말 LNG’ 사업 참여 협력을 위해 러시아 노바테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다만 이후 ‘북극 LNG-2’ 사업을 포함해 실질적인 참여는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KMI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러시아 LNG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해운물류, 허브기지 건설, 기자재 수출 등 에너지 사업과 연계한 사업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는 ‘야말 LNG’, ‘북극 LNG 2’ 사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북극 LNG-3’ ‘북극 LNG-1’ 사업을 연이어 진행할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어 우리나라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 참여 검토시 경제성 및 투자여력뿐 아니라 참여를 통해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북극항로 활용 해운업 진출 ▲쇄빙선 건조 수주 확대 ▲LNG 생산기지 건설에 필요한 자재 수출 ▲러시아 에너지 및 광물 목재 수입 ▲북방 시장 기업 진출 등에 따른 이득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2035 러시아 연방 에너지 전략’ 수정안을 발표해 개발과 대외 수출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분야의 중장기적 전략을 구체화시켰다. 특히 유럽으로 가는 가스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동북아 시장으로 에너지 수출 규모를 키웠다. 대(對) 아시아·태평양 국가 LNG 수출 비중은 2035년까지 50%로 확대한다. LNG 생산은 2018년 대비 2024년까지 최대 3.4배, 2035년까지 최대 7.4배까지 늘어날 계획이다.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 수출 규모도 약 1.7배 증대시킬 예정이다.
또한 아태 시장 진출 목표를 상향 조정해 러시아 에너지 총수출 중 아태 국가 수출 비중을 2018년 27%에서 2035년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LNG 생산 확대를 위해 ‘야말 LNG’ 프로젝트와 ‘북극 LNG-2’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야말반도와 기단반도에 대규모 LNG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이다.
< 홍광의 기자 keho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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