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대중소설 제목들이다. 작품엔 구조자와 생존자, 유가족, 잠수사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때의 기록은 ‘진실을 인양하라!’는 또 다른 요구였다.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는 인양됐지만 진실은 함께 인양되지 않았다고 믿었다.
세월호 선체가 2017년 4월 11일 오후 4시 목포신항 철재부두에 최종 거치되면서 2015년 8월 7일부터 시작된 인양작업이 613일 만에 끝났다. 인양작업이 완료되면서 목포신항에 마련된 현장수습본부는 미수습자 수색 체제로 전환했다.
“1년 8개월이라는 힘든 대장정을 마무리했는데, 이제 상하이샐비지와 맺은 계약도 끝나는 겁니까?”
기자의 물음에 답하는 현장수습본부장.
“상하이샐비지는 선체 좌현이나 램프 등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해 잠수부가 확보한 모든 영상자료를 우리 정부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이를 토대로 정부에서 진상규명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해양수산부와 상하이샐비지의 계약기간은 2017년 6월까지다. 중국 구난업체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 한국 정부는 이를 검토한 후 인양비용을 지급하게 된다. 침몰해역 수색 작업은 남은 기간 계속 진행한다.
세월호를 육상에 거치하는 작업은 큰 도전이었다. 선체를 부두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듈 트랜스포터의 일부 바퀴가 꺾이는 사고가 발생해 작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타이어 2,400개 중 6개가 파손됐다. 선체가 6~7도 정도 기운 게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인양과정에서 잠수부를 비롯한 인원들이 부상 당하지 않은 것은 큰 성과였다. 상하이샐비지는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킨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코리아샐비지는 선내 수색을 위해 워킹타워를 설치했다. 워킹타워 높이는 26미터. 선수와 선미 가까운 쪽에 2대가 나란히 세워졌다. 중간에 수평으로 작업용 받침대를 설치해 선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선체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위험 물질이 있는지, 철제벽은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내부 상황이 파악되면 이를 토대로 정확한 수색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반잠수선 갑판과 선체 내에서 수거한 진흙을 걸러 각종 유류품이나 유골을 찾아내는 작업은 마무리됐다.
선체 수색이 시작된 지 몇 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참사 피해자 가운데 5명은 여전히 미수습자 상태였다.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 권재근·혁규 부자다. 유가족은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한 한 후 지금까지 계속 현장에 머물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2017년 11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체 수색이 마무리돼 가는 시점에 의견을 내놓았다.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고 여길 떠나겠습니다.”
수색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자 가족들은 밤을 새면서 많은 갈등을 했다. 영원히 가족을 못 찾을 수 있다는 공포와 고통이 점점 커져갔지만 한편으로 현장에 계속 남아 있는 게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올바른 방법인지 고민했다.
“지지해주시는 국민들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하기로 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대표는 선언했다.
2017년 11월 18일
미수습자 5명의 가족은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을 가진 후 안산에서 3일장을 치렀다. 유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유품을 태워 유골함에 안치했다. 수색에서 박영인 군의 교복 상의와 남현철 군의 가방이 발견됐다. 권재근 씨의 유품은 이삿짐을 실었던 트럭의 화물칸에서 발견됐다.
아들 혁규 군의 가방과 세면도구도 함께 수거됐다. 양승진 교사의 유품은 발견되지 않아, 평소 학교에서 사용하던 물품과 옷가지를 안치했다. 이들의 발인이 이틀 후 안산 제일병원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양승진 교사와 남현철·박영인 학생은 평택 서호공원에, 권재근 씨 부자는 인천 가족공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안치됐다.
세월호를 인양한 지 반 년여 흘러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색 감독 권한을 가진 선조위는 선체 직립(直立)을 결정했다. 선체를 바로 세우면 진입이 어려웠던 구역까지 수색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세월호 선체 안에 남아 있는 5% 정도의 펄과 침몰 때 압착돼 그동안 수색하지 못한 좌현 부분에서 미수습자 유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선체를 직립하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기자는 세월호를 똑바로 세우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을 염려하는 듯했다. 현장수습본부장은 수치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직립 준비 기간은 5개월, 비용은 최대 100억 원까지 들 수 있습니다.”
세월호 직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질 무렵 기관실과 조타실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기관실과 조타실은 구조물들이 널브러져 있는 데다 펄이 가득해 진입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기관실은 평형수 밸브를 조정하고 조타실은 배의 진로를 관장하는 곳이다. 평형수 부족과 배의 급속한 선회가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꼽혀온 터라 선체를 직립해 두 곳을 정밀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런데 왜 하필 인양 후 7개월 지나서야 선체를 세우기로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 배경을 궁금해했다. 조사위 부위원장 김영모는 “그동안 미수습자 수습이 정리되지 않아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선체 상태의 변화에 미수습자 가족들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유체를 찾는 데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유가족 면담에서 선체 보존 얘기를 꺼내면서 선체 직립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 부위원장은 침몰 원인을 정밀조사하고 미수습자를 수색하기 위해선 선체를 똑바로 세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관 안전 확보와 좌현 확인을 위해 선체 직립은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선조위는 직립 후 조타 유압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와 엔진 프로펠러의 오작동, 좌현 충돌 흔적과 스태빌라이저를 조사하기로 했다.
“국민적 의혹을 우리 손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선조위 부위원장은 각오를 다졌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한 신상철은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여태 뭐하다 지금에서야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합니다. 눕혀서 인양한 건 정밀조사를 방해할 목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직립을 결정한 것은 다행이네요.”
다이빙벨로 유명세를 탄 이종인은 분노했다.
“시간 끌기 아닌가요? 이제 와서 최선을 다했다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2018년 2월 21일
직립(直立)을 위해 세월호가 거치 316일 만에 자리를 옮겼다. 부두와 수직으로 누워 있던 세월호는 선저가 바다 쪽을 향하도록 90도 수평 회전해 바다와 50미터 거리에 놓여졌다. 직립 준비 작업의 초점은 선체를 원형대로 보존하며 이동하는 것이었다. 선체 하부에 모듈 트랜스포터(MT) 364축이 들어가 마치 지네처럼 움직이며 조금씩 세월호를 움직였다. MT가 들 수 있는 무게가 1만여 톤에 달하는 만큼 평행이동에 큰 지장은 없었다.
세월호 무게는 수평빔과 펄 등을 포함해 약 8,500톤가량이었다. 거대 중량물은 지반이 고르지 않아 한 번에 몇 십 밀리미터씩 이동했다. 소리가 조금 났지만 큰 위험은 없었다. 4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선체는 해안선과 수평을 이뤘다. 누적 이동거리는 1.5킬로미터에 달했다.
훼손된 부분을 보강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시공사는 B갑판(3층 객실부), D갑판(1층 화물칸) 쪽 선미 6곳, 선수 3곳에 보강재를 덧댔다. 선체 이동을 위해 B갑판 서포트 2개와 선저부 서포트 7개는 제거했다. 선체 보강재는 따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했다. 모든 용접 부위 철판의 균열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비파괴검사도 함께 벌였다.
2018년 3월 23일
침몰했던 세월호가 물 위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꼭 1년이 됐다. 선체 직립을 앞두고 선조위와 유가족, 취재진이 세월호 내부에 들어갔다. 서정민도 일행에 꼈다. 사고 당시 승선자로서 선체 내부를 잘 알거라고 생각하여 선조위는 그를 안내자로 추천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선내 구조물의 불안을 안고 그들은 뱃속 탐사를 시작했다. 안전모를 바짝 당겨 맨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긴장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 선체 바닥층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조그만 통로를 거쳐 내려가자 진흙과 화물이 뒤섞인 진퇴양난의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지금 있는 곳이 제일 밑 부분인 E갑판입니다. 왼쪽에 화물을 싣는 공간이 보이죠. 바로 오른쪽으로 보면 구멍이 뚫린 곳이 있습니다. 이 안쪽이 기관구역입니다.”
선조위 선배가 설명했다. 기관실은 객실과 함께 미수습자 5명의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큰 장소다. 하지만, 비좁은 데다 붕괴될 우려도 커서 접근이 어려웠다.
일행은 뱃머리 부근의 4층 객실로 들어갔다.
“단원고 학생 60명이 머물던 곳입니다.”
무너져 내린 격벽 아래로, 눌려 있는 단원고 교복과 옷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둘러본 선체 벽면은 대부분 녹이 슬었고, 곳곳이 심하게 휘어졌다.
“유류품을 수습해야 하는데 격벽을 절단하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수색을 못하고 놔뒀습니다.”
선배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C갑판(2층 화물칸)이 많이 붕괴돼 있어요. 직립과정에서 추가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 중입니다.”
정부는 남은 준비작업 일정을 발표했다. 4월 10일까지 선체에 수직 빔을 설치한 뒤 5월 26일 부두와 4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해상크레인을 가져와 작업 준비를 마친다는 구상이다. 5월 말까지 내부 보강 작업이 마무리되면, 세월호는 침몰 4년 만에 바로 세워지게 된다.
정부는 아울러 선체 수색과 동시에 침몰지점과 인양 과정에서 세월호가 이동한 경로인 맹골수도에서 목포신항 쪽까지 약 3킬로미터 수중 지역도 함께 수색한다고 말했다.
“수중수색을 지속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텐데….”
“최종 보고서를 받으면 그것도 검토할 겁니다.”
“지지해 주시는 국민들 더 이상 맘 아프지 않게 해야죠.”
선체 직립을 앞두고 SNS에서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댓글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세금 도둑이냐? 떼 좀 그만 써라.”
“이제 그만 좀 해라.”
유가족은 매서운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통과한 ‘사회적 참사법’은 세월호 피해자에게 위로의 손길이 돼 주었다. 노아의 방주와 크기가 비슷한 세월호의 향후 행로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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