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5 16:00

더 세월(42)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38. 그날 이후 일 년
 


 
팽목항 방파제 끝에는 빨간 기둥의 등대가 희망의 비손처럼 우뚝 서 있다. 등대 기둥에 붙어 있는 커다란 노란리본은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듯 방파제를 길게 내려다보고 있다. 방파제 난간에 걸어 놓은 수많은 작은 리본은 소원 한 대목씩 품고 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수사권 기소권 보장하는 특별법’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 ‘온전한 인양’ …


지난해 봄부터 각 국면마다 중심에 떠오른 구호들이 노란 리본에 적혀 방파제에 나부꼈다. 개중엔 좌절한 구호처럼 바닷바람에 삭아버린 것도 있었다.


‘하늘로 간 수학여행’ 이순정이 현수막을 보았을 때 울음이 날 것만 같았다. 손을 잡고 있던 조카 소라는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듯 발음했다. 아직 죽음을 실감할 나이가 아닌지 아이의 눈망울은 맑고 초롱초롱하기만 하다. 홍소라는 이모를 따라 진도와 팽목항을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진도체육관과에서 팽목항을 오가는 40분의 여정에 이순정의 좋은 말동무가 돼 주었다. 팽목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 구경을 갔을 때는 국악인은 전통음악과 무용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자 이 ‘초딩’ 아이는 엉뚱하게도 머리를 뒤로 잘 묶는 사람들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국악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쪽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실종자 9명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다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수색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에 선체 인양이 사실상 유일한 희망이다. 실종자 가족 중에는 팽목항 임시주택 방을 지키며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가 인양 계획을 발표하고 바지크레인이 작업을 시작하는 것만 봐도 집에 가겠어요.”


유족의 소박한 소망이다. 사고 해역을 마주한 분향소에는 희생자 295명의 영정이 있다. 9명의 실종자 가족은 분향소에 영정을 넣고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종자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노란색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낄 뿐이다.


안산 합동분향소엔 추모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난 일 년간 50만 명이 다녀간 곳이란 사실이 무색하게 참배객은 평일 백여 명, 주말 삼백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봉하마을은 연평균 백만 명이 꾸준히 찾는다는데 이곳은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은 것 같아 씁쓸했다. 텅 빈 분향소 안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추모곡과 영상만이 그날의 아픔을 반추할 뿐이었다.


일 년 전 매일같이 추모집회가 열리던 중앙역 앞 중앙광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빛바랜 노란색 추모 현수막이 흐릿해진 참사의 기억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더 이상 현수막 내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족 다섯 가구가 안산을 떠났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어떨까? 아이들의 교실은 명예 3학년 교실로 바뀌어 있었다. 이순정은 열 반의 교실 모두를 돌아보았다. 예슬이도 동혁이도 유민이도 다윤이도 건우도… 하늘에서 별이 됐다. 교실 문마다 복도마다 아이들 얼굴이 교차한다. 화창한 봄날이 슬픔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봄날 꽃 같은 아이들.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416시간 연속 농성’에 돌입했다. 세월호 1주년이 되는 4월 16일까지 이어지는 농성은 빨리 배를 끌어 올리라는 강력한 압박이었다. 광화문 농성 천막 앞에 전시된 기록 사진은 지난 1년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기에 충분했다. 한 유족의 부르튼 입술과 거칠어진 피부에서 고통의 시간이 읽힌다.


세월호 1주년을 맞아 시 낭송 대회가 열렸다.


- 세월호의 진실을 건져야 한다.

- 참사를 만든 이들을 처벌하고, 필요하다면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산 자가 삶 속에서 살아가고 죽은 자가 죽음을 누릴 수 있게 하라.

-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 당연함은 피와 눈물 속에서 선취된다.

시가 아니라 일종의 구호였다. 진실이 너무 무거워 8천 톤급 삼성 해상크레인으로도 건져내지 못하는지 따져 묻고 있었다.


희생자의 언니가 동생을 생각하며 낭독했다.

- 니가 20살도 못돼서 떠날 줄 알았으면

- 매일매일 안아볼 걸

- 언니 언니 부르던 우리 지연

- 꿈을 빼앗기기 싫어하던 너

- 니가 떠난 후 하루에도 몇 번 죽고 싶어, 살고 싶어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기억을 낭독했다.

 
아들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 자주 물었다. “엄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내가 없었으면 어땠을 거 같아?” “우리 아들은 공기야. 엄마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 아들 없으면 나는 못 살 거 같아.” 애 아빠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빠랑 안 만났어야 했어.”


아들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태어나?” “넌 그래도 내 아들로 태어났을 거야.” 엄마는 이어서 말했다. “네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단다.” “엄마하고 나하고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 광장에 모인 사람 모두가 울컥했다.

 
사회자는 “고통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해 화가 날 정도입니다”라며 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시인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그날의 아픔을 노래했다.

 
그날 바람이 불었다.


눈알이 뽑힌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그 바람처럼 마음의 한 부위를 예리하게 도려낸 자들이 있었다.


그렇게 가벼워진 자들은 달렸다.


아직 살아 반짝이는 백의 머리와 눈동자를 차례로 밟으며 달렸다.


그런데 끝내 하나는 오지 않았다.


누구든 불러낼 수 있는 단 하나였는데도.


곳곳에서 비어져 나오는 물 밖의 목소리들만 허공에 붙박여 있었다.


물 안에서 어지러이 떠돌던 백의 목소리는 물 밖의 목소리와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주기로 했다.


이르지 못할 수면을 향해 슬픔의 기포를 쏘아 올리지는 않겠다.


조끼를 입었거나 입지 않았거나 그림자들은 쪼개지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다.


덩어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제를 유랑한다.


물 밖에선 내일이 이곳으로 밀어닥친다.


그런데도 이곳은 그곳처럼 깜깜하다.


목소리만 무성한 채로 이곳은 이렇게 깜깜하다.


어둠 속에서 그러나 우리는 두드리고 있다.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열어젖히려고 두드린다.


밀어닥치는 내일이 아니라 건져 올릴 내일을 생각하며 두드린다.

 
이순신 동상 옆에서 시낭송을 듣고 있던 이순정은 한 대목에서 가슴이 메었다.


<물 안에서 떠돌던 백의 목소리가 물 밖의 목소리와 만나지 못했다>


그곳 물속이나 이곳 현실이 깜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박근혜 정부가 몹시 실망스러웠다. 배를 인양한다고 발표해놓고 끌어 올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니. 유가족이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녀는 속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가 나오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섰다.


마치 자석이 지나가자 철가루가 일제히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좌우로 조용히 손을 흔들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공식 추모곡으로 헌정된 것이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음원 수익금 6천만 원 전액을 기부했다.


“곡이 슬프고도 아름답지 않아?”


옆의 친구가 말했을 때 이순정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이 있구나, 오늘 비로소 깨달은 그녀였다.


이순정은 사실 친구가 두 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는 지나치게 새누리당 편향적이란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늘 같이 엄숙한 날에 찢어진 청바지와 요란한 후드 티를 입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함께 자리를 지키고 아픔을 나눌 만큼,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의리가 있는 친구였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무렵 그들은 광장을 나와 무교동으로 빠졌다. 침몰한 배를 기억이라도 하듯 건물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몸뚱어리처럼 서 있었다. 사회 여기저기서 활활 타는 적개심이 만연해서인지 건물들이 깡말라 보였다. 을지로에서 천 원짜리 노가리를 몇 개 시켜 놓고 맥주를 마시며 이순정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아닌가. 이렇게 맥주도 사주니… 호호.”


청바지 친구는 추모일이란 걸 잊은 듯 크게 웃었다.


친구는 앞에 놓인 생맥주를 들이키고는 이순정을 쳐다보았다.


“내가 예언 좀 할 줄 아는데, 넌 조만간 가까운 사람과 결혼할 거야.”


“그건 중병 걸린 사람에게 죽음 예언하는 거와 같다, 야.”


그러곤 이순정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운 사람과 결혼하는 건 당연하지.”


“하여튼 두고 보자구. 강력한 촉이 느껴지니까.”


이순정은 서정민 사장의 귀가 간지러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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