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앞에 세월은 겸손치 못했다. 예의도 없이 참사 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안은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지만 바깥은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서정민은 평소 연락하고 지내던 제주도 출신 화물차 기사 양원석의 연락을 받았다.
“서 사장님, 가족협의회는 광화문에서 머리 깎고 의지를 보이는데 우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까? 벚꽃이 다시 피고 1년이 흘렀는데… 진도는 아니더라도 광화문에는 가봐야 되는 거 아녀요?”
양원석은 심리치료차 안산에 와 있다. 서정민은 일반인 피해자 협의회에서 전문가로서 정신적 지주 대접을 받고 있다. 대표로 추대되기도 했으나 사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그러고 보니 다소 무관심했네요. 그럼, 일 좀 정리해 놓고 오후 4시 청계광장에서 만나죠. 소라 조형물 앞에서.”
세월호 1주기를 보름 앞두고 전국이 다시 들썩거렸다. 광화문거리에선 침묵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대들은 특별법 시행령 취소와 선체 인양을 촉구했다. 침묵은 자체 발광하는 조명처럼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시간에 강렬한 빛을 발한다.
살이 다소 빠진 양원석의 모습은 속이 빈약한 소라의 모습같이 측은해 보였다. 세월호로 인해 원치 않는 다이어트를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서정민도 예외는 아니다.
양원석이 소라 조형물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서 사장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홍소라 생각이 나서 조형물이 궁금했었는데….”
혹시, 소라 조형물의 크기에 감탄했다는 뜻인가? 소라 조형물을 이순애 딸 홍소라의 모습쯤으로 상상한다면 아주 자유로운 착각이다. 소라인지 고동인지, 아니면 아이스크림인지 횃불인지 모를 조형물이 청계광장 입구에 우뚝 서 있다. 약속 장소로 이만큼 제격인 곳도 없을 것이다. 서정민과 양원석은 조형물을 벗어나 광화문광장으로 건너갔다.
광화문광장은 어수선하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세월호를 끌어올리지 않느냐고 플래카드는 성토한다. 가족협의회는 시행령 폐지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깎은 머리가 또한 빛을 발한다. 머리 위로 사발통문 같은 4월의 오후 하늘이 영문도 모른 채 내려다보고 있다.
모여 다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애기똥풀꽃 같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무사귀환의 희망을 가슴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것처럼.
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동료 의원 60여 명이 광화문광장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인간띠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침묵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표현했다. 별도의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터라 1인 시위 형태로, 각자 3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광화문 광장을 에워쌌다. 원내대표는 모두발언도 하지 않았다.
“3미터 간격도 집시법 위반이므로 20미터로 벌려주세요.”
경찰이 와서 요구했으나 법을 살리고 죽이는 국회의원한테 무슨 법 타령이냐는 듯 그냥 웃고 넘어간다.
“옥외집회와 시위는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셔야 합니다.”
경찰이 다시 법을 거론하자 당 간부는 또 싱긋이 웃고 만다.
“누가 모르나. 창피하게 그런 얘기는 왜 해요.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텐데.”
한쪽에서는 통진당원들이 단식시위를 하고 있고 이들 텐트 바로 앞에서 극우 커뮤니티인 일베 회원들이 피자를 우걱우걱 먹으며 이를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당연히 당원들 쪽에서 폭언이 나온다. 음식 먹는 것은 위반이 아니나 폭언은 현행법 위반이니, 결국 참을성 없는 쪽이 지게 마련이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텐트를 보고 멈췄다.
“아니, 이건 서울시 로고 아녀? 서울시에서 준 건가?”
시민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경찰은 유가족에게 텐트를 제공한 서울시 부시장을 이미 고발했었다.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경찰이 왜 개입하느냐?”
서울시의 이의 제기는 아주 상식적인 대처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판사는 이런 걸 어떻게 판단할까. 그들은 이런 게 스트레스겠지.
가족협의회가 시위하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양원석이 서정민을 쳐다봤다.
“먹을 거라도 들고 왔어야 하는 거 아녀요. 빈손으로 가요?”
양원석이 말했을 때, 서정민은 손을 저었다.
“삭발한 마당에 먹을 정신들 있겠어요? 최진수 대표나 만나서 위로하고 갑시다.”
최진수는 화물차피해 대표자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위로의 한마디는 해줘야 한다는 게 서정민의 생각이다. 두 방문자를 만난 최진수는 삭발한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보기 어때요?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의지를 보여야 할 것 같아서… 내 생전 중머리는 처음이라우.”
웃음을 머금은 그의 모습은 결의에 차 있는 다른 삭발 참여자와 비교돼 다소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52명이 삭발했다. 일반희생자 가족 2명과 일반피해자 한 명을 빼놓고 모두 학생희생자 부모들이다.
시위대들은 빗속에 몸을 떨었다. 삭발한 머리를 감싼 밤공기가 유독 춥게 느껴졌다. 유가족은 단호했다. 정부가 시행령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배를 인양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특별조사위원회에 다수의 민간직원을 채용해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직원 수를 줄여 업무역량을 축소하고 주요 직책을 파견공무원이 맡도록 한 시행령은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월 1일 출범한 위원회는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활동기간 1년 6개월 중 반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가족협의회는 궐기에 들어갔다.
― 정부가 희생자와 피해가족을 돈으로 능욕했다!
―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하라!
― 정부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하라!
서정민과 양원석은 위로를 마치고 광장을 나오다 관중 속에서 노인들이 큰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노인A “세월호 인양은 대통령이 발표했잖아. 배·보상은 나중에 받으면 되잖아.”
노인B “국회의원과 유가족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마당에.”
노인C “미국 9.11테러사태 때는 미국민이 모두 단합했는데 이 나라 여야는 무슨 꼴이야.”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끝이 없다. 정부 하는 일이 하루이틀 미숙한 것도 아닌데 정부 탓하는 데 매달려 있는 것이 외국동포들이 볼 때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에 함몰해 있으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꼬여만 간다. 과거는 곱씹을수록 불행해진다. 이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자.
생각이 다른 젊은이들 목소리도 들렸다.
청년A “돈 때문에, 특례입학, 의사자 대우를 주장한다고 진정성을 호도하고 있잖아.”
청년B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 입맛대로 끌고 가겠다는 건 코미디야.”
청년C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의 목적이 불투명해.”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세월호 인양은 배를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돈이 얼마가 들든 인양은 필요하다.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공감 능력의 결여로 오히려 상처를 키우기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불행에 대한 연대’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참담하다는 것이다. 서정민은 어느 책에선가 본 내용을 기억한다.
“국가는 있는 사람은 놔두고 없는 사람만 돌보면 된다. 국가는 GDP 부족이 아니라 공평성 부족 때문에 멸망한다. 달리기에서 출발점이 다르면 되느냐.”
그저께 기부왕 가수는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월호는 그냥 놔두라. 노조든 뭐든 도와주는 건 좋지만 제발 희석시키지 말라. 좀 빠져 달라. ‘정권 타도’, ‘박근혜 아웃’ 이런 걸로 희석시켜서 유가족을 애먹이지 말라.”
대통령에겐 이렇게 전했다.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보듬으며 비리 척결을 과감하게 실천하라.”
새겨들을 만하다. 현 상황을 잘 꼬집었다고 서정민은 생각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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