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회장의 사업 수완은 자타가 인정한다. 직계 가족들이 계열사 다판다에서 증자 고문료 상표권 등을 통해 수입을 올렸고, 모래알디자인 청해진해운 등의 계열사로부터 고액의 급료를 챙겼다. 아파트 220여 채를 신 엄마 등 측근 명의로 차명 보유하기도 했다. 일찍이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눈치 채고 ‘문진미디어’를 만들어 학부모 지갑을 열게 했다.
가족의 재산이 수천억이라지만 그들로부터 세월호 사고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확인된 유 회장의 재산은 800억 원이었지만 부인과 장남은 이미 상속을 포기한 상태였다. 다른 자녀도 상속을 포기할 가능성이 많았다. 세월호 수습비용은 6천억 원에 이른다. 정부는 일단 국고로 사고를 수습한 뒤 유씨 일가에 청구할 계획이지만 유 회장 재산이 극히 일부를 빼면 전부 측근 이름으로 차명 소유한 것들이어서 회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쏠렸다. 그가 소유자라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정부는 그의 재산에 손을 댈 수조차 없다.
“자금관리인 김 여사의 재산이 많다는데요?”
제세실업은 청해진을 상대로 선용품 대금 채권 2억 원을 가지고 있다. 이순정은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아버지 이팔봉 회장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제세실업 제주 사무실에서 두 부녀가 채권 회수 문제를 의논한 것은 처음이다. 장녀를 잃은 아버지가 너무 상심해 있었기에 이순정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김 여사를 구속하고도 300억 원이 넘는 그녀의 재산 중 차명재산은 한 푼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이를 본 이순정은 채권을 돌려받는 게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이중 피해자네요. 언니는 죽고 대금은 떼이고….”
“언니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가슴이 메려 한다. 돈은 벌면 되지만….”
이 회장은 역정을 내려다가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제세실업에 2억 원은 그다지 큰돈이 아니지만 사람과 돈을 동시에 잃었다고 생각하니 이순정도 마음이 울컥했다. 유 회장 가족과 측근들이 계열사에서 횡령한 천억여 원은 세월호와 관련이 없다보니 고스란히 계열사로 되돌려줘야 할 판이었다. 장남의 자택에서 압수한 그림 20점과 1980년식 벤츠 차량도 가압류 상태였지만 청해진과 관계가 없어 제세실업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유씨 일가에게 참사의 책임을 묻겠다던 정부 계획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2015년 4월 1일 오전
제세실업 제주 사무실 응접실에서 세 사람이 TV 앞에서 차를 마시며 정부의 중대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세실업 회장 이팔봉, 기획실장 이순정 그리고 머린컨설팅 사장 서정민이다.
참사 1주년을 앞두고 세월호 배·보상 지원단장이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최근 확정된 희생자 배상 기준을 브리핑했다. 그는 배상금과 위로금은 평균적으로 사망자 1인당 단원고 학생 8억 원, 단원고 교사 11억 원, 일반인 6억 원가량이 될 거라고 설명하고 앞으로 설명회 개최와 현장 접수 등 배·보상 절차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단원고 학생 : 배상금 4억 + 위로금 3억 + 보험금 1억
단원고 교사 : 배상금 7억 + 위로금 3억 + 보험금 8천만
일반인 : 배상금 3억 + 위로금 3억 + 각자 보험금
배·보상심의위원회에 따르면 배상금은 인명, 유류오염 및 화물을 합쳐 1,400억 원 규모라고 한다. 인명 배상금의 경우 학생과 교사, 일반인 계산 방식이 달랐다. 단원고 학생은 성인연령 만 19세에서 법정정년 만 60세까지 42년간 벌어들인 소득에서 생활비를 뺀 금액을 받는다. 소득은 보통인부 노임단가 월 193만 원을 적용했다. 단원고 교사는 사고 당시 소득 기준으로 정년 만 62세까지 예상소득을 계산했다. 일반인은 직장이 있으면 해당 직장 월급체계, 직장이 없으면 학생 수준을 적용한다고 했다. 배상금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예상수입액인 일실수익은 월소득에 장래의 취업 가능기간을 곱한 금액에서 단리 할인법(연 5%)으로 중간이자를 공제해 산출했다. 국가가 민법 국가배상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배상금을 우선 지급하고 선사 등 사고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어떤 보험금인지 궁금하구나.”
이팔봉 회장은 숫자로 표시되는 내용들이 잘 이해되지 않은 모양이다. 서정민이 자세를 고쳐 잡고 보도 내용을 보충 설명한다.
“학생들은 여행자보험 1억 원, 교사는 교직원단체보험 8천만 원에 들었답니다. 일반인은 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 순애 씨는 여행자보험에 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회장은 기뻐하기는커녕 ‘돈이 무슨 필요냐’고 낮은 소리로 혼잣말했다. 이순정은 눈치 빠르게 아버지의 기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서 사장님, 성금이 얼마였기에 지원위로금이 3억씩인가요?”
딸의 톤 높은 목소리에 이 회장이 숙였던 고개를 들자 서정민이 용기를 얻었다.
“걷힌 성금은 1,300억 원가량이랍니다.”
이순정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는지
“그러면 더 줘야 되는 거 아녀요?”
재빨리 확인하려 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여자치곤 의외로 숫자에 민첩하다고 생각한 서정민은 그녀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성금에서 ‘세월호기념재단’ 설립비용 30퍼센트 정도를 뺀 것이라네요. 재단도 운영자금이 있어야 하니까요.”
“언니의 경우, 제가 간단하게 계산해보니까, 모두 12억가량 될 것 같더라구요. 여행자보험도 들었으니.”
그러면서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말머리를 돌렸다.
“교감 선생님은 어떻게 되나요? 가족들의 맘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왜 갑자기 교감 선생님이람? 이순정이 연민에 빠졌나?’
서정민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 선생을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심의위원회에서 그를 배려하는 덴 회의적이었다. 이팔봉 회장은 사망자의 목숨 값을 두고 두 젊은이가 열을 내는 것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이 때문에 사무실 안은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뭔가 결심한 듯 회장은 몸을 곧추세웠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니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다.”
뜻밖의 선언에 이순정은 움칫했다. 아버지의 진정성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려는 듯 그녀는 서정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받은 그는 이제 영감을 쳐다보았다. 진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저도 보태겠습니다. 회장님.”
“자네는 오히려 위로를 받을 입장 아닌가. 심리치료는 잘 받고 있나?”
“잘 받고 있습니다. 일정 지원금도 준다더군요. 그러니 저도 장학사업에 동참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순식간에 이뤄진 일에 이순정은 얼떨떨했다. 사무실 안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녀는 서정민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참회세로 봐도 되겠네요. 언니가 용서할 거예요.”
“절 너무 아프게 건드리면 공황증세가 발동한답니다.”
서정민이 밝은 표정을 짓자 이순정은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소라에게 줄 유산은요?”
“소라는 이 할아버지가 알아서 한다. 내가 키울 거다.”
이 회장의 목소리에 모처럼 힘이 들어갔다. 엄마는 사고로 죽고, 아빠는 재혼한 외손녀를 직접 키우겠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결의에 가득차 있었다. 이팔봉 회장은 화제를 일부러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사망 교사에게는 국가가 달리 보상하는 것이 있다지?”
“회장님께서 그런 것도 다 알고 계십니까?”
서정민이 신기한 듯 물었다.
“자네한테 말한 적이 없었던가. 나도 한때 지방공무원이었다고.”
“그러셨군요. 지급받은 순직유족보상금이 있다면 배상금에서 공제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재해가 아닌 단순한 교통사고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순정은 주장한다. 사고가 정부의 합작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정민은 냉정했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도 곤란하고요. 그래서 위로금 등으로 보완한답니다.”
피해자가 일반국민처럼 이야기하니 이순정은 오히려 배앓이가 오려 했다. 정부는 특별법에서 배상금 신청 기한을 6개월로 정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다. 유족들이 신청을 빨리 끝내고 안정된 일상으로 복귀하길 바라는 속마음이었다. 금액 등에 이의가 있을 경우 배상금을 신청하지 않고 소송 절차를 밟는 것도 가능했다.
이순정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었다.
“4.16가족협의회는 어떤 분위기인가요?”
“지금 보상금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고, 일단 배를 인양하고 진상규명을 한 뒤에 보상을 논해도 늦지 않다면서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네요.”
피해자 가족들의 상황을 잘 아는 서정민이 답했다. 하지만 배를 인양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1,200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문제였다. 조류가 강해 인양기간이 무작정 연장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었다.
“일부 유족들이 인양 예산으로 차라리 배상금을 늘려달라고 주장할 만하네요.”
이순정이 방송에서 들은 바를 이야기했다.
서정민은 인양 얘기가 나오면 답답증이 밀려왔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크레인을 이용해 배를 잡고 수심이 얕은 쪽으로 옮겼더라면 인양이 더욱 쉬웠을 거라는 게 평소 생각이었다. 사고 수습은 시신수습, 선체인양, 책임자처벌, 손해배상, 재발방지대책 순으로 실행했어야 하는데 초기 단계에 유가족을 설득하지 못해 선체 인양 시기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조류가 센 맹골수도에서 수중수색을 백 일이나 한 것도 무리였다. 모두 서정민의 생각일 뿐이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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