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2 16:05

더 세월(27)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25. 선원의 죄형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

해양 분야의 오랜 전통이다. 타이타닉이 그랬고 참사를 겪은 많은 배가 그랬다. 선장이 배와 함께 가라앉지 않고 선원들과 함께 경비정을 타고 빠져나왔다는 것, 세상은 용납하지 않는다. 선박직 직원 15명 전원은 승객에 대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탈출한 ‘유기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세월호 선원의 수사와 관련한 뒷이야기는 ‘죄와 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합수부 조사를 받고 귀가한 1기사 손두식(57)은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3항사와 2기사는 스물다섯 앳된 여자의 몸으로 선원의 역할과 사명이 뭔지 깨닫기도 전에 기구한 운명에 엮이고 말았다.

사고 7개월 후인 2014년 11월 11일, 빼빼로가 많이 팔리는 날 1심 재판부는 선장 36년형, 1항사 20년형, 2항사 15년형, 동사(同事)1항사에게 7년형을 선고했다. 당직이었던 3항사와 조타수는 각각 10년형, 나머지 선원에게는 각각 5년형이 선고됐다. 선장의 죄목은 치사유기죄.

선원들과 검찰은 모두 1심에 불복해 항소했고 항소심은 구속만료일인 2015년 5월 15일을 보름 정도 앞둔 4월28일 열렸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재판이라 광주고법은 취재진에게 촬영을 허락했다. 수원지원 안산지원에도 영상을 통해 재판이 실황 중계됐다. 유가족을 위한 배려였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백여 명의 유가족들은 차분하게 항소심 재판을 지켜봤다.

탑승자 304명을 죽인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안산지원 법정의 유가족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몰아쉬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서정민. 방청석의 주장에 동조해야 하는가, 그는 머리가 아팠다. 피해의식과 직업의식이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켰다.

원래 선원의 과실은 육상과는 달리 형사책임이 제한적이었다. 항해과실(航海過失)이나 상사과실(商事過失) 모두 면책의 범위에 포함됐다. 해상 고유의 특성을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해상 인사사고에서 전통적 면책이 파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설사 형사책임이 면책되더라도 민사책임으로 인해 패가망신에 이르는 사례도 종종 보고된다. 상선 대학의 한 친구는 도선사(導船士)로 열심히 부를 쌓아왔는데 2년 전 과실치사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그는 명예와 부를 모두 날렸고 그의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해상 종사자가 부족한데 이러다간 배 움직일 사람 없겠네.”

우연의 누적과 필연의 축적으로 인생이 바뀐다고 하지만, 국가 경영을 짊어진 사람처럼 서정민은 마음이 무거웠다.

세월호 전복사고는 선박복원성 불량, 화물관리 부실, 여객선운항관리 부실, 선원 과실 등이 원인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감독관청과 선주의 비리와 탐욕이 뿌리 깊게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제도와 관행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해부해야 한다는 게 기업가로서 서정민의 생각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에게 고도의 도덕성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업을 탓하기 전에 국가가 안전의무 준수 제도를 수립하고 이를 엄격하게 집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정민은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해사법령에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선박안전법, 해사안전법, 선원법, 개항질서법이며 선박운항의 안전을 규정한 법률은 왜 그리도 많은가. 선사나 선원들이 이 많은 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정확하게 준수하기를 기대하는가? 단일 법률로 통일해야 한다. 법령 관리부서가 달라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 인허가부서와 단속부서, 처벌부서가 각각 달라 효율성이 떨어진다. 처벌규정도 미흡하다. 벌금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다보니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솜방망이를 야구방망이로 바꾸어야 하나요?”

누가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고 서정민은 생각했다.

정부는 사고 대처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다. 진정성은 유리관을 통과하는 액체와 같다. 투명성과 소통이 요구된다.

유가족의 응어리진 마음을 다독인 교황의 따뜻한 악수는 진심을 담은 소통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8.15 광복절 다음날 프란체스코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시복미사 직전에 20만 명의 인파를 뚫고 40일간 단식한 김영오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위로를 전했고 유족들은 그에게서 평안을 얻었다. 해수부 이주영 장관이 수염을 기르기 전에 정부 고위직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유가족과 만남을 가졌더라면 일은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추운 겨울이 닥쳤을 때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아직 아홉 명이 이 추운 바다 밑바닥에서 얼마나 떨고 있을까?” 유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아픔을 나눴더라면 그들이 거리로 나서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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