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균아, 너는 지금 당장 유럽으로 떠나라.”
세월호 침몰 당일 밤, 아버지 유병언은 장남에게 조용히 말했다.
“…….”
대답이 있을 턱이 없다. 지금까지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이 익숙지 않은 장남은 마치 “아버지와 함께라면 그러겠습니다”라고 말하듯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130킬로그램 거구를 이끌고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그렇다고 배로 가는 것도 무리다.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는 건 오래 머물기 힘든 데다 먹는 일을 해결하기 힘들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어쨌든 장남은 사건 발생 3일 뒤 인천공항을 통해 프랑스로 출국하려다 출국 금지된 사실을 알고 곧바로 잠적했다. 그렇게 큰누나가 있는 파리로 가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다단계 전문가 조희팔이 태안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처럼 밀항을 시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지만 전 국민이 눈과 귀를 열고 주시하는 상황이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회장은 분명히 치밀한 데가 있다. 아이 넷을 두 살 터울로 낳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는 구원파를 창시한 권신찬 목사의 딸과 결혼해 장녀 섬나, 차녀 상나, 장남 대균, 차남 혁기, 이렇게 네 자녀를 뒀다.
자녀는 우리나라와 프랑스 미국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특히 차남은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사실상의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장남은 캐나다에서 유학했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해 아버지는 늘 걱정이었다.
“국세청 조사 때만이라도 외국에 가 있다가 오너라.”
몇 년 전 세금 문제가 터졌을 때도 아버지는 장남을 해외로 나가 있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덕분에 세무조사는 유야무야됐다.
추종자 백 명이 잡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회장이지만 장남이 잡히는 것은 걱정됐다. 아버지는 금수원에서 한 시간 거리인 지인 집에 숨어 있으면서 하나하나 지시를 내렸다. 지인 명의가 아니어서 경찰이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곳이 그의 도피처였다.
경찰은 단서가 전혀 눈에 띄지 않자 절망에 빠졌다. 사진작가 ‘아해’가 그라는 사실은 수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의 실권자라고 전국에 다 알려졌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재산은 한 푼도 없었다.
“도대체 그가 가진 건 뭔가? 신묘하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하다.”
그를 체포하지 않고는 손에 쥘 게 하나도 없었다.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십만 명 이상의 신도와 열 개 이상의 회사를 좌지우지 했을까. 연구대상이었다.
“여직원 하나 뽑는 데도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파 신도라고 자칭하는 사람으로부터 회장에 대해 들을수록 서정민은 점점 궁금증이 커져 갔다. 그는 지금 배낭 하나를 메고 안성 금수원에 와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이순애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이 누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운영하지요?”
그는 신도에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신도 오천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세계 최대 온돌방의 아이디어는 회장의 머리에서 나왔을까. 축구장 서른 개 크기의 금수원은 흰색 건물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비롯해 구원파가 소유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신도는 설명한다.
“부인 권윤자 씨가 서초구 염곡동 소재 자택에서 유 회장을 대리해 일주일에 한 번꼴로 계열사 임원들을 소집해 회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해 왔어요. 일가의 재산 관리도 직접 했습니다.”
측근의 설명이다.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도 출국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측근이 권유했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 사장이 진술해봤자 청해진밖에 더 있겠어. 그냥 놔 둬!”
유 씨 가족을 위해 김한식이 최소한의 충성을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총대를 메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그들을 부양했는데 나를 위해 최소한의 희생은 각오해야 하지 않는가?” 회장은 의기양양했다.
금고지기 김혜경과는 특별한 관계였다. 한국제약 사장 김혜경은 유 회장이 ‘아해’라는 이름으로 국제사진전을 열 때 후원경비를 모은 것으로 알려진 핵심 인물이다. 유 회장이 파리 뉴욕 프라하 모스크바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그녀는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김혜경은 그녀의 두 자녀가 회장의 혼외자라는 소문에 거부할 이유가 없었지만 회장 측은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녀는 오대양 사건 후 회장의 재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들리는데, 이번에 전남 목포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사건 발생 나흘 뒤 해외로 출국했다.
두 달이 넘도록 회장의 행방이 묘연했다. 도피를 돕는 추종자의 이름과 전·현직 공무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도피 중에도 그는 군무원 정보기관 경찰 검찰 출신 추종자에게 검찰의 수사나 여론 동향을 파악·보고하라고 지시해 놓았다.
“회계사 너도 몸을 숨겨. 일단 언론에서 멀어져야 해.”
도피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인과 형제자매, 지휘책과 유자밭 책임자, 운전기사가 포함됐다. 세포 배양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여자들의 경쟁 심리를 이용해 온 그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측근들의 연락 방식을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회장 도피에 깊이 관여해온 김 엄마의 역할이 언제든지 다른 추종자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은 수사를 더욱 어렵게 했다. 추종자들에게는 검찰의 소환 요청이 있더라도 일절 출두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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