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9 09:55

북극항로 유망품목 수출 ‘축전지’ 수입 ‘돈육’

2016년 SLK국보·팬오션 이후 국내기업 북극이용 뚝 끊겨
“선사 단독으로 개척하기 힘들어 협업 필요”


북극항로 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우리나라의 미래 대응방안으로 해운물류기업들의 장기운송계약 화물 확보를 위한 정부의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간기업 단독으로는 화물 유치에 한계가 있다보니 정부 주도의 정책적인 접근을 통해 여러 산업분야에서 협력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3일 서울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에서 진행된 ‘미래 해운항만 물류포럼’에서 영산대학교 북극물류연구소장 홍성원 교수는 ‘북극항로 현황 및 국내 해운물류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진행하며 이같이 밝혔다.

북극항로 올해 물동량 2900만t 전망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쪽 북극해 연안을 따라 무르만스크에서 동쪽의 베링해협까지 연결하는 해상 수송로다. 해운물류기업들이 이용해온 TSR(시베리아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 등의 철도나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원양항로-내륙운송 조합방식을 대체할 수 있어 해운물류업계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있다. 

현재 약 4개월(7~10월)만 운항이 가능하지만, 얼음이 완전히 녹는 2030년에는 아시아-유럽 간 물동량 및 북극에서 생산된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경제적, 전략적 활용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홍 교수는 러시아는 7~11월 북극항로 운항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8~10월 안정적인 통항이 이뤄질 것으로 진단했다. 더불어 선박 운항 시 쇄빙선 지원이 필요하며, 향후 물동량 증가에 따른 환경오염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물류기업들의 주요 관심사인 미래 유망 화물도 이날 소개돼 주목을 끌었다. 북극항로를 경유해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가장 많이 수출되는 화물은 축전지가 될 거란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 축전지 수출국이며, 동북아 3개국이 세계 수출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 역시 세계 최대 축전지 수입시장이며, 북극항로를 통해 닿을 수 있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10대 수입국에 포함돼 있다. 전기차 생산 증가가 리튬이온전지 수요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어 축전지 수출 전망이 밝다는 분석이다. 

유럽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유망 아이템으로는 돼지고기가 꼽혔다. 냉동 상태로 운반되는 데다 수요가 많아 북극 통항에 가장 적합한 화물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 돼지고기 세계 4위 수입국이며, 2014~2018년 연평균 수입 증가율은 독일 16%, 스페인 17%, 네덜란드 24%로 나타났다.

북극항로 물동량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어느덧 2000만t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북극항로 물동량은 전년 1070만t 대비 83.9% 폭증한 1968만t을 기록했다. 홍 교수는 올해 물동량은 전년보다 1000만t 가량 늘어난 2900만t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자원개발프로젝트가 하나둘 완료되면서 화물이 크게 늘어날 거란 이유에서다. 

 


세계자연기금(WWF) 역시 러시아 야말LNG, 아크틱LNG2 등의 프로젝트에 힘입어 2025년 7500만t, 2030년 1억440만t까지 물동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 수송량을 8000만t까지 증가시키겠다는 계획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홍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2024년 8000만t 규모의 화물을 수송하겠다고 했는데 그 당시엔 황당한 수치로 들렸고 달성이 가능할 지 회의적이었다”면서도 “지금은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부처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고 실현 가능한 수치라 본다”고 말했다.

1억t에 달하는 물량을 운송하다보니 해운항만뿐만 아니라 조선업계에서도 북극항로 동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보리소프 부총리는 2024년까지 8000만t을 보장하려면 100척 이상의 선박 신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중 러시아 아크틱 LNG2 프로젝트에 투입될 쇄빙LNG선 15척의 발주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홍 교수는 “어떤 화물이 유망한지 물어보는 등 조선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아크틱 프로젝트는 1차는 대우조선이 했지만 2차는 삼성중공업이 수주할 것으로 보인다. 선박 사양이 조금 달라진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외국적선사에 뒤처진 북극항로 개척

아무리 잘 닦여있는 뱃길이라 하더라도 운송할 화물이 없다면 기업들로선 북극 진출을 망설일 수 밖에 없다. 

현재 중국 코스코는 실크로드펀드, 소프콤플로트, 노바텍과 함께 ‘북극에너지운송 합작사’를 설립하며 미래먹거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일본 MOL의 쇄빙 LNG(액화천연가스)선은 세계 최초로 북극해 동쪽 우회 항로를 이용해 아시아행 수송에 나선 바 있다. 덴마크 머스크 역시 세계 최초로 컨테이너선을 띄워 극동아시아-발트해 간 시험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외국적선사들이 여러 기업들과 협업하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선사들의 신항로 진출 행보는 더디기만 하다. 2016년 SLK국보 팬오션의 화물운송 이후 우리나라의 북극 이용은 전무한 실정이다. 화물이 없다보니 우리 기업들에겐 북극항로 진출이 버겁기만 한 상황이다. 

홍 교수는 선사들의 참여를 위해 정부의 지원과 장기전략 수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하에 다각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단기(스폿)가 아닌 장기계약 화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러시아 북극 자원 운송이 대부분 북극항로 물량이다. 따라서 국내 산업의 시너지를 극대화시키는 산업정책과 외교 역량이 필요한 것은 물론 러시아 북극 자원개발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홍 교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지 않다. (북극항로에 대한) 세팅이 안 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겐 해운 조선 등 여러 기관이 협력하는 모델이 아니면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북극항로 진출을 위해 선박 건조를 시도한 회사도 있었다”며 “민간선사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보조금 지원 등 국가차원의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영산대학교 북극물류연구소장 홍성원 교수


최근 생태계 보호를 이유로 북극항로 무항해를 선언한 CMA CGM을 둘러싼 환경규제 이슈도 이날 행사에서 거론됐다. CMA CGM 로돌프 사드 회장은 지난달 23일 자국에서 열린 행사에서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해 500척에 이르는 자사 선대는 경쟁 우위에 있는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홍 교수는 “프랑스 선사와 달리 코스코와 머스크는 환경문제에도 북극을 운항할 것”이라며 “코스코는 국영선사라서 가능하다. 화물만 있다면 대형선사 위주로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 생각된다. 작은 규모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케이엘넷이 주관하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선주협회, 한국항만물류협회에서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강범구 케이엘넷 대표이사, 이재균 한국해양대 석좌교수, 강무현 한국해양재단 이사장, 이재훈 국제해운대리점협회장, 조승환 KIMST 원장, 박영안 태영상선 대표이사, 양승권 KCNET 대표이사, 장금상선 석진안 상무 등이 참석했다. 

이날 강범구 케이엘넷 대표이사는 “지금 당장 경제성만을 따져 북극항로를 개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2017년 한진해운 사태 이후 장기적 침체에 빠져있는 국내 해운물류업계의 부흥을 위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시장을 접근할 필요가 있고 오늘 강연도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시각으로 접근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케이엘넷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제4차 산업관련 신기술 도입에 따른 해운항만물류 시장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7년 8월 미래해운항만물류포럼을 발족하여 분기별로 개최하고 있으며 이번까지 총 9차례의 정례 행사를 갖고 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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