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인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해운 재건을 위해 국적선사들이 화물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년 국제사회의 황산화물 환경규제에 대응해 정기선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스크러버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폐지 움직임과 관련해 일자리 창출, 제4군 역할 등 해운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제도 존치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Q.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에선 어떤 내용들이 논의되나?
정책자문위원회에선 해양수산부의 업무계획이 소개되고 위원들은 업무계획에 자신의 전문적인 식견을 말씀드리거나 그간 생각했던 의견을 제시한다. 현재 80여명의 정책자문위원들이 총괄분과 안전분과 해운물류분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해수부가 단기적으로 추진하는 연간 계획,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 수산 2030과 어촌 뉴딜 300 등의 주제를 놓고 위원들은 전문 분야 관점에서 더 나은 해양수산행정이 되도록 조언을 드린다. 행정학 관광 해양문학 수산 항만을 비롯해 저와 같은 해양수산 법률전문인 등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 혹은 대표가 자문위원으로 계시기 때문에 아주 폭넓은 시각에서 자문이 가능하다.
특기할 만한 건 자문회의가 열리고 10일 정도 지나면 해수부에서 자문위원들에게 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과 제시된 의견의 처리사항을 반드시 답변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문위원들이 보람을 느끼고 소속감을 더 가지게 돼 해수부 정책도 더 살아나는 거 같다.
Q. 한국해운 재건을 위해 가장 시급히 추진돼야 하는 현안이 있다면?
정부가 수립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충실히 따라가고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쟁력 있는 선박확충, 안정적 화물확보, 선사 경영안정을 달성하자는 게 5개년 계획의 요지 아닌가? 경쟁력 있는 선박 확충은 해양진흥공사를 통해 잘 처리되고 있다.
화주로부터 화물을 많이 확보하고 신주 발행이나 출자전환 등으로 부채비율을 낮추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게 민간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물론 모두 만만치 않다. 특히 정기선은 2자물류 존재, 국적선사의 낮은 경쟁력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 화주들을 유인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꼭 달성해내야 한다. 우리가 1990년대 달성했던 일이기도 하다.
2020년 환경규제에 대응해 스크러버 설치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 않나. 의무 이행 때문에 우리 정기선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설치 비용을 분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Q. 해상법 전문가 입장에서 해운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법과제는?
우리나라 해운이 법적인 안정성을 마련해야 한다. 화주들이 일단 정기선사에 짐을 맡겼으면 틀림없이 안전하게 화물이 수입자의 손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제가 누차 강조해온 ‘마지막 항차의 화물 양륙을 위한 기금’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한진해운 사태로 정기선 운항의 공익성이 크게 부각됐다. 하지만 여전히 법률적으로 정기선운항은 사기업에 맡겨져 있다. 정기선운항이 치열한 국제 경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기업 하나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는 정기선운항을 진흥하고 육성할 의무가 있다는 문구를 선언적으로라도 해운법에 넣어두면 좋을 것 같다.
이 밖에 선박회사들이 회생절차에 들어갔을 때 도움이 되도록, 또 선박운항 관련 채권자들이 공익채권자로 지정돼 회생절차에서 보호받도록 채무자회생법의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채무자 회생법 제179조에 “회생절차개시신청 전 20일 이내에 채무자가 계속적이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공급받은 물건에 대한 대금청구권”이 규정돼 있다. 기간을 40일 정도로 늘리고 분야 또한 물건에 한정하지 않고 하역작업 등과 같은 필수 서비스로 확대하면 어떨까.
Q. 승선근무예비역제도 폐지를 두고 해양산업계의 반발이 심하다.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선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현역으로 병역을 마치지 않고도 승선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서 젊은이들이 해양대학이나 해사고를 선택해 왔다. 인구절벽 문제로 현역에 갈 젊은이들이 부족해지자 대체복무제도를 폐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반면 승선근무예비역을 포함하면 안 된다는 게 해운업계의 입장이다. 승선근무예비역은 2008년 새로 신설됐다. 2만명 대체복무원 중에서 1000명 규모로, 5% 비중에 지나지 않는다. 해운산업 유지와 일자리창출, 유사시 제4군의 역할을 위해 존치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대체전환복무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공중보건의사 공익법무관 등이다. 이들 중 국제성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는 승선근무예비역제도가 유일하다. 국제 경쟁 하에 있는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 이 제도의 존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해야 한다. 다만 선원의 유일한 매력이 승선근무예비역이기 때문에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색한 논리 구조 같다. 이 제도가 존재하면 더 나아지는 게 어떤 게 있는지 잘 부각시켜야 한다.
Q. 지난해 임의해사중재기구가 설립돼 활동을 하고 있다. 1년간의 성과는?
지난해 2월 서울해사중재협회가 설립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기관중재를 하는 대한상사중재원과 임의중재를 하는 서울해사중재협회로 양립하게 됐다. 대한상사중재원은 부산에 아태해사중재센터를 설립해 해사중재를 여기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조직은 잘 갖춰졌는데 쉽게 사건의 수요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해사분쟁을 외국에서 처리하는 오랜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중재에 관한 문의와 의뢰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선박충돌 사건과 같은 경우 서울해사중재협회에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쉽게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해사중재도 우리 해운산업의 좋은 인프라이기 때문에 잘 육성할 필요가 있다.
Q. 해사전문법원 설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해사법원 설립은 한국해법학회(서울) 부산 인천지역 이렇게 3곳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사건수가 워낙 적어서 탄력을 받지 못하고 현재 추진력을 잃은 상태다. 다만 2016년 2월 발족된 해사전담재판부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된 판결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해사전담부에서 여러 건 처리하면서 전문성을 인정받게 됐다.
사건이 워낙 적어서 독립된 행정처로서 해사법원을 만들기 어렵다면 홍콩 영국 싱가포르처럼 전담판사와 전담규칙을 두면 어떨까. 해사전담부의 판사를 해상법 전문가로 임명하고 해사전담부를 수도권과 부산지역에 하나씩 둬서 판사를 순환근무토록 하면 될 거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선박 강제집행이나 가압류 해방이 가능하도록 하는 ‘해사법원 소송절차 내규’를 만들어 실시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해사전담부가 수요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사건수가 많아지면 그 때 비로소 해사법원을 설치하면 되지 않겠나.
Q. 최근 수필집 ‘바다와 나’를 출간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경북 영덕) 축산항이라는 어촌에서 태어나 60여년을 바다와 같이 한 제 인생을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적은 수필집이다. 재미있는 선박, 바다이야기들, 저의 해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많이 나타나 있다. 제가 선장 시절 해상사고가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법학을 전공해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고려대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실패를 한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거 같다. 1980년대 문고판으로 피천득의 수필이나 법정스님의 무소유 등을 출간해 유명해진 범우사에서 출간했고 현재 6쇄를 찍었다.
Q. 향후 포부나 계획을 듣고 싶다.
우리 해운조선산업이 발전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한다. 학문적인 기초는 경영학과 법학이다. 제 전공은 법학이다. 업계에선 법률이나 법적분쟁은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법률문제가 발생하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해운조선산업이 발전하는 전제로, 해상법 해상보험법 선박금융법 해운법 도산법 세법과 같은 것들이 탄탄하게 우리나라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해운관련 법학분야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힘 쏟겠다.
Q. 정부당국이나 업계에 당부하실 말씀은?
<세월>호와 한진해운 사태를 거치면서 해운재건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정부나 해운인들 사이에 형성된 거 같다. 그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해운산업 100년 대계를 세워야 한다. 작년 해운산업 매출이 32조원이라고 한다. 50조원을 달성할 때도 있었다.
해운에 전통적인 용선과 운송업뿐 아니라 해운부대업종인 2자물류산업, 항만, 해상보험, 예선과 도선, 해운중개업, 해사중재까지 포함해 10년 내 100조원 매출을 달성하면 국민총생산의 5%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장기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세워서 해운과 항만 화주 조선업계가 일치단결해 나가면 좋겠다. 업계에서 자발적으로 이런 목표를 세워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정부에 도와달라고 청하는 게 순서인 것 같다.
1990년대 안정됐던 해운산업은 현재 그 기반이 무너지면서 유치산업과 같이 됐다. 유치산업은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는 물론이고 해당산업과 연관산업에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다. 우리 모두가 1960년대 선각자들이 해운산업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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