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여객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두고 있는 저비용항공사(LCC)가 항공화물시장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저비용항공사들이 자체 화물영업팀을 꾸리고 지역 중소화주와의 직거래를 늘리면서, ‘대형항공사(FSC)-포워더’ 시장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교통연구원 한국항공대학교 한국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제22회 세계항공교통학회(ATRS) 월드콘퍼런스를 공동 개최했다.
화주취향 저격한 LCC, 지방공항 화물량 대폭 확대
항공운송권을 취득한 국내 6개 LCC는 여객시장에 머물지 않고, 지역 중소화주들의 수출화물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객운송에만 전념하는 해외 LCC시장과 상반된다는 분석이다. 동서대학교 최정규 교수는 “LCC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내 항공화물운송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침울하던 지방공항들도 LCC의 등장으로 화물취급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LCC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 속한 국가와의 항공자유화 협정에 힘입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2004년 태국을 시작으로, 2006년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중국, 2007년 일본 말레이시아, 2011년 라오스와 항공자유화 협정을 차례로 맺었다.
이 시기에 발맞춰 제주항공이 2006년 국내 저비용항공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뒤이어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2008년에 항공사로 이름을 올렸으며, 다음해 이스타항공이 본격 취항에 나섰다. 티웨이항공과 에어서울은 2010년과 2016년에 각각 진출했다. 제주항공은 제주도, 에어부산은 김해, 이스타항공은 청주, 티웨이항공은 대구를 주요 공항으로 이용하면서, 각 지방공항이 처리한 화물량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인천공항은 대형항공사가 대거 점유해, LCC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지방공항은 상황이 다르다”며 “김해공항은 평균 13%씩 순화물(수하물 제외)이 증가하고 있다. 그 중 LCC 비중이 50%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김해공항에서 국적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수송 점유율은 2009년 이후 매년 감소세를 보인 반면, LCC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했다.
특히 LCC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FSC는 중복노선 운항을 줄이기 위해 최근 LCC와의 코드셰어(공동운항)를 늘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자회사인 진에어와 아시아역내지역 일부를 공동으로 운항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자회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과 공동으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계열 항공사가 없는 LCC는 타 항공사와 전략적제휴로 공동운항 서비스를 편성하고 있다.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은 보잉737-800 기종으로 김포-타이베이, 인천-오키나와 노선 등을 공동운항하고 있다.
최 교수는 “LCC가 여객시장에서 비용구조를 낮추기 위해 중간단계인 여행사를 과감히 없애고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방식을 택했듯이, 항공화물시장에서도 이런 추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FSC가 운항하던 노선을 LCC가 대체하면서 LCC의 화물처리량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항공화물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LCC는 항공화물시장을 형성하는 ‘FSC-포워더’ 거래구조에 대응해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LCC들은 자체 화물영업팀을 꾸려 물류비에 민감한 실화주를 영업대상으로 삼고 있다. 실화주들은 비용차익을 남기는 데 급급한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보다 비용도 절감하고 서비스가 좋은 LCC와의 직거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경력 15년 이상의 부산지역 전문가집단 60여곳(포워더 30곳, 실화주 30곳)을 대상으로 AHP(의사결정계층) 분석을 실시한 결과, 실화주들은 37.79%의 비중으로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포워더들은 42.05%의 비율로 ‘가격’을 우선순위로 둬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실화주들은 ‘시간’ 중에서도 정시성과 운송기간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고, 운임은 세 번째로 중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포워더들은 운임 운송기간 정시성 순으로 중요도가 나뉘었다.
“LCC, ‘대형항공사-콘솔사’ 대체 어려울 것”
LCC가 실화주와의 직거래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지만 항공화물을 주력으로 취급하는 ‘포워더-FSC’의 역할은 앞으로도 건재할 거로 보인다. LCC의 항공기종이 FSC보다 작다보니 소형화물이나 신선화물은 적재에 큰 무리가 없지만, 부피가 큰 화물은 LCC가 취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콘솔(혼재)화물도 마찬가지였다. 항공사가 다수의 소규모업체 화물을 각각 취급하는 것보다, 기내 적재공간을 일정하게 임차하는 콘솔사의 화물을 적재하는 게 작업상 효율적이다. 적재공간을 상시 마련해야 하는 만큼 LCC가 콘솔화물을 유치하기엔 한계가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또 항공사가 다수의 소규모업체에 BL(선하증권)을 각각 발행해주는 것보다 이들 업체의 화물을 혼재해주는 콘솔사에 BL을 한 번만 발행하는 게 효율적이다 보니 콘솔사의 역할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해운물류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중국·러시아까지 해상운송 후 북유럽까지 철도로 운송하는 ‘해상-철송 복합운송’ 서비스는 항공운송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로 보인다. 복합운송 서비스는 해상운송보다 운송기간을 대폭 줄여주고, 항공운송보다 합리적인 비용에 이용할 수 있어 물류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나가는 항공화물은 대체로 납기일이 급한 반도체 등의 전자제품이 80~90%를 이루고 그 외 의약품이나 신선화물이 대부분이다 보니, 항공화물을 복합운송으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독일 항공연구기관 DLR가 개발 중인 무인화물기 / 자료: DLR(유튜브 캡처화면) |
무인화물기 시대 가시화…규제는 해결과제
이날 콘퍼런스에는 무인항공화물기의 등장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와 이목을 끌었다.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스테파니 헬름 연구원은 항공화물기가 원격조종으로 다뤄질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소개했다.
무인화물기는 이착륙부터 조종 관제 등을 컨트롤타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기장 관제사 외에도 항공기를 견인하는 터그트랙터 등 각 부문 핵심인력이 팀을 이룬다. 유럽연합(EU) 민관파트너십으로 구성된 항공연구기관 세사(SESAR)는 2030년이 되면 UFO(무인항공화물기)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테파니 연구원은 기술적으로 무인화가 상당부분 마련됐지만, 규제당국인 ICAO(국제민간항공기구)가 자동화에 제동을 걸고 있어 현실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무인항공기가 개발되더라도 여객기보다 화물전용기에 도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론조사 결과 탑승객들이 여객기 무인화에 가지는 거부감이 커 무인여객기의 상용화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스테파니 연구원은 “현재 일부 공항이 교통관제시스템인 ‘ATM(항공교통관제)’을 도입하는 수준이라 자동화를 논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유럽 최대 항공연구기관인 세사가 ICAO와 유대관계가 깊어, 2030년에 무인화물전용기가 운항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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