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국 해운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절반 이상 날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선복량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물동량은 반 토막 났다. 잘못된 정부 정책의 후유증치곤 한국해운이 당한 피해가 너무나 막심해 큰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국내 운임수입 3조 증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한진해운 사태 1주년을 맞아 발행한 ‘한진해운 사태의 반성과 원양정기선 해운 재건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국적 원양선사의 선복점유율은 5.1%에서 1.7%로 위축됐고 물동량점유율은 11%대에서 5%대로 추락했다.
우선 국적 원양선사 선복량은 한진해운의 선대가 공중분해 된 데다 현대상선마저 고용선료의 임차 선박을 반환하면서 세계 해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축소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이전인 지난해 8월 61만7천TEU의 선대를 운영했다. 전 세계 선복량의 3% 수준이었다. 당시 현대상선 선대는 2.1%인 43만6천TEU였다.
하지만 현대상선만 남게 된 올해 8월 국적 원양선사 선복량은 전체의 1.7%에 불과한 35만3천TEU로 위축됐다. 1년 새 국적선사의 선복량과 점유율이 모두 3분의 1 토막 나고 말았다.
반면 상위 5대선사는 같은 기간 점유율을 52%(1079만TEU)에서 58.4%(1231만TEU)로 대폭 늘렸다. 여기에 더해 인수합병(M&A)과 통합에 집중하면서 시장 장악력을 더욱 확대하는 모습이다. M&A 이후 빅5 점유율은 68.1%(1351만 TEU)로 급상승한다.
세계 1위인 덴마크 머스크는 독일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하며 선단 400만TEU를 돌파했다. 점유율은 15%에서 19%로 훌쩍 뛰었다. 중국 코스코는 차이나쉬핑과 합병한 데 이어 홍콩 OOCL까지 손에 넣으며 프랑스 CMA CGM을 제치고 세계 3위 선사로 도약했다.
보고서는 100만TEU 이상의 선복을 가진 7대선사로 시야를 넓히면 시장점유율은 75.6%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상위 7개 기업이 세계 해운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국적선사의 물동량 점유율도 곤두박질 쳤다. 지난 2015년 양대 국적선사는 아시아-북미항로 물동량의 11.9%를 담당했다. 한진해운 7.4%, 현대상선 4.5%였다. 하지만 올해 7월 기준 국적선사 점유율은 5.7%로 위축됐다. 한진해운이 정상 운영되던 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물동량을 1%포인트 흡수하는 데 그쳤고 나머지 6.4%포인트는 외국선사로 넘어갔다. 한진해운 물동량 대부분이 외국선사들로 이탈하면서 국내 운임수입 약 3조원이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해운 신용도 큰 상처
보고서는 원양 컨테이너선사가 한국해운을 대변하는 점을 들어 한진해운 파산은 한국해운의 쇠퇴를 넘어 파산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까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양대 선사는 국내 수상운송업 전체 매출액의 40% 이상을 담당하는 등 사실상 한국해운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세계 7위 정기선사였던 한진해운의 파산은 세계 물류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한국해운의 신뢰도는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한진해운이 가지고 있던 세계 165곳의 네트워크가 와해됐다는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한진해운의 남은 자산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됐다. 롱비치 터미널, 해외 주재 인력,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알짜배기 자산이 상당량 해외 선사들에게 매각됐다.
앞서 현대상선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전용선 사업부와 터미널 매각 등 경쟁력 악화가 계속됐고, 한진해운 파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발전 역량은 크게 후퇴하고 말았다.
중소기업의 해외 물류 네트워크로 활용되는 등 수출경제에 핵심역할을 해온 국적선사 영업망이 사라지면서 국내 제품의 수출경쟁력도 동반 약화됐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아울러 화주들은 물류비 부담 증가란 숙제를 떠안게 됐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직후 국내 화주들은 동서기간항로에서 일본 화주보다 컨테이너당 최소 500달러의 웃돈을 더 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국적선대 축소에 따른 한국 프리미엄이었다.
게다가 외국선사들이 한국 화물보다 중국이나 해외 국가 화물을 우선적으로 챙기면서 국내 화주는 선적 연기나 동의하지 않은 불필요한 환적으로 납기 지연 등의 물류경쟁력 훼손 사례를 겪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2월 화주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내 화주들이 한진해운 사태 이후 운임 상승과 선복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응답기업의 65%가 ‘수출운임 상승’, 58%가 ‘선복 부족에 따른 운송 차질’을 하소연했다.
보고서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이후 우리나라 수출입기업의 대외 무역활동 위축과 연쇄적인 파급효과로 전국적으로 1만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도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다. 환적물동량은 지난해 8월까지 2.1%의 감소세를 보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9월부터는 월 평균 3.9%로 감소폭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해운이 수송하던 환적물동량 중 부산항으로 다시 돌아온 건 60~70%에 불과하다고 KMI는 집계했다. 한진해운은 과거 연간 100만TEU 이상의 환적화물을 부산항에서 처리했다. 30만TEU의 물동량이 해외항만으로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한진해운이 모항으로 이용하던 부산신항 3부두는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글로벌 선사들이 부산신항 이용부두를 변경하면서 타부두 환적물동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부정적이다. 신항의 타부두 환적 비중은 2015년 27.7%에서 지난해 24.4%로 감소했다가 올해 들어 5월까지 월 평균 32.4%까지 치솟았다. 타부두 환적 증가는 항만 혼잡과 운영 비효율 문제를 유발하는 실정이다.
해운 구조조정 전략 전환 긴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과 파산으로 이어진 근본원인은 뭘까? 보고서는 금융당국의 ‘해운 몰이해’를 꼽았다. 한진해운 구조조정 당시 정부는 해운이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산업인지 경제산업구조 관점에서 판단하는 과정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해운업계는 한진해운의 부족한 유동성을 3000억원으로 산정하고 이를 추가 지원해 줄 것을 채권단 측에 호소했으나 채권단은 손사래를 쳤다. 대신 오너의 사재 출연 등을 담은 자구안 보완을 요구했고 결국 세계 7위 선사는 법정관리를 택했다.
금융당국은 세계 7위 정기선 해운기업의 법정관리가 몰고 올 파장을 도외시했고 이후 실제로 불거진 세계적인 물류대란과 수출입물류의 병목현상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진해운 선박이 해외 항만에서 하역료를 지불하지 못해 하역이 중단되는 문제, 선박 유류비를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아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는 문제, 신용거래에서 발생한 미수금 회수를 위해 선박을 억류하는 문제 등은 해운업계에선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법정관리 이후 용선료와 연료유, 항만 하역료, 입항료 등 영업에 필수적인 자금을 우선 지원할 수 있도록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이른바 DIP제도가 미흡했으며 항만과 물류 무역으로 사태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어떤 자금 지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관할 법원이 컨테이너선 하역비 지원을 채권단과 금융당국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KMI는 “금융기관 중심의 컨트롤타워는 경영정상화보다 재무건전성 회복을 핵심으로 구조조정을 이행하기 때문에 기업은 자산이 소진되고 영업기회를 놓쳐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회와 역량을 잃어버리고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고 한진해운 사태를 진단했다.
게다가 해운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금리의 단기 유동성 지원 처방은 막중한 채무 상환이란 부메랑이 돼 해운기업에 돌아왔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유상증자와 출자전환, 신규 대출 등의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6조2000억원을 지원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KMI는 한진해운 사태를 계기로 해운기업 위기에 대비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생보다 청산될 가능성이 큰 법정관리 대신 사전 구조조정 성격이 강한 워크아웃 제도를 해운기업 구조조정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다만 주채권자인 은행이 출자전환을 할 수 없도록 한 워크아웃 제도를 개선해 구조조정 목적의 일시적인 출자전환은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불황기에 해운기업이 최소한 존속할 수 있는 수준의 금융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긴급자금 투입과 같은 국가의 직접 지원과 DIP 등 민간 자금을 활용한 유동성 공급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한진해운 선대 이상의 선복량 확보도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적 원양선사 선복량은 현대상선 35만3000TEU를 비롯해 한진해운을 계승한 SM상선 5만1500TEU 등 총 40만4500TEU에 불과하다. 세계 7위인 대만 에버그린(104만7000TEU)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보고서는 2개 선사 체제의 우리나라 선사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단일 선사 규모로 77만~100만TEU 규모의 선대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대의 상당수를 경쟁력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채워야 한다는 견해다. 현대상선은 100만TEU를 목표로 정할 경우 약 65만TEU가 부족한 실정이다. 1만TEU급 선박 1척의 가격이 약 9300만달러 안팎인 점에 미뤄 선박 65척을 짓기 위해선 60억4500만달러, 한화로 6조8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선박과 함께 물동량 확보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KMI는 화주의 비용이자 선사의 수익인 해상운임의 극심한 변동성으로 인해 해운 시황에 따라 상호 배타적이었던 선화주 관계를 개선해 자국화물의 자국선사 적취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진해운 파산 이전에도 국내 원양 수출입 물동량의 31%만이 국내 선사를 이용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국내 화물의 자국선사 이용률은 한진해운 19%, 현대상선 12.4%였다. 71.5%는 외국선사 배로 운송됐다.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 당시 한진해운을 이용하던 국내화주들은 대부분 선복부족 등을 이유로 들어 현대상선 대신 외국선사를 택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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