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자에 이어>
4. 판결 평석
가. 판결의 쟁점
이 판결 중 다루고자 하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사건과 같이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의 항공사와 항공운송 계약을 체결하고 분쟁이 발생한 경우 분쟁해결의 기준이 될 준거법은 우리나라 법인가, 외국의 법인가, 즉 준거법이 무엇이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둘째, 항공권을 초과예약한 것이 위법한 것인가가 문제된다. 셋째, 초과예약으로 탑승거부된 승객에 대해 항공사는 어느 정도의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가이다.
나. 준거법의 결정
A는 대한민국 국민, B는 외국법인이고, 운송계약의 내용은 서울(인천)과 유럽의 도시를 왕복하는 것이다. 이 경우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해당하므로 계약의 준거법은 국제사법의 규정에 의해 결정될 것인데, 이 경우에도 국제사법 제27조가 적용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국제사법 제27조가 적용되면 소비자인 A의 상거소법인 대한민국법이 준거법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협약 제5조 제4항이 운송계약과 소비자에 대한 용역이 소비자가 상거소를 가지는 국가 이외의 장소에서 배타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용역의 제공에 관한 계약에 대해는 제5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을 근거로 적용을 부정하는 견해와 운송계약이나 소비자의 상거소지 외에서 용역이 제공되는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소비자계약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국제사법의 적용을 긍정하는 견해가 있다.
파기환송전의 항소심은 부정설을 택했으나, 대법원은 긍정설의 입장에서 “소비자계약에서, 소비자의 상대방이 계약체결에 앞서 그 국가에서 광고에 의한 거래의 권유 등 직업 또는 영업활동을 행하거나 그 국가 외의 지역에서 그 국가로 광고에 의한 거래의 권유 등 직업 또는 영업활동을 행하고, 소비자가 그 국가에서 계약체결에 필요한 행위를 한 경우나, 소비자의 상대방이 그 국가에서 소비자의 주문을 받은 경우 등에는,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아니했더라도 국제사법 제27조 제2항이 적용돼 소비자의 상거소지법이 준거법이 된다.
따라서 운송계약이나 소비자의 상거소지 외에서 용역이 제공되는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소비자계약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생각건대, 국제항공여객운송계약 역시 소비자계약에 포함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사법 제27조는 국제항공여객운송계약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대법원의 태도가 타당하다. 따라서, B가 A에게 부담하는 책임은 소비자 A의 상거소지법인 대한민국 법령에 따른 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 책임이 준거법이 된다.
다. 항공권 초과예약의 위법성 여부
초과예약은 각 운항편에 대해 의도적으로 실제 공급좌석보다 더 많은 좌석을 판매하는 것으로서, 항공사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초과예약의 근거는 항공사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그 결과 항공권의 가격을 낮출 수 있어 고객의 이익으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초과예약이 항공운송업의 특성상 일정 수준의 예약을 더 받음으로써 좌석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용인되는 것이라면 항공권 판매 이후에도 그러한 용인의 필요성이 인정돼야 하는 점, 세계적으로 이를 금지하기보다 그로 인한 계약 위반의 경우 보상관계를 규율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일반적으로 용인된 관행이라고 보는 견해와 초과예약의 관행은 형사적으로 사기죄에 해당해 승객은 항공사와 체결한 예약을 기망을 이유로 취소할 수 있다는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초과예약은 좌석 이용을 극대화하려는 항공사의 편의를 위한 것이나, 항공권의 가격하락요인이 되는 등 승객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점, 항공법 제119조의2에서도 항공권 초과 판매를 적법한 것으로 보고, 피해자구제수단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항공권 초과예약을 위법한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초과예약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승객들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의 범위 설정이 문제될 따름이다.
라. 초과예약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항공사의 책임
초과예약으로 인해 탑승거부를 당한 승객의 피해는 몬트리올 협약이나 상법에서 규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별개의 채무불이행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몬트리올 협약이나 상법 상의 책임제한 규정은 여기에 적용되지 아니한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승객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민법 제543조, 제545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채권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538조 제1항에 따라 대체항공편의 제공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체항공편은 원래의 항공편과 도착시간 등이 가장 유사한 것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손해배상의 경우 우리 민법은 통상손해, 특별손해, 위자료 등으로 구분해 산정을 하게 된다. 계약의 체결과 이행을 위해 통상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인 통상 손해로는 승객이 스스로 구입한 대체항공권 구입비용, 지체된 시간 동안의 식음료나 숙박비용 등이 해당된다.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의 경우, 재산적 손해의 배상만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고, 상대방이 이와 같은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해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하는 법원의 태도에 따르면, 위와 같은 통상손해에 대한 배상이 있는 이상 위자료 청구는 따로 허용되지 아니할 것이다.
마. 판결의 의의
본 판결은 항공사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초과예약의 적법성과 분쟁해결 준거법에 대한 판단을 한 데 의의가 있다. 항공사의 초과예약 자체는 위법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항공사의 예측을 벗어나 탑승거부 승객이 생긴 경우,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상당한 대체 수단 또는 배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본 판결의 피고인 유럽항공사는 그러한 대체수단을 제공하는데 실패했고, 그로 인해 승객이 입은 손해를 우리 민법의 손해배상책임의 법리에 따라 배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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