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에 취임한 엄기두 국장이 해운항만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했다. 지금까지 해운항만물류 정책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앞으로는 수익 위주, 부가가치 창출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기두 국장은 지난 2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2자물류국가인 우리나라는 해운이 꼭 필요한 산업인 데다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엄 국장은 우리나라는 수출입이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80%를 넘어서는 2자물류국가라고 정의했다. 독일이나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대표적인 2자물류국가다. 수출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어선다. 그는 2자물류국가 중 월드와이드를 취항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고 지적했다.
2자물류국가는 기본적인 수출입물량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해운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고 있다. 하파그로이드(독일) 코스코(중국) CMA CGM(프랑스) MSC(이탈리아) 등이 그 예다.
반면 덴마크와 같은 3자물류형 국가는 ‘집중투자’를 통해 해운산업을 일으켜 머스크와 같은 세계적인 해운기업을 육성시켰다는 분석이다. 그리스는 해운이 아닌 ‘선박관리’ 또는 ‘선박용대선’에 집중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량을 보유하는 국가가 됐다.
선복량 물동량 위주 정책이 위기 초래
엄 국장은 우리나라가 2자물류국가임에도 해운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 데는 해운항만에 대한 정책적 해석과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선복량과 물동량 확대 위주로 정책을 추진한 결과 한국 해운ㆍ항만산업은 세계 5위 수준까지 올라섰지만 정작 기업과 업계는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가 선복량을 확보해서 세계 5위에 올랐다. 상식적으로 선복량이 많으면 매출이 늘고 부가가치가 올라야 한다. 하지만 정책의 초점이 선복량에만 있다 보니 선복량은 늘어나는데 기업은 죽는 현상이 발생했다.
항만의 경우 물동량 정책으로 부산항이 5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환적화물을 끌어오는 정책을 쓰면 쓸수록 선사 위주의 시장이 되고 부산항 하역사들은 요율을 덤핑해야해 결국 파산의 길로 가게 된다. 업계가 죽는데 (부산항을) 5위로 만들려는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엄 국장은 “선복량과 물동량 위주의 정책이 부가가치, 즉 기업 성장과 연계되면 최선이겠지만 그게 어려우면 정책의 초점을 산업, 기업,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과 복지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게 해운항만정책에 대한 철학”이라며 “그런(부가가치를 좇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연장선상에서 향후 해운 재건 전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선 해운의 경우 한국 기업으로 구성된 동맹체 결성을 추진한다. 가칭 한국해운동맹, 이른바 KS얼라이언스다. 현대상선과 장금상선 흥아해운이 올해 초 결성한 HMM+K2를 확대해 중복항로를 통합하고 신규항로에 새롭게 진출함으로써 경쟁력을 제고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출범한 선박은행(한국선박해양) 등을 통한 정부 지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대상선과 SM상선의 사업계획을 검증해서 적자가 나더라도 장기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할 사업 등은 정부가 펀드를 활용해서 대신 확보하고 있다가 기업이 정상화되면 인수토록 하겠다는 심산이다.
항만 분야에서도 국내 항만기업이 뭉친 한국글로벌터미널운영사(KGTO)를 결성토록 한 뒤 장비 등의 자산 매입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진해운을 뺀 나머지 선사들을 갖고 어떻게든 예전의 (해운)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정부가 자금 지원을 해서 (국적 정기선대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100만TEU까지 키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진해운이 빠진 뒤 (국적 정기선대는) 67만TEU 정도 된다. 현대상선이 42만TEU, 나머지가 25만TEU다.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나와 있는 선대 확보 정책을 토대로 (금융) 조건, 이를 테면 금리나 상환기간 등을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 중이다. 기업이 쓰기 좋은 금융지원(조건)을 만들고 해수부에서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쥘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전체 해운프로세스 묶는 국가필수해운제도 도입 구상
아울러 국가필수해운제도 도입 구상에 대해서도 밝혔다. 국가비상 사태 시 군수물자와 전략물자의 안정적인 운송을 위해 일정 규모의 국적선대를 지정하는 국가필수선대제도를 확장 발전시킨 개념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선박뿐 아니라 도선 예선 항만하역을 포괄하는 큰 틀의 해운프로세스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전쟁이 나서 선박을 동원하려고 했더니 선장이나 선원이 (배를) 안 타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배가 떠도 도선사가 선박을 인솔 안 하거나 예선이 없으면 배를 항구에 못 붙이게 된다. 또 하역사가 있어야 화물을 내릴 수 있지 않나?
전시사변이나 대규모 파업이 장기화 되거나 항만이 마비됐을 때에 대비한 국가필수해운제도 도입을 생각하고 있다. 예도선과 항만물류시스템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엄 국장은 한진해운 사태 발생에 대해 정부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사과 뜻을 전했다.
“(한진해운 사태로) 해운산업과 항만산업계에서 큰 변화가 있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데 대해 종사자분들에게 담당 국장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한진해운 사태는) 산업은 물론 학계나 심지어 해기사 취업 등에서 해양대 학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빠른 시간 내에 복구할 수 있도록 해수부가 노력하겠다. 복구를 넘어서 더 발전하는 틀을 만들겠다. 그에 대한 철학은 제가 분명히 가지고 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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