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을 팔며 다양한 고객과 만나는 물류회사의 영업사원. 해상 육상 항공을 총 망라하는 물류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영업맨들에겐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흘러넘친다. 본지는 물류 영업사원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물류현장의 모습을 한꺼풀씩 벗겨낸 연재를 시작한다. ‘일촉즉발’의 ‘황당무계’한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물류회사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어디에선가 고객을 만나고 있을 영업사원,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수출화물은 언제나 선박에 실려 전세계로 보내진다. 푹푹 찌는 여름이면 동남아 인근에서 한국으로 북상하는 태풍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태풍의 영향권에 들면 수출화물의 선적이 지연되곤 한다.
하지만 한국은 전혀 태풍의 영향권이 아닌데도 부산항 수출화물이 2주간 발이 묶인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화주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영업사원 멍대리.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과장님! 부산 날씨가 지난주부터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데, 태풍으로 인해 남미로 가는 제 고객사 화물이 2주간 지연된다는게 이해가 안 됩니다! 태풍이 저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멍대리는 직속 상관인 성과장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건의 발단은 선사담당자와의 전화통화에서부터 시작됐다. 멍대리 고객사의 컨테이너 화물을 실어줄 선박회사 담당자가 화물 선적 지연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선사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번 태풍이 중국을 강타 했을 때, 중국 항구(칭다오-닝보-상하이)에서 계획된 화물량 만큼 집화를 하지 못했다.
때문에 계획된 화물을 싣지 못한 선사는 다음 항차에서 태풍으로 인해 수출하지 못했던 물량과 계획된 수출물량들을 한꺼번에 집하했다. 중국발 화물이 대거 몰리자 선사의 선복을 총괄하고 있는 아시아 본부에서는 한국발 선복할당량을 줄여 중국발 할당량을 늘렸다.
즉, 선사의 한국발 선복량이 줄자 멍대리가 맡은 고객사의 화물이 선복 부족으로 다음 항차로 지연된 것이다. 당초 선사에서도 화물 선적을 한 주만 지연되는 것으로 진행하려고 했지만 부산-남미 노선의 경우 중국의 각 항을 먼저 기항하고 부산항을 마지막으로 찍고 가기 때문에 중국에서 물량이 넘치자 2주나 화물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은 태풍의 영향권이 아니었지만 결국 태풍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멍대리의 고객 화물이 2주 지연에 또 다시 추가 지연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고객사의 화물 무게 때문이었다. 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무게제한을 적용할 경우 20피트컨테이너는 11t이상 싣지 못한다. 헌데 멍대리의 고객 화물 무게가 20t가까이 돼 선사들이 선박 물량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화물을 또 한주 뒤로 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선사 담당자의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멍대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멍대리는 추가 지연 만큼은 결코 선사에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선사 담당자에게 더 이상의 지연은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하게 입장을 밝혔고 멍대리의 기세에 선사담당자는 추가 지연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사와 통화를 끝내고 부랴부랴 바로 윗 상사인 성과장에게 전후사정을 보고하던 멍대리는 순간 이런 상황에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그때 지나가던 왕부장이 멍대리를 불렀다. “멍대리. 멍 때리지 말고 잠깐 앉아봐.”
“멍대리. 선사에서는 태풍으로 운항 스케줄이 2주 지연됐다고하고, 공문(Delay Notice) 보내는 것으로 자신들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 왜냐하면 선사의 책무는 그게 전부거든. 물론 우리(포워더)들도 고객사에 그렇게 전달해도 되는데, 고객입장을 더 헤아려야하는 입장이니 가능하면 지금 당장 선사 공문을 들고 고객사를 찾아가봐.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고객들은 이해해 줄 수도 있으니까.”
멍대리는 왕부장님의 조언에 감사하단 인사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물지연으로 화가난 고객이 자신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1년 이상을 그 고객을 잡기 위해 비딩 기회만이라도 달라고 조르며 어렵게 맺은 거래였는데, 서비스 불만(운송 지연)으로 떠나버리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까지 했다.
멍대리는 거래처 로비에서 담당자를 만났다. 일단 분위기가 편하면 이야기를 조금은 쉽게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근처 커피숍으로 그를 모시고 갔다.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회사를 급하게 방문 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멍대리의 전후사정을 들은 고객은 처음에는 표정 관리가 안 된 모습이었다. 멍대리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 이렇게 고객의 불만으로 거래가 중단 되는 것인가! 내 잘못도 아니고, 회사 잘못도 아닌데, 선사가 임의로 화물을 롤오버(ROLL OVER) 한 건데.” 마음을 졸이던 멍대리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고객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어깨를 들썩이며,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 무더위에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마셔서인지, 아니면 열심히 담당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명하는 멍대리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고객은 화를 누그러트렸다. 대신 다음부터는 화물이 절대 늦지 않도록 더 많은 신경을 써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멍대리는 담당자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내가 맡은 일에는 지나가는 바람과 저 멀리 이국 땅의 태풍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야. 태풍은 분명 나와는 상관이 있어!” 멍대리의 하루는 정말 길었지만, 고객이 이해해 주는 눈빛,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로 복귀할 수가 있었다.
오늘의 TIP
1. 문제 발생시 즉각 고객에게 알려라.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직접 고객을 찾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라.
2.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지레 두려워하지말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라.
< 편집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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