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2 20:14

해운 중요성 인식한 획기적 지원책 요구된다

인터뷰/ 서강대학교 전준수 석좌교수
부산 글로벌해양거점 육성은 범국가적 과제로 추진돼야
해운역사 기록관 구축 작업도 긴요

지난달 29일 열린 제 20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황조근정훈장을 받은 서강대 전준수 석좌교수는 정책금융기관들이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통상적인 지원책이 아닌 획기적인 지원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부산항 글로벌 해양거점 육성 정책은 범국가적 과제로 추진돼야 하며 이와 관련해 부산에 마련된 해양클러스터는 참여한 모든 조직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하는 가상기업 시스템을 도입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북 관계 개선에 대비해 북한 항만에 기항할 수 있는 맞춤식 피더선박을 선제적으로 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Q. 황조근정훈장 수상을 축하 드린다.

모든 분들께 마음 속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선배들도 그렇고 동료도 그렇고 후배도 그렇고, 해운업계 지표로 삼았던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훈장이 한참 젊을 때, 열심히 뛸 땐 주마가편이라고, 채찍질이 될 수 있지만 나이를 먹어서 받으면 어떤 면에선 내 커리어(경력)를 마감할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으니까 마지막 마무리를 더 보람 있게 잘 해야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된다.

Q. 오랫동안 해운업계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74년 1월1일에 대한해운공사에 공채로 들어갔는데, 그 해 겨울에 제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해운공사가 시청 바로 앞에 있는 옛 대한일보 빌딩에 있었는데, 오일 쇼크 이후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실시한 등화관제로 (서울 시내가) 전깃불을 다 껐던 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빌딩에도 불이 없고 가로수 길에도 불이 없고 오직 자동차 헤드라이트밖에 없었다. 자동차 운행 대수도 적었기 때문에 정말 아주 깜깜한 암흑과 같은 상황이었고 이러다 우리나라가 망하는구나 하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1974년에 제가 겪었던 그 암담한 경험에 비춰 보면 그 후의 IMF(구제금융)나 2008년의 금융위기는 상대적으로 개인적으로 느끼는 느낌은 훨씬 덜했다. 41년 동안 해운과 인연을 맺은 내 인생에서 그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러면서 해운산업합리화라는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많은 해운인들이 회사를 뺐기는 기분으로 다른 큰 해운대기업과 합치기도 했고, 그 안에서도 살아남는 해운인도 있었다. 그 땐 정부가 큰 일을 해 줬다. 해운산업합리화로 총체적 파멸에서 살아남은 건 사실이다.

요 근자의 해운업의 위기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정부의 영향력이나 정부의 총괄적인 정책에 의해 해운이 구제되는 건 아니다. 개별 해운기업이 강해지기도 했지만 사실 국가적인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Q.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장으로 취임하셨다. 해운물류분야 발전을 위해 정부에 건의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양수산부는 부산항이 있는 부산을 글로벌 해양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큰 계획을 가지고 있고 부산시도 이를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해양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서 해양에 관계되는 거의 모든 연구소들이 부산으로 이전해 갔다.

(부산) 영도에 (한국)해양대와 더불어 다 모여 있다. 내려가신 분들이 염려하는 건 부산시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부산을 글로벌 해양 중심지로 만들 의지가 있느냐다. 그렇지 않으면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는 BMI(부산해양수산개발원), KIOST(한국해양과학기술원)는 BIOST(부산해양과학기술원)가 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중심이 되기 위해선 국가차원에서 의논하고 과제로 받아 안아야 한다. 물론 주축은 부산항이 돼야 한다. 부산도 대승적 견지에서 포용력 있게 외부 인재들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서 전 세계적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로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하나 해양수산부가 준비하고 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할 건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고 극단의 경우 북한이 붕괴될 때 어떻게 해상물류체제를 만들어야 하느냐다. 북한의 항만 사정을 봤을 때 제대로 운영될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적합한 화물선을 설계해서 제작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선박은 건조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하며 특히 남쪽의 중소조선소를 활용해서 표준화된 선박을 건조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도 해상운송의 분담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기존 국제항이 아닌 일반어항을 이용한 연안운송루트를 개발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해 신조한) 선박을 잠정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저가 이하의 상품, 즉 생필품이나 공산품 등은 거의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선박들을 활용해 중국의 영세한 지방항구를 연결하는 항로를 열어서 물건을 갖고 온다면 실질적으로 물류비가 크게 절약되리라 본다. 그러다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이 오면 즉각적으로 전환배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게 해양수산부가 해야 할 일이다. 대비하고 준비하는 건 국가만이 할 수 있다.

Q. 연안여객선 안전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안전에 대한 관할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해상안전은 해운인의 책임이다. 특히 내항여객선, 내항화물선 등 내항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훈련은 해운조합 차원이건 정부 차원이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대적 경영기법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중요성 등 인간적 소양을 함양할 수 있는 인문학적 교육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서 안전과 생명의 중요성도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는 교육훈련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더 강조가 돼야 한다. 공학적 또는 경영학적으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건 한계에 도달하면 생명이나 안전과 상충될 수 있다.

Q. 부산해양금융종합센터 설립에 큰 역할을 하셨다. 센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부산해양금융종합센터는 설립된 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산업, 특히 중소조선업체와 국내 해운선사가 윈윈할 수 있는 하나의 스킴(scheme)으로써 자리매김했다.  부산해양금융종합센터가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선박공유제를 통해서도 국내 연안여객선사와 중소조선업체를 연결 지어 의욕적인 재건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앞으로는 센터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현안문제 해결뿐 아니라 명실공히 우리 해운이 세계 5위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건전한 재정육성책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센터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이다 보니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해운 지원은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다. 우리나라가 건강하고 강력한 국적선대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건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와 똑같다. 군대는 국가유사시를 위해서 필요하지만 해운은 유사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간산업이다.

영국 같은 나라는 (상선대를) 머천트 네이비(Merchant Navy)라고 부른다. 범정부 차원에서 해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통상적인 지원정책이 아닌 획기적인 지원정책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지금 기준 금리가 1.75%인데도 국책은행들이 (해운기업의) 회사채나 대환 발행에 신용등급이 낮다고 15%에 가까운 이자를 매기는 건 말이 안된다. 죽이겠다는 건지 살리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책금융이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마련해줘야 한다. 해운은 군대나 마찬가지다. 군대가 재정이 없다고 세 끼 먹는데 두 끼 먹으라고 할 수 있나?

Q.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도전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보나?

임기택 사장이 IMO 사무총장에 출마한다는 건 국가적인 이벤트다.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전략을 짜야 하는데, 역시 부산에서만 요란하다. 이건 대외적으로 소위 40개 이사국이 선출하기에 세계적인 이슈다.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재벌기업들이 올림픽을 유치할 땐 열심히 하지 않나? 반기문 총장 때도 거국적으로 선거운동을 했었다.

IMO 사무총장 선거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요성에선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 1위국이고 해운 5위국이다보니 주요 산업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다. 6월30일이 선거인데, 직간접적으로 해외에 영향력이 있는 분들은 자발적으로 도움 되는 일을 해줬으면 한다. 정부 차원에서 마지막까지 열성을 갖고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한다.

Q. 끝으로 해운물류업계에 당부하실 말씀은?

해운업계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전엔 중국붐에 힘입어 장기간의 호황을 봤던 것도 사실이다. 현재와 같은 극심하면서 장기적인 불황도 예외였지만 그 전에 우리가 즐겼던 호황도 예외적이었다. 

앞으로의 경제 현상은 이처럼 예외적인 상황이 많이 생길 거다.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잊어버릴 게 아니라 개인은 개인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면밀히 분석하고 상황에 따라 대응했던 결과나 성공도, 효율적인 정책 방향, 기업차원의 전략 등을 기록해둬야 한다. 그런 기록이 한데 모아지면 나중에 우리 후배들이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더욱더 중요한 건 그게 우리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절대 자산이 될 수 없다. 기업하시는 분들, 정치인들, 학자들도 정기적으로 옛 자료를 보고 생각하고 미래에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과학적이고 시스템적인 자료 공유가 어떤 형식으로든지 부산의 클러스터 또는 KMI 안에 구축돼야 한다.

부산의 해양클러스터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신속히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책임자급뿐 아니라 실무자급에서도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공통 화제를 토의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하는 등 모든 클러스터가 가상기업처럼 실시간으로 움직여야 한다. 모든 정보를 동시에 공유하는 한편 한 부처의 의사 결정이 다른 기관과의 충분한 협의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클러스터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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