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00년대 초 150년 전통의 유럽 해운회사에 근무할 때 안전에 대한 3가지 큰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처음은 사내에서 많은 교육생들을 모으고 수업을 시작할 때였다.
유럽인 강사는 가장 먼저 교육장에서 불이 나거나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교육장의 현 위치와 비상구 위치를 안내해주고 대피 요령 등 안전과 관련된 기본적인 내용을 알려준 후에야 수업을 진행했다.
두번째는 명명식 행사에 참여한 유럽인 CEO가 최소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행기로 이동할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과거 동 그룹사에서 대다수의 경영자가 같은 헬리콥터를 타고가다 사고를 겪은 후 생긴 지침이었다. 마지막으로 서해교전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 긴장도가 높아지자 유럽 CEO가 자국대사와 협의해 한국 내 자국민을 안전지역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비상탈출계획을 수립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이와 같은 경험들을 통해서 CEO가 속한 유럽국가의 일상 속에 안전이 얼마나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유럽의 안전문화는 재난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착된 것이었다. 모든 국민이 높은 안전의식을 지녔기에 ‘일상화된 안전문화’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고 이전에 비해 해양안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해마다 발생하는 해양안전사고의 90% 이상이 안전의식 결여에 따른 인적과실에 기인한다. 결국 해양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양안전 매뉴얼 강화, 안전점검 강화 등 제도적인 개선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의식개선이 반드시 우선돼야 한다. 늘 도사리고 있는 해양사고를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예방책은 범국민적으로 의식전환을 하는 일이며 해양안전문화의 조기정착도 절실한 상태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양안전의 패러다임은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해양안전실천본부가 있다. 해양안전실천본부는 국민의 해양안전 의식을 개선하고 범국민적으로 해양안전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기관, 해양·수산 기관 및 단체 등 44개 기관·단체로 구성된 민·관 협의체로 출범 올해 2주년을 맞이하며 선박안전기술공단에서 중앙본부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해양안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현저히 낮았고 해양안전 문화를 부흥시키기에는 콘텐츠도 미약했다. 해양안전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캠페인 참여율도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업일지라도 국민들의 참여가 없다면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국민과의 ‘접점’을 찾는 일은 그만큼 소중하다.
해양안전실천본부는 국민 개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해양안전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양사고 줄이기 범국민 안전운동 전개, 해양안전교육 대중화, 해양문화 콘텐츠 발굴, 해양안전문화정책 피드백 체제 구축 등 해양안전 선진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일련의 ‘해양안전 문화 활동’은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해양안전에 관한 태도와 의식이 체질화돼 올바른 가치관이 정착되도록 하는 실천운동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전개할 때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정부에서는 해양사고 예방을 위해 국민 스스로 해양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기적으로 해양안전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해사안전법을 통해 ‘해양안전의 날’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선박 안전점검과 취약요인 중점 점검, 선사·선원·선주 등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교육, 가두캠페인 등을 실시하는 한편 해양수산 업체·단체·기관이 안전관리 노하우를 상호 공유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세미나, 워크숍 등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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