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00·130·2,000,000”
일일이 놓고 보면 연관 없는 네 개의 숫자는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인천항이다. 2013년은 인천이 정명(定名) 600년이 되는 해였다. 같은해 인천항은 개항 130년을 맞았으며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연간 컨테이너 처리물량 200만TEU를 사상 처음으로 달성했다. 인천항의 200만TEU 돌파는 2005년 100만TEU를 달성한 지 8년 만에 그리고 200만TEU 도전에 나선지 4년 만에 이뤄낸 성과라 매우 의미있는 일로 평가된다. 폭죽을 터트리며 요란하게 자축해도 될 법한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었다.
200만TEU 돌파에 한껏 고무된 인천항만공사(IPA)와 지역항만업계는 300만TEU를 향해 더욱 힘찬 항해를 하고 있다. 130년이 넘는 인천항의 위상을 고려할 때 세계 60위에 만족하지 않고 50위권 진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다. IPA는 올해 컨테이너 물동량 목표치를 좀 더 높인 260만TEU로 잡았다. 올해 인천신항 개장은 물동량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돼 목표 달성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컨테이너 물동량의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인천항만물류업계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개항 이래 효자노릇을 해오던 벌크화물의 성장세가 요즘 삐걱대고 있기 때문이다. IPA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내항과 북항에서 처리된 벌크화물 물동량은 각각 2048만t 815만t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북항의 벌크화물 처리량은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내항은 2012년 이후 하향세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벌크화물이 주로 처리되는 내항의 물동량은 지난 5년 사이 500만t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두운영사들도 벌크화물 부진의 여파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 벌크부두운영사들의 체감경기는 물동량 하락세보다 더한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며 지역항만업계가 컨테이너 물량 창출에만 너무 신경쓰는 것이 아니냐며 한탄했다.
과거 인천항은 석유, 가스, 곡물, 목재 등의 벌크화물을 주로 처리하는 항만이었다. 벌크화물은 처리실적이 세계 20위권에 포함될 만큼 인천항의 주력이었다. 하지만 벌크화물의 컨테이너화와 항만배후부지의 비싼 임대료, 지가상승으로 인한 제조업체들의 지방이전 등으로 인해 인천항의 벌크 물동량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형국이랄까?
실제로 인천항의 선박 입출항료와 도선료, 예선료, 외곽창고·야적장 시설사용료 등의 물류비용은 타항보다 높아 벌크화물이 타항만으로 이전하는 데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IPA의 정책 역시 인천항의 토종화물인 벌크보다 컨테이너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에 부두운영사들의 안타까움은 크다.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를 얻을 경우 반드시 잃을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정답이 없다보니 예외도 있기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IPA와 인천항만청, 인천시 등 인천항 모든 관계기관은 벌크물동량 창출에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또한 입주기업들의 비용 상승을 초래해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배후부지 임대료 등 물류비용 해결에 만전의 노력을 기해야할 것이다.
이밖에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컨테이너 화물에 대해서도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고삐를 당겨 세계 50위권 항만 진입에 성공해 인천항이 환황해권 항만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컨테이너와 벌크화물을 골고루 섭취해 어느 하나 결핍되지 않은 건강한 인천항이 됐으면 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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