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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 대표 |
여름이 즐겁다고 하면 몽둥이 들고 한 대 갈기러 덤벼들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장마철 축축한 공기에 집구석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빨래는 마르지 않아 빨아 입은 옷에서도 꼬리 한 냄새가 나고…. 열대야의 찌는 무더위에 잠을 못 자 피곤하고 목덜미 뿐 아니라 머릿속에서도 흐르는 땀에 손수건까지 흠뻑 젖어버리는 찝찝한 기분까지! 그런데도 여름이 즐겁다고?
나는 원래 태음인 체질로 몸에 수분이 많아 여름이 가장 괴로운 절기란다. 러닝셔츠가 땀에 절은 체로 사무실에 들어가면 에어컨과 선풍기 때문에 여름 감기를 항상 달고 살고, 감기약을 먹으니 땀이 더 나고…. 이렇게 땀에 젖은 채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여름이 참 싫었다.
그런데 1982년 쯤 부터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내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덥고 땀이 나면 잠깐 짬을 내 인근 헬스클럽으로 직행했다. 거기서 라켓볼을 한바탕 치고 사우나를 한 후에 차디찬 풀에서 잠시 수영으로 몸을 식히면 피부도 뽀송뽀송해져 땀도 안 나고 기분 좋게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이열치열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운동 후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나 음료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맛은 백미다.
서초동에 살 때는 퇴근 후 매일 가족, 친지들과 스포츠센터에 모여 운동도 하고 목욕도 했다. 그러다 기분이 나면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하고 귀가하는 게 정해진 일과였다. 아주 더운 날이면 아예 스포츠센터에서 하루 종일 운동하며 빈둥거렸다. 그러면 한여름 더위는 잊고 땀 흘린 뒤의 상쾌함으로 즐거운 여름을 구가했다.
여름에는 참외나 수박같이 내가 좋아하는 수분 많은 과일이 제철이다. 땀 흘린 후 얼음과 수박 갈아 어석어석 먹는 맛이란! 게다가 거리에 나가면 아가씨들이 시원하게 팔다리 들어내고 다니는 모습 또한 여름의 선물이다. 아무리 좋고 시원한 경치라 해도 이보다 더 눈이 시원할 수는 없다.
그런데 허리수술을 두 번이나 한 후엔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98년에 심장 바이패스 수술까지 한 뒤부터는 운동을 흐지부지 그만두게 됐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운동을 하다 관절이라도 다치면 안 된다는 핑계였다. 운동을 안 하는 여름이란 내게 다시 고통스러운 계절이 됐다. 날이 더우니 안 움직이고, 안 움직이니 더욱 신체가 무력해지고…. 땀 안 나게 에어컨 켜 놓은 방안이나 좋아하고, 걷지는 않으면서 시원한 차안에만 앉아 있으려 하고, 그러니 건강은 더 나빠지고…. 다시 여름이 몹시 괴로웠다.
그런데 올해 여름부턴 달라졌다. 몇 개월 전부터 가족끼리 조금씩 하기 시작한 탁구솜씨가 늘면서 덩달이 지구력도 생겼는지 한 시간 반 정도 계속 탁구만 쳐도 견딜 만 해졌다. 한 쪽 손으로 탁구대를 집고 쏘트만 치니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기엔 ‘미꾸라지가 용 된’ 기분이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탁구 한 게임만 쳐도 땀으로 멱을 감는다. 탁구 후에는 아파트에 딸린 헬스클럽으로 가 팔다리 근육운동을 하고 벨트 마사저로 복부지방을 흔들어 뺀다. 몇 개월 전에는 맹꽁이처럼 배가 나와 볼품없었는데 이제 배도 들어가고 가슴도 좀 튀어나와 나는 마치 타잔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하며 혼자 기분 좋아한다.
더위를 피해 도망만 다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운동으로 상쾌함을 즐기는 적극적 생활태도가 내 마음에 활기까지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기는 즐거운 여름이 내게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차고 단 음료를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당뇨 때문에 과일이나 음료를 먹을 때는 죄라도 짓는 것 같이 마음이 무거웠는데 요즘에는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소모하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 당뇨 때문에 시원한 음료를 맘껏 마시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기는 해도 시원한 냉수로 대신 목을 축이며 그만큼의 행복에도 감사한다. 성대수술 후에는 더워도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지 못해 안타깝다는 내 친구를 생각하면 왠지 미안한 마음을 버리지 못해 ‘냉수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자’고 자신을 달래며 여름을 즐기고 있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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