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무역적자 심화..경제 '설상가상'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지난 13일 100엔당 800.10원으로 거래를 마쳐 1997년 11월14일의 784.30원 이후 8년11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16일에는 오전 9시31분 현재 797.90원으로 800원선이 무너졌다.
원.엔 환율 하락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려 대일 무역적자를 심화하고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일본과 경합하는 수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전체 수출과 경상수지 악화가 불가피하다.
내수가 불완전한 회복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 흔들리면 한국경제는 곧바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의 핵실험 발표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원.엔 환율 하락은 한국 경제에 '설상가상(雪上加霜)'의 부담이 되고 있다.
◇ 대일 수출채산성.무역적자 악화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종전과 같은 액수의 엔화 만큼 수출해도 원화로 환산하면 이윤은 줄어든다.
수출기업들이 환율 하락을 감안해 파생상품 등으로 리스크 헤지(위험 회피)를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손해는 이론상 손해보다 덜할 수 있지만 채산성은 악화될 수 밖에 없다.
특히 리스크 헤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심각한 환차손을 볼 것으로 우려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엔저 현상이 계속되면 대일 수출 중소기업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또 엔저로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가격은 낮아지기 때문에 대일 수입이 늘어날 수 있어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악화될 수 있다.
올해들어 9월20일까지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181억달러이며 연간 전체로는 250억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엔저까지 겹치면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수출도 타격
엔저가 일본과의 교역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 미치는 파괴력이 훨씬 크다.
주요 수출시장에서 엔저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상승하지만 우리나라 제품은 대일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정적 효과가 크게 나타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3개국이 공통적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100대 품목 중 우리나라와 일본이 경합이 하는 품목은 지난해 기준으로 45개에 달해 절반에 가깝다.
경합 품목에는 컴퓨터 부품, 디지털 반도체, TV 부품, 승용차 등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상품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결국 이들 품목에서 일본 업체들이 엔저를 앞세워 저가 공세를 펼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고전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도요타는 올해 하반기 미국에서 소형차 야리스 가격을 현대 베르나보다 1천200달러 가량 싸게 책정한데 이어 인도에서는 대당 600만원 가량의 최저가 차량 판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샤프전자도 삼성.LG전자 제품보다 가격이 30% 저렴한 LCD TV를 미국에서 출시했고 일본 철강업체들은 저가 공세로 동남아시장에서 포스코를 괴롭히고 있다.
여행.유학 등 서비스수지 적자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업체의 저가 공세가 계속되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이 치명타를 입고 전체 무역수지 흑자까지 줄어들게 돼 경상수지가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새 정권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엔화가 약세를 보일 수 있다"며 "내년 원.엔 환율 하락의 영향이 세계 경기 둔화세와 겹쳐 나타나면 국내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가격 경쟁력 높여야
정부도 원.달러 뿐 아니라 원.엔 환율 하락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은 13일 국정감사에서 "정부는 대일 환율 문제를 우려하고 있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수출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면밀하게 파악해 필요하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가 전망이나 대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만 원.엔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 지원 방안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현장 방문을 통해 원.엔 환율 하락에 따른 애로 사항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엔저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를 완화시키기 위해 환위험관리지원 협의회를 통해 수출기업의 환위험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일본 시장분석과 수출유망품목 발굴 및 지원을 위해 별도의 대일수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이거나 정부 차원의 대책보다는 수출 기업 스스로가 경쟁력을 갖추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원.엔 환율 급락으로 수출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국내 수출기업들은 품질 등 비가격 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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