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해운기업인 HMM 직원들이 정부의 부산 이전 강행에 맞서 실력행사에 나설 계획임을 공식화했다.
HMM 육상노동조합은 지난 2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조합원 총회 및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사측의 일방적인 본사 이전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투쟁 의지를 담은 공동 보도자료와 결의문을 발표했다.
노조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노사 간 교섭이 진행 중임에도, 사측이 이사회를 기습적으로 개최해 본사 이전 정관 변경을 위한 임시주총 안건을 의결했다”며 “노사 간의 신뢰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배신행위”라고 맹비난했다.
특히 “불과 며칠 전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100년 영속기업’의 비전을 선포하고, 모든 성과를 임직원의 헌신적인 노고 덕분이라 치켜세우고 뒤로는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앞서 HMM은 지난 3월30일 이사회를 개최해 정관 변경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5월8일 열기로 결의했다. 노조는 임시 주총에서 처리될 정관 변경안이 본사를 부산에 두는 내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노조는 또 본사의 부산 이전을 “경영상의 실익이 전무함에도 정부의 부당한 압력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편승해 해운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명분 없는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정당한 요구를 끝내 외면하고 일방적인 이전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부산 이전은 가족 해체 강요
노조는 이날 채택한 결의문을 통해 “조합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가족 해체를 강요하는 일방적인 본사 이전 계획을 즉각 중단하는 한편 관련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와 성실히 협의할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이어 “모든 조합원의 고용 안정 보장, 근로 조건 유지, 이전 거부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를 명문화하고 합의 없는 직원의 일방적인 이전을 결코 하지 않겠다고 전 조합원에게 선언하라”고 압박했다. 또 ▲부산 강제 이전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 계획 결의 ▲쟁의 기금 사용 인준 등의 총파업 돌입을 위한 주요 안건을 처리했다.
정성철 육상노조 위원장은 “다수의 표심을 위해 소수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짓밟는 것은 국가 폭력”이라며 “직원들은 삶의 터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정부와 사측이 파업으로 내몰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 위원장은 “고객 이탈, 해운 동맹의 균열, 물류 대란으로 이어질 총파업은 모두가 패배하는 길임을 사측과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며 “정부는 진정으로 해운 기업의 글로벌 위상을 드높이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한다면 즉각 HMM의 본사 이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HMM 육상노조의 상위 단체인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의 이재진 위원장은 “정부 관료들이 앞에선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 수 없다고 하면서 뒤에선 경영진들을 압박해서 임시주총을 개최하려 하고 있다”며 HMM과 사무금융 노조가 5월8일 임시 주주총회 장소를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위원장은 사무금융노조 500여 명의 간부들에게 한 주 이상의 HMM 주식을 매수하라고 지침을 내렸고 자신도 200주를 매수했다고 밝히면서 “HMM 주주로서 우리 해운업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빤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선 일반 직원들이 본사 이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소개됐다.
자신을 13년차 HMM 직원이자 21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고 밝힌 김모씨는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것은 단순히 수백km 이동하는 문제가 아닌 아이들에게서 엄마 아빠의 품을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라며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도 영상 통화 너머로 발만 동동 구르는 랜선 부모가 되라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이어 “HMM 직원은 트럭에 실어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공장 기계가 아니”라고 울분을 터뜨리면서 “이곳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출근하고 가족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곳으로 퇴근하고 따뜻한 가정 속에서 대한민국 해운산업의 역군으로 일할 수 있도록 평범한 일상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집회에 모인 HMM 노조원 등 700여 명은 “HMM 강제 이전 즉각 중단하라!” “국가 기간 산업 흔드는 졸속 행정 규탄한다!”는 구호를 연이어 외치며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경영진 고소·해운협회 규탄
노조는 집회가 끝나고 5일이 지난 지난 7일 “사측이 현재 진행 중인 노사 협상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본사 소재지 이전 절차를 강행한 건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최원혁 대표이사를 고용노동부에 정식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본사 이전 문제를 두고 사측과 지속적으로 협상을 진행했지만 사측은 이사회를 단독으로 열어 본사 소재지 이전 안건을 처리할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결의했다고 주장했다.
HMM 부산 이전 정책으로 노사 갈등이 첨예화하는 가운데 한국해운협회에도 불똥이 튀었다.
노조는 “해운협회가 HMM의 주요 주주이자 관리 주체인 정부와 산업은행의 입장을 마치 자신들의 공식 입장인 양 대변하고 있다”며 “모든 회원사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변하고 정부 정책에도 해운산업의 미래를 위해 쓴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독립적인 단체가 해운산업의 수호자가 아닌,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부 대변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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