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관행으로 굳어진 방식으로 국제운송용역을 제공해 온 한 물류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수십억 원대의 부가가치세부과처분을 받는다면 어떨까? 과세관청은 다른 운송주선업자로부터 화물을 넘겨받아 운송한 것은 ‘외국항행용역’에 해당하지 않아 영세율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쉽게 말해, 화주(貨主)가 아니라 다른 물류기업으로부터 운송을 의뢰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세 대상이라는 것이다. 해당 물류기업은 국제물류운송업의 특수성 및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판단하여, 결국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되었다.
필자는 해당 행정소송에서 위 물류기업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많은 고민을 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업계의 관행과 과세관청의 법 해석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팽팽한 법리 다툼이 이어지고 판결 선고를 기다리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이 사건의 핵심 쟁점과 관련된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이 개정된다는 소식이었다.
최근 2026년 2월27일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32조 제2항은 “운송주선업자가 국제복합운송계약에 따라 화주(貨主) 또는 다른 운송주선업자로부터 화물을 인수하고 자기 책임과 계산으로 타인의 선박 또는 항공기 등의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화물을 운송하고 화주 또는 다른 운송주선업자로부터 운임을 받는 국제운송용역”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구 부가가치세법 시행령과 달리 운송주선업자가 “다른 운송주선업자로부터” 화물을 인수하고 운임을 받는 경우도 “외국항행용역”의 범위로 명시했다. 즉, 이제 법률상으로도 다른 물류기업으로부터 화물을 인수하여 국제운송용역을 제공하는 경우 영세율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다.
이번 개정의 법적 의미는 재정경제부의 입법예고문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재정경제부는 개정 이유에 대해 “운송주선업자가 다른 운송주선업자로부터 화물을 인수하여 제공하는 국제운송용역은 부가가치세 영세율이 적용됨을 명확히 함”이라고 밝혔다. ‘명확히 한다’는 표현은 새로운 제도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법령의 해석상 논란의 소지를 없애고 그 의미를 분명히 하는 입법 방식이다. 이는 개정 전 법령에 대한 과세관청의 해석상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사례는 향후 물류업계에 대한 과세 행정에 있어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을 제시한다.
첫째, 기업의 신뢰 보호와 예측 가능성이다. 수십 년간 특정 방식의 거래 관행이 문제없이 인정됐다면, 기업은 이를 신뢰하고 경영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세관청이 기존과 다른 해석을 적용하여 과거의 거래에 대해 과세할 경우,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과세 형평성에 대한 고려다. 유사한 형태로 용역을 제공하는 다수의 기업이 있음에도 특정 기업에 대해서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여 과세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과세 형평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공정한 과세는 모든 납세자에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산업의 현실과 법 해석의 조화다. 오늘날 국제물류업계의 현실은 여러 업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복합운송이 일반적이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는 이러한 산업의 특수성과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여, 이중과세 방지 및 외화 획득 장려라는 영세율 제도의 본질적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행령의 개정은 해석상 논란이 있던 부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물류업계의 오랜 관행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기존 법령의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특정 물류기업들이 불가피하게 법적 대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너무나도 아쉽다.
이번 계기로, 물류업계에 대한 과세 행정이 법의 취지와 산업의 현실을 보다 깊이 있게 고려하여 예측 가능하고 공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우리나라 물류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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