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8 09:30

판례/ “손해배상액의 예정 및 감액, 국제적으로도 통용될까?”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6.24자에 이어>

평석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판례는 용선계약을 체결한 선주와 용선자 간의 분쟁으로, 영국법이 준거법이 되는 경우 위약벌 규정 및 손해배상예정액의 감액 규정이 적용되는 지에 관해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가.
A호(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의 선주인 원고는 피고 1 회사와 원고가 피고 1 회사에 이 사건 선박을 2017년 2월7일부터 같은 해 2월28일까지 22일간 용선해주고 그 대가로 피고 1 회사는 원고에게 미화 9,086,280달러의 운임을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용선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했다.

나. 이 사건 용선계약에는 ① 용선자의 계약위반으로 용선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기지급대금은 반환되지 않는다는 조항, ② 용선자의 운임 미지급 시 지급 완료일 또는 용선계약 해제일까지 매 지연일마다 미지급액의 1%에 상당하는 손해배상 예정액을 지급한다는 조항, ③ 용선자의 30일 이상 운임 지급 지체를 이유로 선주가 용선계약을 해제할 경우 용선자는 약정 운임의 100% 상당의 손해배상 예정액을 지급한다는 조항(dead freight) 및 ④ 이 사건 용선계약의 규율과 해석은 영국법에 따른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다. 피고1 회사가 2017년 2월6일 오전까지 약정 운임 중 미화 합계 2,486,628달러를 지급했을 뿐 나머지 약정 운임을 지급하지 못하자, 원고는 2017년 2월6일 피고 1 회사에 이 사건 용선계약을 해제한다고 통지했다.

라. 이에 원고회사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위약금을 청구했고, 피고1 회사 등은 위약금이 과다하다고 항변했다.

3. 주요쟁점 및 법원의 판단 

가. 주요쟁점 : 1) 이 사건 용선계약의 준거법이 되는 영국법상 위약벌과 손해배상액 예정의 구분 기준 2) 손해배상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이 국제사법상 국제적 강행규정인지 여부 및 감액이 법원의 의무가 되는지 여부 

나. 법원의 판단 : 우리 법원은 외국법에 의해 준거되는 사건 내지 국제거래에서 비롯되는 분쟁에서 대한민국의 강행규정에 반하는 모든 사항에 관해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라고 하지는 않고 있다. 예컨대 (i)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위 계약에 관해 우리나라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하며(대법원 2010년 8월26일 선고 2010다28185 판결), (ii) 또한 국제사법 제7조의 준거법에 관계없이 적용가능한 강행규정(‘국제적 강행규정’ internationally mandatory rules)인가의 여부는 당해 법규의 의미와 목적을 조사해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이지 하나의 법을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며 당해 법규가 준거법에 관계없이 적용됨을 명시하는 경우, 그 국제적 또는 영토적 적용범위를 스스로 정하고 있는 경우, 그 법규가 행정법적인 절차 내에서 전적으로 관할을 가지는 관청을 통한 정규적인 집행을 규정하는 경우 등에 한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19년 10월11일 선고 2017가단24642 판결). (iii) 나아가, “국제적 강행법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당해 법규의 의미와 입법 목적 등에 비추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법원은 공정거래, 문화재 보호 등과 같이 공적인 이익에 봉사하는 법규인지, 아니면 계약관계에 관여하는 거래 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규정인지 등이 기준이 될 수 있으며, 단지 당사자 합의에 의해 배제할 수 없는 국내 강행규정이라고 해 곧바로 국제적 관계에도 적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서울고등법원 2021년 10월14일 선고 2021나2003630 판결). 학설상으로도 국제계약에서 준거법 선택이라는 당사자 자치와 법규정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공서양속을 비교형량해 후자가 전자보다 우월한 경우에 한정해 그 법규정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취급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사건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용선계약 조항③이 유효하고,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을 하지 않은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1) 영국법상 채무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약정은 그 약정 내용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liquidated damages)과 위약벌(penalty)로 구분되고, 위약금 약정의 내용이 과다하고 비양심적(extravagant and unconscionable)이라면 이는 위약벌에 해당해 강제할 수 없다(unenforceable).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용선계약의 준거법은 영국법이고 영국법상 위약벌은 무효이나 이 사건 운임 100% 배상조항(조항③)은 위약벌이 아니라고 보아 그에 따라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명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영국법상의 위약벌 해당 여부,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2)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은 법관의 재량에 의한 감액을 통해 당사자들의 계약에 개입해 내용을 수정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그 입법 목적과 성격,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준거법에 관계없이 해당 법률관계에 적용돼야 하는 구 국제사법상 국제적 강행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

4. 검토 및 시사점

영국의 판결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위약금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에 관한 결정은 계약 해석의 문제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계약 당시 상황을 기초로 해, 약정된 위약금이 상대방의 계약상 의무 이행을 강제할 정당한 이익과 비례하는 범위 내에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이 사건 용선계약 조항 중 기지급대금 몰취 조항(조항①), 용선계약 해제일까지 매 지연일마다 미지급액의 1%에 상당하는 손해배상 예정액을 지급한다는 조항(조항②)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과다하므로 위약벌에 해당해 무효 내지 강제할 수 없는 조항이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피고1 회사가 용선의 시작일 직전까지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 선주인 원고로서는 다른 용선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으로서 용선료 100%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조항③)은 과다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법원이 액수를 적절히 감액할 수 있다는 조항인 민법 제398조 제2항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조항이라고 볼 수 없는바, 영국법이 준거법이 되는 이 사건 용선계약에 반드시 적용된다고 볼 수 없으며, 국제적 강행규정으로도 볼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결에 있는 대법원의 판단은 적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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