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료, 적체료. 해운·무역실무에서 흔하게 접하는 용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운송물의 수령이 지체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제반 비용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컨테이너 초과사용료(반납지체료) 뿐만 아니라 보관료와 추가 부두비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전 세계의 많은 컨테이너선사들은 자체 전산 시스템을 통해 체화료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내부 부서를 통해 또는 변호사 등 외부업체를 통해 화주에게 체화료를 청구하는 절차 구조를 갖추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게 된 최근 몇 년 사이에 컨테이너선사는 컨테이너 박스의 반납을 촉구하고 손해를 보전받기 위하여 화주에게 체화료를 적극적으로 청구하고 있다. 해운 경기가 악화되는 시기에도 컨테이너선사들의 체화료 청구가 증가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수하인은 체화료를 납부해야만 운송물을 인도받아갈 수 있다. 따라서 수하인이 운송물을 수령하는 경우에는 체화료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일은 많지 않다. 주로 분쟁으로 번지는 장기 체화는 운송물이 무가치물이거나 운송물의 가액이 체화료에 비하여 상당히 부족한 경우에 대부분 발생한다. 수하인 또는 실수입자가 자력부족 등의 이유로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에도 장기 체화가 발생한다.
이러한 장기 체화가 발생하면 선사는 체화료를 청구하는 내용증명 서신을 보내고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체화료를 청구하게 된다. 그러면 선사는 누구에게 체화료의 지급을 청구해야 할까?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선사가 체화료를 청구할 수 있는 상대방으로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송하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운송주선인이 있는 경우에는 운송계약의 당사자인 송하인이 실화주인지 아니면 운송주선인인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발행된 운송증서가 선하증권인지 아니면 해상화물운송장인지도 구별하여 각각 다른 법리로 검토해야 한다(필자의 2023년 7월자 칼럼 참고).
한편, 운송물의 수령이 지체되는 경우에 선사는 수하인을 상대로도 체화료를 청구할 수 있을까? 이는 수하인의 운송물 수령의무와 관련된 문제다.
상법은 수하인의 운송물 수령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제802조). “운송물의 도착통지를 받은 수하인은 당사자 사이의 합의 또는 양륙항의 관습에 의한 때와 곳에서 지체 없이 운송물을 수령하여야 한다”는 규정이다.
위 상법 규정에 대하여 하급심 법원들은 대한민국에서 수하인의 수령의무가 관습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볼 증거를 찾기 어려우므로, 수하인 자신이 운송물 수령에 합의하지 않는 한 수하인에게 운송물 수령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상법 제802조 문구와는 달리 “수하인은 당사자 사이의 합의가 있는 경우 또는 양륙항의 관습이 있는 경우에 운송물 수령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급심 판결들은 서울고법 2015년 12월4일 2015나9860 판결(그 원심인 서울중앙지법 2015년 1월30일 2013가합37321 판결)의 판시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위 하급심 판결들처럼 해석하면 상법 제802조의 “때와 곳”이라는 문구에 대한 해석이 임의로 생략되고, 송하인의 운송물 제공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792조(그 문구와 구조가 상법 제802조와 거의 동일하다)와도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1991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수하인의 운송물 수령의무를 명시적으로 신설한 입법자의 결단을 자의적으로 축소·배제하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상법 제802조의 의미를 “운송물의 도착통지를 받은 수하인은 당사자가 합의한 시간과 장소에서 운송물을 수령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양륙항의 관습에 따른 시간과 장소에서 운송물을 수령하여야 한다”고 해석한다. 합의 또는 양륙항의 관습에 따른 시간과 장소는 도착통지서에 기재된 무료장치기간(free time)까지와 컨테이너 보관 터미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와 같은 해석을 한 하급심 판결도 있다(서울동부지법 2017년 11월16일 2016가합111599 판결). 이 판결은 필자가 승소하였던 사건인데, 최근에 검색해보니 수하인의 운송물 수령의무를 인정한 유일한 판결로 보인다. 수하인의 운송물 수령의무 쟁점을 다룬 대법원 판결은 아직 없고, 학계의 견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빠른 시일 안에 법원의 판단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실무상 빈번하게 접하여 익숙한 체화료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는 법적으로 많은 쟁점이 숨어있기 때문에 정확한 법률관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그런데 해상변호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법률관계에 대한 정확한 주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필자가 보기에는) 잘못된 선례가 쌓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필자를 포함한 해운업계 종사자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