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09:14

칼럼/ 한화해운과 한국해운의 미래상

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관세학회 이사·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 어느 사회, 어느 시장을 막론하고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않으면 절대 강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필자는 2023년 8월 14일 코리아쉬핑가제트 기고를 통해 “공공 거래 특성과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HMM 매각은 어렵고 독일 하파크로이트 지배구조를 참고해 더 좋은 해운물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필자의 주장대로 HMM 매각은 무산됐다. ‘우연의 일치’라 치부해도 그 우연에는 이유가 있다.

금융산업과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산업은행과 해운산업 성장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가 지상 과제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같지만 다르다. 두 기관 모두 공공기관은 같지만 같음을 같게 다름을 다르게 봐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같은 침대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이었다.

한국산업은행은 조속한 매각을 통한 공적자금 회수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국가 기간산업체인 HMM의 매각 후 경영 개입을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매각을 진행하는 그 자체가 성공적인 M&A(인수합병)와는 동떨어진 출발이었다.

M&A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목적과 시너지 효과를 분명히 해야 한다. 확고부동한 사업목적이 없거나 다르다면 모든 거래관계자가 손해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 HMM 매각 무산은 하림과 인수 파트너인 재무적 투자사, 한국산업은행, 한국해양진흥공사, HMM 임직원 등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이런 와중에 한화의 해운업 진출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화의 주요 경영전략은 방산과 우주 산업에 집중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힘쓰며 친환경 산업 생태계와 기술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한화의 차세대 경영전략의 하나로, 이를 통해, 해양, 방산, 에너지, 해운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화해운’이란 신규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하면서까지 한화는 왜 해운업에 진출하려는 걸까? 한화는 해운산업의 탈탄소 정책에서 기회를 본 듯하다.

글로벌 친환경 규제와 탄소 배출량 저감 요구 확대는 전 세계적으로 크지만, 선박 수요는 아직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기엔 충분치 않다.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다양한 유형의 동력 체제와 대체 연료가 연구 중이지만 이를 산업 현장에서 확실하게 운영하는 글로벌 해운 선두 주자가 없기에 선주들은 신규 선박 발주를 머뭇거린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통해 ‘슈퍼사이클’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중국과 기술력 격차가 좁아져 위기감이 생기고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의 한중 간 격차는 2012년에는 약 7년이었으나 2020년에는 1년으로 좁혀졌다.

한화는 선박 연구 개발에 힘쓰면서 세계 최초의 무탄소 가스선을 선보여 친환경 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박 발주 → 선박 건조 → 선박 운영 이라는 명확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 한다.

조선업 외 방산, 화학 등의 물자를 수출입할 때 한화해운을 활용하면 한화는 ‘내부화 이익’을 취할 수 있고 그룹 입장에선 해운을 통한 고객 신뢰와 거점 확보 등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화의 제품, 부품, 원재료 등을 독점적으로 운송하고 기존 산업과 같은 가치사슬 내에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전후방 시장 확대, 유관산업으로의 영역 확장도 도모할 수 있다.
 
대내외 악재에 국가경쟁력 악화

해운업은 산업위험 수준이 높다 보니 고려할 요인도 많다. 해상 물동량 증감과 선박 공급의 경직성에 따른 운임 변동성, 글로벌 시황 변동에 민감한 사업구조와 치열한 경쟁 강도, 선박 도입을 위한 대규모 선투자에 따른 금융비용은 안정적인 실적에 걸림돌이 되는 불안 요인이다.

최근 들어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통상 국가인 우리는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경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환경 규제와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입지가 악화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미·중 패권 경쟁의 희생양이 되고 순식간에 우리네 밥그릇이 깨질 판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기업이 성장 동력을 찾아 생존하고 기업 가치 향상에 힘써야 할 중요한 시기다. 우리가 할 일은 기업의 재정, 사회적 안정성을 보장하고 그들이 수익성과 지속할 수 있는 생존 확률을 유지하도록 힘껏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세액공제, 인력양성 등 간접 지원에서 벗어나 투자 인센티브와 보조금 지급 등 기업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가 해운업에 본격 진출하고 HMM 인수에 뛰어든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대형 화주의 해운업 진출을 반대하는 성명 발표와 현행 해운법의 정책자문위원회를 거론하며 일부 해양 단체들과 정치권의 반발이란 파노라마가 그려질 듯싶다. 늘 그래왔고 익숙한 광경이지만 이젠 그러한 ‘근시안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1970년 10대 재벌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업은 삼성과 LG뿐이다. 단연코 말하건대 위기 없이, 걱정 없이, 경쟁력 없이 여태껏 살아남은 기업은 지구상 단 한 개도 없다. 기업의 성과와 생존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기술, 경쟁, 시장, 정치, 사회문화 등 주변 환경이 가만히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강도 예외 없이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냈다.

가까운 일본, 미국만 하더라도 화주의 해운업 진출은 법령에 제한 규정도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하게 애쓰거나 떼쓰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만큼 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성장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도전 정신, 그리고 기업의 성과와 자산 가치를 지속해서 향상한 다각화 전략이었다.

한화도 그랬다. 오늘날 한화가 국내 10대 그룹의 반열에 올라선 가장 큰 핵심역량은 ‘이전할 수 있는 M&A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호텔·리조트, 한화갤러리아, 한화생명, 한화큐셀, 한화오션 등 수많은 M&A가 한화의 오늘을 만들었고 내일도 만들려고 한다. 한화는 M&A 성공 법칙인 목적에 충실했고 마무리가 중요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M&A는 ‘PMI’(Post Merger Integration, 합병 후 통합)에 실패 요인이 많이 숨겨져 있다. 이런 것을 잘 못하는 기업은 우수 인력 이탈, 제도와 문화적 통합이 안 돼 빈껍데기만 남는다. 조급한 사람은 컵라면에 물을 넣어도 적정선을 지키지 않지만, 한화는 설렁탕 끓이듯 은근했다. M&A로 두 회사 간 다른 조직, 임금, 직급체계를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통합해 내실화를 기했다.
 
한화는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관련 다각화도 추진했지만 M&A에 의한 다각화 경험이 많다 보니 사모펀드 그룹과 같이 경험도, 연관도 없는 비관련 다각화 업종도 인수했다.

한화의 그간 성장 방식에 비춰보면 한화해운은 기업 자체의 역량을 활용하는 ‘유기적 성장’이 아닌 M&A를 활용한 ‘비유기적 성장’을 도모할 듯싶다. 특히나 해운산업은 서비스와 시장의 궁합이 중요하다보니 ‘시장 진출 최적화’(Go to Market First)에 중심을 두고 전략을 짤 것 같다.

이참에 화주와 해운사 간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정립되고 서로 간 도와주는 문화가 구축되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의 마법이 구현됐으면 좋겠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처럼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시대에 성공은 이해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강점과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주변과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성공과 행복을 창출할 수 있다.

해운업은 함께 일해야 하는 산업이다. 자사의 내부 자원뿐만 아니라 타사의 외부 자원까지 활용해야 하며 의견 충돌을 오히려 미덕으로 삼되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갈등을 창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람과 물자를 옮기는 운송도 안전, 환경, 협업 모델, 정부 정책 등으로 비효율과 내외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쇄적 예측 기술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생성형 AI(인공지능)가 협업, 정보, 접근성의 수준을 높일 것이며 이 물결을 책임감 있게 헤쳐 나가려면 신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공통의 비전을 바탕으로 운송의 미래를 그려야 할 것이다.

만일 한화의 해운업 진출과 안착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는 한 개별 기업의 실적에 국한하지 않는다. 방산, 해운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며 오늘날의 기업은 국가 경제의 원천이고 국가의 부를 생성하는 밑거름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다.

한화는 국가·사회·국민 모두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후발자 우위’(late-comer advantage) 전략으로 기존 해운사들의 시행착오를 참고해 효율성을 높이면서 고객이 원하는 빠른 수송과 큰 비용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시대에 친환경 분야는 선점하되 후발자 우위를 선택적으로 노려 경쟁력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중복과 불필요한 경쟁은 피해야 한다.
 
사람들은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을 ‘파시’라 부른다. 파시에서 보는 바다는 때때로 전쟁터보다 위험하며 다 똑같게 보이는 것 같지만 내가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등댓불은 별이 빛나는 밤처럼 깜박이지만, 화물선의 불빛은 직장 상사의 눈빛 레이저 같기도 하다.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해양 시장을 대하는 자세를 이제는 달리해야 한다. 기존 환경의 규범과 가치, 낡은 정책, 관행과 관습, 폐쇄적 골목상권 같은 익숙함과 결별하고 관점을 달리해 혁신해야 한다.

우리나라 수출품 1위 반도체를 일컬어 산업의 쌀이라 한다. 최근 그 쌀이 외국산의 공세에 밀려 글로벌 밥상에서 점점 밀려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정책도 전통시장, 골목상권 효과는 미미했고 전자상거래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우리의 낡은 제도와 규제, 부족한 혁신 역량과 산업 경쟁력으로 해양·반도체 시장은 활기를 잃어가고 대형 마트와 전통시장의 동반 성장은커녕 중국발 전자상거래 침공으로 유통·물류·제조시장이 초토화되고 있다.
 
K-해운물류클러스터 구축 긴요

HMM 매각은 금융 논리에서 벗어나 한국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해운산업의 진흥과 친환경·최첨단 종합 물류 서비스 구현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필자가 주장했던 독일계 해운회사 하파크로이트 방식으로 탄탄한 민간기업과 공기업이 규모의 경제와 공익적 가치를 이뤄내고 상호 견제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사한 사례로 한화오션의 2대 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며 그들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한화그룹과 지속해서 협력하고 있다. 한화를 떠나 해운사·화주들이 미래 환경 속에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해상, 내륙 운송, 항만터미널, 통관, 보관 등 해운물류 공급망 전반을 다루는 종합 물류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인더스트리얼 캐리어’(industrial carrier)가 해운회사를 망하게 하고 산업을 피폐화한다는 주장은 디지털·AI·해운 물류 융복합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갑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이제는 갑옷을 벗고 우리 내부의 경계선을 넘어 할리우드, 실리콘밸리처럼 근원적 경쟁 우위를 갖춘 우리만의 해운물류 산업의 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

HMM 매각을 한국 대표 해운사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기회로 만든다면 새로운 시장을 낳을 수 있다. 이 시장이 또 다른 가치사슬의 경쟁력을 제공해 줄 거라 믿기에 시의성을 고려해 한화의 사례를 설명했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혁신성이 있다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업은 그 자체가 망하지 않고 생존해 계속기업으로 남아 월급 주고 세금 내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 무엇을 만들고, 팔고, 서비스할지 고민하는 게 본령이다. 이젠 기업의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과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정책, 세제 등 관련 지원 분야가 종합적으로 발전하고 뒷받침해야 한다.

어차피 내수 시장이 작아 ‘양’을 창출할 수 없다면 ‘질’이라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경쟁이 경쟁력을 낳는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런 경쟁력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lgb1461@naver.com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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