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 전문가만큼 많이, 잘 알 수는 없어도 모든 걸 아울러야 해요.”
동방선박 이종범 부장은 P&I보험(선주상호책임보험) 담당자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소개했다. 우리말로 하면 팔방미인 정도 되겠다. 그는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선박은 선주가 제일 많이 알고, 화물은 화주, 보험 자체는 손해보험사, 법률은 변호사, 사고 조사는 서베이어가 더 전문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대신 모든 것을 다루고 조율하는 게 P&I 담당자의 업무라는 설명이다.
동방선박은 선박 대리점을 주업으로 P&I 보험, 보험 중개업 등을 영위하는, 오랜 업력을 지닌 회사다. 창업주인 유재극 전 회장의 아버지 유항렬씨는 우리나라 최초 도선사로, 인천상륙작전 때 배를 인도해 접안한 색다른 이력이 있다. 유재극 회장은 당시 미군 선박을 타고 피난길에 올랐고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해운업에 발을 디뎠다고 한다.
회사는 1947년 미국 선사의 대리점 역할을 하는 에버렛 스팀십(기선회사)의 한국 지사로 시작해 1981년 모든 권리와 자산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에버렛 스팀십은 우리나라 선박 대리점 1호로 기록돼 있다.
현재 동방선박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IG클럽(P&I 단체)에 가입한 일본 P&I조합의 한국 대리점을 맡고 있다. 일본 P&I는 가입 선박 3700척, 가입 톤수 9000만t의 세계적인 해상 보험사다. 선박사고가 외국에서 발생하면 선주와 P&I보험사가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각 지역에 연락사무소(Correspondent)를 두고 담당 전문가가 사고 처리를 돕게 된다. 선주와 P&I보험사를 대신해 피해 확산을 막고 사고 원인 조사, 복구, 보상금 배상, 합의 등 조치를 취하는 일이 이종범 부장의 업무다.
“P&I보험 담당자의 역할을 한마디로 갈등조정자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 많은 이해당사자가 개입하게 되는데, 자신만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면 조기 수습이 요원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소송으로까지 이어져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낭비를 초래합니다. 선주와 조합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피해자 주장도 반영해야 원만히, 조기에 수습할 수 있어요.”
이 부장은 첫 직장 생활을 인천항에 위치한 하역회사에서 시작한 뒤 경력을 쌓고 동방선박으로 이직했다. 입사 18년차인 그는 처음엔 이 회사에서 해운 대리점 업무를 보다가 보험으로 넘어왔다. 낯선 업무였지만 그동안 쌓은 인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P&I 담당자는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조정해야 해 다방면의 지식과 풍부한 인맥이 필요하다. 클럽 보험담보 규칙, 선박 구조, 운항, 용선, 해상법, 해상국제조약, 현지 법령, 화물 종류·특성 등에 해박해야 업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많이 알고 있으면 업무 조력을 받는 데 유리하다.
이 부장은 전문가만큼 알기는 어려워도 공부가 필요한 게 P&I보험 업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해상법 전문 변호사의 강의를 다시 들은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업계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한다고.
“머릿속에 지식을 모두 집어넣긴 어렵다. 다만 필요할 때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만 알아도 큰 도움이 된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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