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재판장 김대웅)는 오늘(1일) 대만 컨테이너선사인 에버그린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공정위가 에버그린에 내린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을 모두 취소하고 소송 비용을 피고가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공정위는 지난 2022년 1월18일 국내외 해운사 23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사들이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15년간 총 541차례 회합해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 수출입 항로에서 120차례 최저운임(AMR)이나 긴급유가할증료(EBS) 등의 부속 운임 도입을 부당하게 합의했다는 판단이었다.
공정위는 부속 운임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해수부에 신고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해운법은 제29조에서 정기선사에 한해 ‘운임·선박배치, 화물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다만 30일 이내에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 전 합의된 운송 조건을 화주 단체와 협의해야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제재를 받은 선사는 국적선사 12곳, 외국선사 11곳이다. 국적선사는 고려해운 남성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SM상선 HMM 장금상선 천경해운 팬오션 흥아라인 흥아해운이 포함됐다. 외국선사는 대만 CNC 에버그린 완하이라인 양밍 4곳, 싱가포르 씨랜드머스크 PIL 뉴골든씨쉬핑(코스코 자회사) 3곳, 홍콩 골드스타라인(GSL) OOCL SITC TS라인 4곳이다.
이 가운데 이번 재판의 원고인 에버그린은 33억9900만원의 과징금을 받았고 제재는 같은 해 4월11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공정위 결정에 해운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선사들은 해운법에 따라 18건의 기본운임인상(GRI) 합의를 해양수산부에 신고했고 이를 달성하고자 부속 운임을 도입한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외항해운사 단체인 한국해운협회는 “해운기업들은 해양수산부 지도 감독과 해운법에 따라 지난 40여년간 절차를 준수하며 공동행위를 해왔는데도 절차상 흠결을 빌미로 부당공동행위자로 낙인찍었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낀다”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해운시장 감독기관인 해수부도 공정위가 담합 행위로 지목한 운임 합의가 적법한 절차 내에서 이뤄졌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며 해운업계를 엄호 사격했다.
이번 법원 결정은 공정위의 해운사 제재가 위법한 조치였다고 판단한 첫 사례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법원은 에버그린 건을 해운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의 대표 재판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다른 선사들이 진행하는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운사가 낸 공정위 제재 취소 소송은 총 19건이다. 동남아항로 11건, 한일항로 5건, 한중항로 3건 등이다. 고등법원 제3행정부와 제6행정부 제7행정부에서 나눠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이번 재판이 제7행정부에서 맡고 있는 다른 재판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면서 “다른 재판부에서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럴 경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