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의 거침없는 신조 발주를 막지 못했다. 해운시장 대호황에 따른 운임 급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선사들이 올해 공격적으로 선대 확충에 나서면서 컨테이너선 발주잔량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12월22일 현재 프랑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20대 선사들의 발주잔량은 연초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한 500만TEU에 육박했다. 조만간 세계 1~2위 자리가 뒤바뀔 수 있다는 점도 해운업계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만년 2위였던 스위스 MSC는 선대 확충을 통해 덴마크 머스크의 세계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20대 컨선사 ‘해운시장 92% 장악’
내년 MSC가 사상 처음으로 선두 자리를 꿰차면 머스크는 25년 만에 세계 1위 타이틀을 내려놓게 된다. 머스크는 1997년 대만 에버그린을 밀어내고 정상에 오른 뒤 남아공 사프마린과 미국 시랜드, 영국 P&O네들로이드 등을 인수하며 선두 자리를 공고히 해왔다. 2011년에는 ‘트리플 E클래스’로 불리는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해 화제를 모았다.
세계 1~2위의 선복량 격차는 머스크가 독일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한 2017년 12월 100만TEU까지 벌어졌다가 시나브로 줄어들면서 최근엔 7800TEU대까지 좁혀졌다.
머스크는 2015년 2만TEU급 초대형선 발주를 마지막으로 신조선 도입보다는 종합물류기업 도약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영업보고를 통해 당분간 초대형선 발주와 항만 투자계획은 없을 것이라며, 향후 2년간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를 기업 인수에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부터 이 선사는 미국 관세법인 밴드그리프트와 물류기업 퍼포먼스팀, 풀필먼트센터기업 비저블SCM, 스웨덴 전자상거래전문물류기업 KGH커스텀스서비스, 포르투갈 클라우드 기반 물류스타트업 허브(HUUB) 등을 사들이며 종합물류기업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반면 MSC는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16개월 동안 125척의 중고선박을 구입하며 선대 확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MSC는 선복량이 2001년과 2017년에 각각 200만TEU와 300만TEU를 돌파했지만 머스크에 밀리며 18년 동안 2위 자리만 맴돌았다.
하지만 꾸준히 선단을 확충한 결과, 최근 발주잔량은 연초 32만3300TEU 대비 3.1배(210%) 폭증한 100만TEU까지 불어났다. 글로벌 선사들 중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신조선을 모두 인도받으면 머스크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530만TEU에 달하는 선단을 운영하는 컨테이너선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신조 발주량만으로 세계 8위인 HMM(옛 현대상선)의 보유 선단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더 주목할 점은 MSC와 머스크가 결성한 2M얼라이언스의 향후 행보다. 세계 1~2위인 머스크 MSC 두 선사가 신조선을 모두 인도받으면 선복량이 1000만TEU에 육박해 해운시장 장악력이 더욱 커지게 된다. 현재 글로벌 전체 선복량인 2533만TEU의 40%에 달하는 규모다.
과거에 발주한 신조선이 대거 인도되면서 20대 컨테이너선사들의 몸집은 연초에 비해 더욱 불어났다. 20대 선사들의 선복량은 2306만TEU를 기록, 연초 2198만3500TEU에서 4.9% 늘었다. 지난해 1월 80%대에 머물렀던 선복량 점유율 역시 올해 1월 90%대 진입 이후 이달 91.6%까지 치솟았다.
1.6만TEU급 컨선 도입한 HMM, 선복량 14%↑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물류대란으로 운임이 크게 오르면서 사상 초유의 호황을 누린 선사들은 일제히 선대 확충에 나섰다. 20대 선사들의 발주잔량은 480만9000TEU로 연초 192만6000TEU 대비 2.5배(150%) 급증했다.
특히 10대 선사들은 공격적으로 신조 발주에 나섰고, 발주잔량은 연초 대비 크게 늘었다. 덴마크 머스크는 5만4500TEU에서 368% 증가한 25만5100TEU, 프랑스 CMA-CGM은 32만7600TEU에서 50% 늘어난 49만TEU, 중국 코스코는 27만6000TEU에서 112% 증가한 58만5300TEU의 발주잔량을 각각 기록했다.
과거 발주한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인도받아 올해 유럽항로에 투입해 만선(滿船) 행진을 이어간 HMM도 선대 확충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HMM은 올해 6월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6척씩 나눠 발주하는 신조 계약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과 체결했다.
올해 선복량 80만TEU대 돌파에 성공한 이 선사는 100만TEU 진입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HMM의 선복량은 연초 대비 14% 증가한 82만TEU로 집계됐다. 용선 비중이 33.6%로 10대 선사 중에서 가장 낮아 용선료 부담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발주잔량이 타 선사들보다 낮은 20만TEU를 밑돈다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올 들어 발주잔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는 이스라엘 짐라인과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였다. 연초 2756TEU에 그쳤던 짐라인의 발주량은 최근 31만TEU로 폭증했다. 발주잔량이 전체 선대 규모의 75.2%에 육박한다. 선복량은 전년 대비 12.1% 증가한 41만2900TEU를 기록했지만, 순위는 연초에 비해 한 계단 내려갔다.
ONE도 연초에 전무했던 발주량을 최근 32만1700TEU까지 늘렸다. 반면 선복량은 연초 대비 3.1% 줄어든 154만7900TEU에 그쳤다.
대만 선사들의 공격적인 선대 확충도 눈길을 끈다.
완하이라인은 올 한 해 신조 발주를 활발히 이어간 선사 중 하나로 꼽힌다. 발주잔량이 25만3400TEU로 전체 선대 규모의 61.4%를 차지한다. 연초 3만4600TEU에서 7.3배(632%)나 폭증한 수치다. 선복량 역시 연초 32만1600TEU에서 28.4% 증가한 41만2700TEU를 기록, 10대 선사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MSC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신조선을 발주한 7위 에버그린 역시 발주잔량을 연초 대비 30.6% 급증한 61만6700TEU, 선복량은 14.6% 늘어난 146만5800TEU로 확대했다.
근해항로 취항선사인 중국 SITC와 대만 TS라인의 향후 선복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TS라인은 전체 선복량인 10만3500TEU에서 발주잔량이 8만8900TEU에 육박해 전체 선대 규모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향후 신조선을 인도받으면 순위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SITC 역시 신조선을 모두 인도받으면 선복량 20만TEU대 선사로 도약할 전망이다.
중국 코스코, 싱가포르 PIL, 이란 이리슬 등은 연초에 비해 선복량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코스코는 3.3% 감소한 293만7300TEU를 기록, 300만TEU대가 붕괴됐으며 순위도 CMA-CGM에 밀려 한 계단 하락했다. PIL의 선복량은 연초 대비 7.2% 감소한 26만6700TEU, 이리슬은 1.1% 줄어든 15만TEU로 각각 집계됐다.
국적선사들의 선복량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금상선은 연초와 비교해 10% 상승한 10만8300TEU를 기록, 순위가 한 계단 상승했다. 발주잔량도 3만TEU를 웃돌아 향후 순위 상승이 기대된다.
고려해운은 1.5% 증가한 16만1200TEU로 13위를, SM상선은 24% 늘어난 7만TEU로 25위를 기록, 순위가 각각 한 계단씩 상승했다. 남성해운 역시 연초 대비 선복량이 3.5% 증가한 2만5700TEU를 달성했다. 발주잔량이 9600TE로 전체 선대 규모의 37%에 달해 향후 순위 상승이 예상된다.
나머지 국적선사들의 선복량은 연초에 비해 두 자릿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천경해운은 24.4% 줄어든 1만800TEU, 동진상선은 16.8% 감소한 7200TEU, 팬오션은 12.6% 감소한 7200TEU, 범주해운은 20.8% 줄어든 6900TEU를 각각 기록했다.
내년 컨테이너선 발주량은 올해에 비해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선사들이 공격적으로 발주를 진행하면서 올해 연간 발주량이 400만TEU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내년엔 올해 5분의 1 수준인 80만TEU 수준이 발주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로 총 선대의 3% 이상의 친환경선 교체 수요가 발생해 신조 발주가 진행될 거란 분석이다.
2022년 신조 인도량은 약 110만TEU, 해체량은 10만~15만TEU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신조 인도 선박은 3000TEU급 미만과 1만TEU급 이상으로 양극화를 띨 것으로 전망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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