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7 09:03

“1위기국 달성하는데 한국시장도 뒤처질 순 없죠"

인터뷰/ 라이베리아기국 한국등록처법인 김정식 대표
올해 전 세계 3400만t 등록…한국서 330만t 책임져
중국 입항세 감면·IT서비스·직원 전문성 강점


라이베리아 기국 한국등록처 법인을 3년째 책임지고 있는 김정식 대표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만간 라이베리아가 세계 1위 기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11월 말 현재 총톤수(GT) 3400만t의 선박을 유치해 1위 파나마와의 격차를 2000만t 이내로 줄였다. 이 중 330만t은 지난 2019년 2월 한국 대표에 부임한 김 대표가 올 한 해 거둔 성과다. HMM에서 1만6000TEU급 신조선 8척에 이어 현재 건조 중인 1만3000TEU급 12척을 등록해 해운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라이베리아 기국의 장점으로 풍부한 IT기반 서비스와 현지 인력의 전문성을 꼽은 김 대표는 앞으로 국내 영업활동을 더욱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Q. 기국은 낯선 용어다. 기국의 개념과 라이베리아기국에 대해 소개 바란다. 

기국은 영어의 플래그 스테이트(Flag State)를 우리말로 번역한 거다. IMO(국제해사기구) 공식 문서에선 어드미니스트레이션(Administra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느 한 국가의 행정부를 뜻한다. 기국의 개념을 만든 서양에선 다른 표현으로 FOC(Flag of Convenience)라는 말을 즐겨 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편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 해운 관련 교과서나 법률서적에선 일본에서 들어온 편의치적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영어 표현으로는 오픈 레지스트리(Open Registry)가 있다. 번역하면 ‘개방형 선박등록’이다.

기국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주들은 제3의 국가에 선박을 등록해 중립성을 확보하면서 선박 나포로 발생할 수 있는 전쟁위험을 피하고 자유로운 무역 활동과 세제 혜택 같은 경제적 이득을 꾀하려고 개방형 선박등록, 즉 기국을 발전시켰다. 오늘날엔 전 세계 대다수의 선주사들이 이 같은 방법으로 해운업을 벌인다. 

라이베리아는 3대 기국 중 두 번째로 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파나마는 100년, 라이베리아는 75년, 마셜은 30년이 됐다. 라이베리아기국은 1948년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에드워드 스테티너스가 주축이 돼 설립했다.

미국은 3대 기국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과거 말라리아를 이유로 철수한 프랑스를 대신해 파나마 운하를 완공했다. 이를 계기로 해운에 눈 뜬 파나마는 세계 1위 기국의 자리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과 파나마 기국을 경험한 미국은 제2 기국 도입의 필요성을 느끼고 건국을 주도한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기국을 설립하고 기국 본부를 미국 버지니아주에 뒀다. 현재 라이베리아해사청 관료들이 미국 본부에 파견 나와 있다. 

1820년 라이베리아가 건국할 때 뉴욕법을 차용했다.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인 뉴욕의 법과 제도를 따온 덕분에 라이베리아 법도 선진적이고 유연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해사법에 대출기관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저당권 등기제도를 명문화해 기국의 기초를 마련했다.

라이베리아 기국 설립 이듬해인 1949년 그리스 선주가 보유한 탱크선 <월드피스>(World Peace)호를 첫 번째 선박으로 등록했다.

라이베리아는 같은 해 IMO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각종 국제해사규정을 만들고 개정하는 위원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해사규정 해석 분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조선소 선급 제철소 선주 등과 손잡고 다양한 신기술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Q. 기국 등록선박이 2억t을 돌파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등록 실적이 궁금하다. 

맞다. 올해 5월 라이베리아 기국은 등록선대 2억t을 돌파했다. 11월 말 현재 2억1100만t을 기록 중이다. 올 한 해 3400만t 698척의 선박이 라이베리아를 찾았다.

기국본부 통계에 따르면 경쟁 기국인 파나마는 2억3000만t, 마셜제도는 1억7700만t이다. 라이베리아는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 기국 중 성장세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향후 몇 년 안에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한국 선박은 총톤수 330만t을 유치했다. 에이치라인해운의 17만4000㎥급 LNG 운반선과 케이마린(국제선박투자운용)의 32만5000t(재화중량톤) VLOC(초대형 벌크선), SK해운의 31만8000t VLCC(초대형 유조선), 현대글로비스 31만8000t VLCC, HMM 1만6000TEU 컨테이너선 등이 우리 고객 명단에 올랐다. 등록된 선박들 중 2척을 제외하고 모두 신조선 시리즈란 점이 고무적이다. 

Q. 경쟁 기국과 비교해 라이베리아만의 차별화된 전략과 서비스는 뭔가?

라이베리아 기국은 사용자 친화적인 데다 시장을 선도하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강점이다. 지난 2007년 기국 최초로 IMO의 승인을 받아 선박 운영에 필요한 전자증서를 도입했다.

또 선박관리업체가 선원 서류를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는 최첨단 SEA(선원전자애플리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했다. 저희 기국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CRA라 부르는 임시 해기사면허 신청확인증을 발급받아 해기사들이 곧바로 배에 탈 수 있도록 처리하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많은 선박관리업체가 SEA 시스템을 활용해 선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2016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라이베리아 기국에 등록한 선박이 중국에 입항할 때 내는 입항세를 28.4% 감면하는 해운협정을 체결한 것도 매력적이다. 중국에 상시 입항하는 VLCC는 연간 16만달러,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10만달러 이상의 감세 효과를 볼 수 있다.

올해 10월 두 국가는 기존 해운협정을 공고히 하고 확장하는 개념의 해사안전협약(MOU)을 추가로 맺었다. 

라이베리아 외부의 문서들을 기록하고 등록할 때 공증 또는 아포스티유(외국 공문서 인증) 절차 없이 라이베리아해사청에서 자격을 부여받은 저 같은 전문 인력(Special Agent)들이 문서를 직접 인증할 수 있다는 것도 선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Q. 3대 기국 중 라이베리아만 유일하게 한국에 법인을 둔 것으로 안다.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라이베리아 기국 한국 지사는 국내 법원에서 등기·등록 절차를 마친 국내 법인이다. 미국에 있는 라이베리아 기국 본부가 투명성과 준법성을 중요하게 여겨 취한 조치다.

라이베리아는 다른 기국과 달리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EU(유럽연합)가 발표하는 국가 청렴도 명단에서 계속해서 화이트리스트(우수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등록처는 서울과 부산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있다. 서울에선 선박등록, 라이베리아 특수목적법인 설립, 저당등기 등의 업무를 본다. 부산은 선박 기술과 운영 지원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Q. 대표님이 라이베리아기국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2018년 여름에 비즈니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링크드인을 통해 지역 전문가를 채용한다는 미국 기국본부의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이후 온·오프라인 인터뷰, 이메일 교환 등 6개월간의 선발 과정을 거쳐 라이베리아 기국에 합류했다.

과거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영업 업무를 할 때 해외주재원 생활을 하는 등 국제 업무를 봤다. 그런 경험을 살려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 근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채용 과정에 응했는데 운 좋게도 한국 대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2019년 2월 미국 버지니아주 덜레스(Dulles)에 있는 기국본부와 뉴욕사무실에서 연수를 받고, 같은 달 말부터 한국사무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부임 이후 밤낮 없이 국내 해운업계를 찾아다닌 결과 올해 같은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아 기쁘다. 

Q. HMM이 짓고 있는 1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유치해 화제를 모았다. 의미가 클 거 같다. 

국내 컨테이너선 대표 선사인 HMM은 2024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짓고 있는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라이베리아에 맡기기로 했다. 앞서 올해 상반기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 총 8척을 우리 기국에 등록했다. 

HMM뿐 아니라 많은 국적선사들이 라이베리아 기국을 선호한다. 중국 입항세가 감면되는 데다 앞서 말한 대로 선진적인 IT 시스템을 바탕으로 여러 효율적인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주들이 우리와 거래하면 시간과 경제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른 기국과 달리 라이베리아해사청에서 자격을 부여받은 한국 직원들이 기국 업무를 직접 처리하고 있어 업무 대행료가 발생하지 않는 데다 처리 속도가 빠르다.

현재 HMM을 비롯해 고려해운 장금상선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SM상선 STL글로벌 케이씨매리타임 케이마린 코리아LNG트레이딩 팬오션 현대글로비스 현대LNG해운 남성해운 등 많은 국적 선사들이 라이베리아 기국에 선박을 등록했거나 등록을 준비 중이다. 

Q. 라이베리아기국과 한국법인의 향후 계획은?

기국본부에선 빠른 성장 추세를 유지하면서 국제해사산업에 기여하고 지구 환경 보호에 앞장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여러 신기술 또는 신 선형 개발에 참여하는 게 이 같은 맥락이다. 현재 많은 이중연료 또는 대체연료 선박들이 라이베리아 기국에 등록했다. 한국법인은 기국본부의 계획에 맞춰 국적선사들에게 편리하고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라이베리아 기국은 회사 설립, 선박 등록, 저당등기, 선박 운영과 기술 지원, 관련 증서 발급, 선박 건조와 운영에 관한 국제해사규정의 해석, 신기술 개발 참여, IMO 활동 등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제해사산업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국내 해운해사업계가 라이베리아 기국의 업무를 한층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겠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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