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옛 현대상선) 노사가 임금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해 물류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HMM 사측과 육‧해상노동조합은 2일 오전 8시 연지동 사옥에서 2021년 임금교섭 합의안에 서명했다. 배재훈 HMM 대표이사와 김진만 육상노조위원장, 전정근 해원노조위원장은 전날 오후 2시부터 이날 오전까지 이어진 마라톤 협상 끝에 실질 인상률 10.6%의 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엔 ▲임금인상 7.9% ▲격려금과 생산성 장려금 650% ▲임금 총액의 2.7% 복지 개선 수당 지급 등이 담겼다. 또 노사가 참여하는 TF를 구성해 ‘성과급 제도 및 3년간의 임금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노사가 여기에 합의하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의 임금 단체 협상을 갈음하기로 했다.
77일간 임금협상 줄다리기
HMM 노사는 지난 6월18일 협상을 시작한 뒤 77일 동안 인상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노조는 임금 25% 인상과 성과급 1200% 지급을 요구했고, 회사 측은 5.5% 인상과 100% 격려금 지급을 고수했다. 지난달 11일까지 진행된 4차례의 교섭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노조는 곧바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회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달 19일과 20일 육상노조와 해상노조 순으로 열린 중노위 조정회의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측은 노조가 파업 가능성을 시사하자 조정회의에서 8.0% 임금 인상과 격려금 300%, 생산성장려금 200% 지급 외에 추가로 5~10만원 교통비와 50만원 상당의 복지포인트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실질적인 임금인상률은 10.6%에 해당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지만 노조는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노위는 노사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조정중지 통보를 내렸고 사상 초유의 해운 파업이 현실화됐다.
중노위 조정 불발로 쟁의권을 확보한 노조는 파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사측이 노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육상노조는 파업에 들어가고 선원법상 쟁위행위를 하지 못하는 해상노조는 단체 사직서를 내고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한국인 선원 모집에 나선 스위스 선사 MSC로 이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MSC는 현재 HMM보다 2.5배 많은 급여를 주는 조건으로 한국인 선원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해상노조와 육상노조가 지난달 23일과 30일 각각 조합원을 대상으로 벌인 파업 찬반 투표 결과는 압도적인 비율의 파업 강행이었다. 해상노조에서 92%, 육상노조에서 98%의 조합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원노조는 10시간에 걸친 선상 시위도 벌였다. HMM <현대브레이브>호와 <에이치엠엠로테르담>호는 어제(1일)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부산 신항 HMM터미널과 한진터미널에서 “선원은 노예가 아니다! 선원 잃고 해운 재건 없다!”는 내용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현수막과 팻말을 걸고 뱃고동을 15초간 울리는 방식으로 해상 시위 벌였다. 이튿날에도 <에이치엠엠그단스크>호가 바통을 이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노사가 합의에 성공하면서 계획을 취소했다.
사상초유 해운파업 우려 고조
2달이 넘는 HMM 노사 갈등이 해운 파업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해운업계와 정치권도 많은 관심과 우려를 나타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4일 한국노총과 만나 “노동자들이 그동안 임금을 동결하고, 2조에 가까운 순익이 나온 상황에서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원만히 합의돼서 파업까지 가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승남 의원도 같은 날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수부는 해운재건을 위해 배를 더 많이 만드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선원이 매력을 가진 직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인력부족, 장시간노동, 열악한 처우 등 오래된 숙제를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며 “HMM 노사 갈등 해결을 위해 해수부도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라”고 주문했다.
국적선사 단체인 한국해운협의회는 다음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HMM 노사 임금협상이 원만하게 합의되지 못하고 파업이 현실화하면 국내 유일의 원양 컨테이너 운송사의 선박운항이 중단돼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우리나라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노사가 상생협력을 발휘하고 정부당국과 금융권도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물류대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배려해 조속히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적선 노조 23곳이 가입해 있는 전국해운노조협의회는 같은 달 3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HMM 선원들은 지난 10년간 회사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사측의 성의 있는 화답을 기대했지만 사측은 이를 묵살했다”며 “협의회 조직 일동은 HMM 해상직원의 생존권과 기본권 사수를 위한 투쟁을 적극 지지하며 전 조직력을 동원해 HMM노조와 함께 연대해 투쟁해 나가겠다”고 HMM 경영진과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압박했다.
협상 타결에 국내 수출입업계 안도
상황이 악화하자 배재훈 사장과 김진만 위원장, 전정근 위원장은 파업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하고 이달 1일 마지막으로 교섭 테이블에 앉았고 새벽까지 이어진 협상을 통해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합의안은 비록 인상률로만 따지면 노조 요구안의 60% 정도 수준이지만 해운 노동계 안팎에선 노조가 당초 목표의 80%까지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노조단체 관계자는 “10년 가까이 임금이 동결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두 자릿수의 임금 인상을 이뤄낸 건 노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물류 적체와 선복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HMM이 국내 수출입업체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과정 중 낮아진 임금 수준의 보상방안을 협의해 현재의 영업실적은 물론 미래 변동성, 중장기 발전과 해운산업의 재건을 동시에 고려해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협상 타결로 물류 파업을 피할 수 있게 된 해운무역업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해운협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HMM 노사 양측이 현재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대내외 상황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우려를 인식하고 한 발씩 양보해 전격적인 합의안을 도출해 수출입 기업과 국가경제를 위해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게 됐다”며 국내 대표선사의 임금협상 타결을 환영하고 “우리 해운업계도 해운산업 리더국가로의 도약 실현 및 수출입물류 지원을 통해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무역협회도 “HMM 임금협상 타결은 선·화주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상생의 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HMM 노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HMM 측은 “코로나 등 어려운 상황과 해운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합의할 수 있었다”며, “이번 임금협상을 계기로 노사가 함께 힘을 모아 해운 재건 완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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