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2 09:11

여울목/ 공정위 조사가 한국해운 재도약에 찬물 뿌려선 안된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발 호황으로 환해졌던 해운사들의 표정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로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선사 동남아항로 영업담당자를 세종청사로 불러 대대적인 면담 조사를 벌였다. 이와 별도로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동안의 항로별 운송수입과 물동량을 협의회와 선사 측에서 제출받았다. 

앞으로는 한중항로 담당자들을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근해 3대항로 중 한일항로는 지난 2019년 7월 이미 조사를 마친 터라 해운사 가격담합 조사는 연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의 해운시장 조사는 지난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들이 유가 급등에 대응해 부과한 긴급비용보전할증료(ECRS)를 인천에 있는 목재합판유통협회에서 가격담합이라고 고소한 게 도화선이 됐다. 

공정위는 당시 현대상선(현 HMM) 흥아해운 장금상선 3곳을 압수수색하며 운임담합 조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듬해 5월 조사 대상을 외국선사로 넓혀 코스코와 머스크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했다. 

코로나가 강타한 지난해를 보내고 2021년에 들어서면서 경제검찰은 다시 조사의 고삐를 바투 쥐고 있다. 국적선사와 외국선사를 가리지 않고 대대적인 소환 조사와 자료 수집을 벌이는 모습이다.

컨테이너선사를 대상으로 한 가격담합 조사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운법 29조는 몇 가지 단서가 붙긴 하지만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의 공동행위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법적으로 허용된 해운사 공동행위를 화주단체의 고소고발을 이유로 2년 반 동안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목재수입상단체가 고소를 취하하고 해운사를 선처해달라고 탄원했음에도 오히려 조사의 강도를 높여 원성을 사고 있다. 동남아항로에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선사들 항변에 ‘불황형 담합’도 담합이라고 답한 데서 공정위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해운사의 공동행위에 문제가 있다면 해운법에 따라 해수부가 조사하고 처벌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조사를 강행하면서 해수부는 해운시장 감독권한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월권행위로 비춰질 만큼 공정위가 해운사 공동행위 조사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해운법과 경쟁법의 제도적 허점을 들 수 있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해운법에서 선사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도 경쟁법 규제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같은 주요 해운선진국은 해운사의 공동행위가 독점금지법 또는 경쟁법 적용에서 제외된다고 명문화했다.

공정위가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위법하다고 결론 내릴 경우 그 후유증은 클 것으로 보인다. 역외적용 규정이 있는 경쟁법 특성상 국내 해운사는 외국에서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 자동차선사가 남미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EU 등에서 잇달아 처벌된 것도 역외적용 규정 때문이란 지적이다. 

머스크나 코스코 같이 아시아역내항로 자회사가 있는 외국 원양선사와 달리 독립기업인 우리나라 HMM은 아주항로에서 담합행위로 처벌될 경우 북미나 유럽항로에서도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 경쟁당국의 보복 처벌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위 조사로 해운업계는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번 일이 도약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한국해운을 다시 위축시키고 후퇴케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오히려 모호한 해운산업 공동행위 규정을 명확히 정리하고 경쟁법과의 충돌을 차단하는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해운당국과 경쟁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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