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시절까진 아니다. 다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가 됩시다”. 9시 뉴스 띄띄띄...방송 전 방송국마다 온 나라 어린이를 일찍 재우려 했던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의식이 있었다.
필자는 요즘 새삼스레 그 의식을 매주 월요일 저녁 재연하고 있다. 별 보고 출근, 달 보고 퇴근해야 그나마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생활 속에 새벽안개 헤치며 ‘물류·유통산업 AI 융합전략 리더 과정’을 수강하러 화요일은 북새통이다.
글로벌 물류 산업 시장규모가 2019년 11억달러에서 2027년 216억달러로 연평균 45%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산업구조가 노동에서 기술집약으로 전환되면서 AI 기술 도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물류 산업 성장의 힘을 실생활에서 느끼는 사례도 늘어나 ‘코로나 실업자’들이 몰려 경쟁과 수요가 바빠진 분야가 물류센터, 택배, 배송이다. 물류의 역할이 기업뿐 아니라 사회, 경제, 국민적 측면에서 비중이 늘어나 전통적 서비스를 벗어난 다양한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체제로 변모 중이다.
기업들도 독립적 경쟁이 아닌 SCM을 통한 전략적 협력체제와 늘어나는 물동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키 위해 기술의 질적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증가하는 시장규모에 맞춰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통합물류협회에선 아침밥까지 먹여가면서 AI 기술에 대한 지식 상향 평준화를 도모 중이다.
주는 아침밥 먹어가며 필자가 떠오르는 AI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 대통령에게 조언한 말이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넘어 “새로운 문명”으로 다가온 AI를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선도 국가로 나가야 한다는 AI 예찬론이다.
둘째,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대로 가겠습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님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합리적 대안 제시와 편의성 향상이란 AI 기능에 어느덧 길들어져 있다.
셋째, 자본주의 멸망을 예고한 마르크스(Marx)의 꿈을 깨뜨린 케인즈(Keyness)다. 1928년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전망’(Economic Prospect for Our Grandchildren)이란 논문을 통해 과학기술의 진보가 후손들에게 안겨줄 ‘기술적 실업’과 이로 인한 새로운 사회 문제를 예견했다. 위대한 경제학자다운 혜안이다.
물류·유통산업 분야에서도 AI 활용사례는 이제 다반사다. 물류센터에 아마존 로보틱스가 근로자에게 선반을 날라다 주면서 적은 인력으로 주문량을 소화하고 있고 월마트가 인공위성을 띄워 세계 물류를 관리하는 것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데이터가 빈 트럭과 화물을 연결해주고 자동운전 화물차가 도심을 달린다.
결국, 이 세상 모든 기업이 갈 길은 한 방향에 맞춰져 있다. 최대한의 능률을 통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망하지 않는 조직의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려 함이다.
그 옛날 산업 혁명 때 똑똑한 고용주들은 방직공, 기계공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기술 교육을 했다. 오늘날은 교육 이외 기계와 인간이 협력하고 결합해 서로를 증강하고 한정된 자원과 정보를 분배하는 현명한 사회적 교류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협업적 집단 지성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엔 인색하다. 물류 거래량 확대와 수요 증대로 정보관리 제공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으나 지금도 일부 해운 관련 협회는 화물 물동량 실적 등을 아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국가정보 원문공개율도 20년 10월 기준 43.2%에 머물고 있고 국회의원 정책연구 공개율도 20%에 그친다. 네이버 지식인, 다음 아고라 등 소셜 네트워크는 활발하지만, 소프트웨어·데이터 등 정보 공개를 통한 사회적 지식모델을 생산하는 공진화(供進化)는 더디고 외부공개(Reveal)에도 인색하여 사용자 혁신도 어렵다.
이는 한국 기업문화의 특성인 생산시설 투자 등 ‘자력 성장’을 선호하는 방식과 ‘단기성과 집착’에 기인한다. 일정 단계까지 내적으로 성장을 도모할 순 있지만 이것만으로 무궁한 발전을 이끌기는 허전하다. 시너지 효과 있는 기술기업과 제품 생산 업체를 인수하여 경쟁력과 생존력을 높일 수 있는 ‘외적 성장’에도 과감한 러브콜을 보내야 한다.
또한,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로 단기적 목표들을 채워왔으나 이젠 ‘진정한 혁신가(Innovator)’로 장기적 성과 창출 능력을 배양하는 방법도 키워야 한다. 예쁜 장미 남들보다 잘 뽑기만 하는데 그치지 말고 어디서 자랐는지 어떻게 해야 예쁘게 키울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의 외부 평가위원을 하고 있다. 데이터도 돈이 되는 시대라 하니 그저 많으면 좋은 줄 알았다. 단선적 사고였다. 시스템적 사고로 말하자면 많은 데이터 속 온톨로지(ontolohy)를 찾아내 구매·판매자 선호도가 일치하여 짝을 찾아주는 협력이 중요하다. 중매를 잘해 최종 산출물이 유용한 자료가 좋은 데이터고 이러한 것들이 기업 발전의 윤활유가 된다.
AI 기술 도입이 기업 성장의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한다. 왜일까? 기업이 시장에 대처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조직개편이었다. 여태껏 많은 기업이 경험과 직관에 따른 의사 구조를 내려왔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하고 어려워 ‘테스 형’을 찾고 넘쳐나는 정보로 의사 결정도 자동화가 필요해졌다. 오너의 동물적 감각과 그동안의 관습과 경험적 선택만을 답습해선 적당한 서비스는 제공할지 몰라도 각각의 가장 최적화(Optimization)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시장 메커니즘을 따르겠지만 분명컨대, 그 과정에서 관리와 운영에 있어 AI로 위임하는 분야는 넓고도 많아질 것이다.
2020년 10월 말 기준, 전 세계 AI 전문 기술인력 규모는 47만7000여명이고 이 중 한국인은 2500명으로 0.5%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말 AI 논문 관련 저자 수도 한국인은 717명으로 세계 11위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AI 전문가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략 국내에 3200여명 수준에 불과한데 AI가 생산성 향상과 디지털 혁신을 창출 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첫째, 리더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한 때는 언제 이익이 날지 장담할 수 없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포기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면서 무쏘의 뿔처럼 나아간 리더들의 대담한 용기와 성실한 실천이 없었다면 지금의 오늘은 없었다. AI 분야에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전력을 다하고 상심을 모르는 리더들의 기업가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조직은 왠만해선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 AI에 유식해서 논문이라도 한 편 써봤거나 실무경험, 하다못해 직간접적 사연도 없는 대표님 이하 간부님들은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심에 족하다. 통상 혁신(Innovation)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회사들 단골 멘트는 “개발자들한테 슬리퍼 신고 다니지 말고 복장 단정히”를 요구한다.
밥 먹듯 회의하며 실적 가시화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바둑을 오래 했다고 이세돌도 지는 AI를 이길 수 없는 법. 눈에 보이는 대로 주관적이고 경험적 확증편향이 강한 조직은 우주에서 안쳐다 봤으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꼴이다. 인간의 인지적 제약을 넘어선 AI를 수용하고 신뢰하면서 단기적 성과에 함몰되지 않고 AI 전문가들이 조직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사귀기로 한 커플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 묻지 말자. 적당한 방심(放心) 속에 안심(安心)하고 일할 수 있다.
월요일 저녁이면 작은 변화가 두려우면서도 즐겁다. 피로는 쌓여도 AI 배움을 통한 즐거움과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은 지식의 길을 따랐고 이를 통해 통찰을 얻었다. 겁도 나지만 AI와 데이터가 득실거리는 동굴에 들어가서 그놈들과 친해져야 한다. 그 동굴에 우리가 찾는 미래 먹거리 보물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네 도심에 데이터를 통해 밥을 배달해주고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계와의 경주로 빨리도 달리지만 사고 안 나는 방법도 알고 있으리라. AI를 개발한 사람에겐 인지능력과 실제 경험에서 배우는 실행지(實行智)가 있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 아닐까?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