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4 16:01

더 세월(36)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33. 정신과 치료(1)
 


정신과 병원을 들어서는 순간 서정민은 미소를 띠었다. 방문할 때는 크고 작은 선물 하나쯤 들고 들어간다. 이번엔 비타500 한 박스를 내려놓았다.
“혹시 현금, 들어있는 거 아니죠?”

음료 상자를 받아든 여의사가 말했다.

“성완종 정도의 부자는 아닙니다.”

얼마 전 뇌물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자살한 국회의원에 대해 말한 것이 미안했는지 서정민은 멋쩍은 듯 웃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광화문 교보빌딩 근처에 있는 정신과의원을 찾는다. 여의사가 주치의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던 그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 박스의 활력, 총리도 반한 맛’이라는 타이틀을 보았다. 비타500 광고 패러디가 벌써 나오다니.

“트라우마는 근원적 요소인 외부 요인에 대한 명백한 정리가 먼저 필요합니다. 회사나 공동체의 책임성이라 할까.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지요.”

서정민이 진료실 의자에 앉자 의사는 진료를 시작하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서정민은 이 시점부터 비용이 계산되는 건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정신과에는 수백 가지의 질환이 있지만, 내인성이 아닌 외인성 질환은 많지 않은데 외인성 질환 중 하나가 바로 트라우마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상처를 다른 형태나 다른 가치로 승화시켜 새로운 일상을 구축하며 견뎌 나가야 합니다. 좋은 이웃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최근 상태가 어떠냐는 질문에 서정민은 이순애의 환영이 자꾸 보인다고 말했다.

“그 환영이 언제 보이나요? 밤 혹은 낮?”

“밤낮이 없어요. 길을 가다가 뒤돌아볼 때 여자가 보이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녀가 클로즈업되기도 합니다. 꿈에도 나타나는데 손을 흔들며 웃고 있을 때는 현실 같기도 해요.”

“지금 혼자 계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또 사회로 생활범위를 확장시켜나가야 합니다. 이런 걸 ‘사회적 치유’라고 하는데….”

“….”

“죽은 아이의 생일에 시를 보내는 시인, 잠자는 유족의 품에 핫팩을 넣어주는 이웃, 함께 차를 마셔주는 이성…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지요. 참, 이혼하셨다고 했나요. 혹시 사귀시는 분은?”

“사귄다기보다 그저 대화를 나누며 덤덤하게 지내는 동업자 여성이 있습니다. 친구라고 하면 맞을 거 같네요.”

“사회적 치유에 도움 되는 일이니까 일부러 피하진 마세요.”

그러면서 사회적 치유가 왜 필요한지 세월호 트라우마의 사례 몇 가지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모두 세월호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된 것들이라고 한다.

언니를 잃은 한 중학생은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자기 언니가 보여 선생님 등 뒤에 숨었다. 한 어머니는 딸의 친구가 딸 꿈을 꿨다고 SNS에 올리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걔가 어떻게 지내는 것 같니? 춥지는 않은 것 같애?’라고 물었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갈게’ 글을 써놓고 목숨을 끊으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살하려는 분은 급성스트레스장애라고 말할 수 있지요.”

서정민은 자신이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자신도 죽음의 충동에 빠지지 않을까 슬그머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상하다. 독심술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주치의는 섬세하게 상담을 이어나갔다.

“너무 여론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분노의 반은 국민들한테 맡기고요.”

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가. 정신과 치료는 여러 사람을 한 가지 틀에 맞춰 치료할 수 없는 특성이 있어 개인의 요구에 맞는 선별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는 맞춤형 치료가 요구된다.. 트라우마는 피해자의 상태를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학습해야 비로소 치료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사가 과거에서 태동해 현재에서 발생했고 미래를 암시하는 시퀀스를 품고 있다고 규정한다면 피해자의 치료 또한 시스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녀의 견해다.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도 없을 만큼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있으면 상태가 호전되기 힘들어요. 이제 마음을 여시고 옛날의 평상심으로 돌아가도록 애쓰셔야 합니다. 본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애견을 잃고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제 경우엔 옆에 있었던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 전 부산에서 30대 여인이 강아지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착화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을 그는 떠올렸다.

“여러 가지를 알고 계시는군요. 그런 것을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이라 합니다. 그런 사람도 상담이 필요하지요.”

그녀는 서정민의 시선을 마주하고 말을 이었다.

“스트레스가 몸에 왜 해로운지 아십니까?”

‘알면 왜 치료 받으러 오겠어?’ 대꾸하려다 참고 그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설명해 나갔다.

에너지는 포도당에서 추출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슐린은 이 포도당을 세포로 보내는 호르몬이다. 하지만 스트레스호르몬(코티졸)은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보내기 위해 인슐린을 저지한다. 위협이나 불안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스트레스호르몬은 신체에 에너지를 저장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체는 안정을 되찾게 된다. 지방은 에너지의 예금통장인 셈이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사촌 간 아닌가요?” 그는 간주곡처럼 의사 설명 중간에 끼어들었다.

“적절한 표현이네요.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아드레날린과 코티졸을 분비해 심장과 뇌에서 10배에 가까운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계속되면 우리 몸의 각 공장에게 돌아갈 에너지원이 고갈되겠지요. 만성적 스트레스는 그래서 나쁜 겁니다.”

“자고 일어나면 팔다리와 어깨가 뻐근한데….”

“그럴 수 있지요. 몸 전체 면역이 떨어질 수 있고 한 부분에 집중해서 안 좋을 수도 있고요.”

“평소 생활습관이 중요하다는 뜻도 되겠네요.”

“열심히 사시는 것도 좋지만, 삶의 속도 때문에 방향을 잃으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아시죠? 생활 자세와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서정민은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각오로 인생을 진하게 살아왔는데 이제 그런 자세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이순애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나. 이렇게 계속 그녀를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게 맞는 것일까? 애도를 일컬어 살아남은 자가 수행하는 죽은 자에 대한 상징적 복권(復權)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애도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눈썹에 힘을 한번 줬다. 밤인데도 어두워지지 않는 밤을 사는 괴로움에서 빨리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처럼. 의사는 환자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을 눈치챘다.

“걱정 때문에 뒤척이다 잠을 못 이루시는 경우가 있으시죠?”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하다가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고 퀭한 눈으로 출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계는 오늘날 수면장애가 옛날보다 두 배로 늘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우리가 스트레스가 심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다.

“‘잠 못 자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하지 말고 잠자리에 누워서 좋았던 일이나 행복한 일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해보세요. 훨씬 나아질 겁니다.”

의사는 잠깐 여담의 시간을 갖겠다고 운을 뗐다. 그것도 치료과정인가.

“선장의 지휘부재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한데, 한 개인의 문제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가 반영된 결과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부끄럽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선장 경험자로서 공공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생활 실현을 위한 핵심가치가 공공성인데 세월호에서 완전 실종했다고 봐야죠. 이것도 부끄럽고요.”

“그렇습니까. 제가 표현해 보자면….”

의사는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사회에서 공공성이 피어날 수는 없다. 배를 가장 잘 아는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다. 공공성 이탈이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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