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허리라 불리던 제조업이 위기에 처했다.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조선,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들은 한국 제조업 성장의 결과물들이다. 제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급사슬 구조하의 공급업체들은 제1의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소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인근 식당, 커피숍, 편의점 등의 자영업체들은 제2의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있다. 제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된 지역들의 경우 자영업체들이 연달아 문을 닫게 되고 결국 지역경제가 힘겨워 진다.
제조업 일자리, 갈 데 없어
제조업 취업자가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 취업자 규모는 2016년 약 458만명에서 해를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9년 현재 약 443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제조업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17.6%에서 2019년 16.5%로 하락해 왔다. 제조업 취업자가 감소하는 현상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생산기지와 공급라인을 중국, 베트남 등으로 보내거나, 기존 주력 제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구조조정 되는 등의 산업적 요인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디지털 기술들을 적용함에 따라 생산인력들을 대체하는 공장자동화 및 스마트팩토리화가 진행되는 기술적 요인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 되고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되는 등의 경기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 하에 최저임금인상 속도를 가속화 하거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기업들에게 고용부담이 가중되게 한 정책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제조업의 경제적 위상이 흔들려
우리나라의 주력 제조업이라고 불리는 자동차·조선·철강·기계·석유화학·반도체·통신기기 등의 산업들은 최근 일시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것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 들어 주력 제조업에 경고등이 들어왔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이고 현저한’ 둔화세가 나타났다. 제조업의 GDP에 대한 성장 기여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2000년대에는 약 2%p대를 유지하는 모습이었으나, 이후 2010년대에는 1%p대로 주저앉은 모습이다. 과거 제조업이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했다고 평가된다면, 최근에는 한국경제의 성장세를 지연시키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공장 가동은 멈추고, 재고 소진은 안 돼
공장들은 가동되지 않은 채 멈춰서고, 재고만 쌓여가는 모습이다. 한국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1년 이후로 빠르게 하락하는 반면, 재고율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전형적인 과잉공급 국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1년 80.5%에서 2019년 72.0%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가동률은 금융위기 당시를 포함해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편, 제조업 재고율은 2012년 69.6%에서 2019년 83.2%로 지속적으로 상승 중에 있다. 이미 생산능력이 과잉인 상황인 것이다. 그동안 확충되어 왔던 공장설비들이 유휴시설로 전락되고 있다. 국내 제조업들은 주로 해외수요에 의존적인데, 세계 경제가 2017년 이후 중장기적으로 위축되어온 과정에서 설자리가 더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기술추격으로 제품의 경쟁력도 잃어가고, 베트남 및 인도 등의 제2, 제3의 생산기지들이 등장하면서, 과잉생산능력 문제가 해소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중국의 추격과 한국 제조업의 긴장
중국의 기술추격은 한국 제조업에 상당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할하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수행한 2018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수준은 최고기술 보유국(미국) 대비 76.9%이며, 최고기술 보유국과 3.8년의 기술격차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기술수준이 76.0%, 기술격차가 3.8년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빠르게 축소되어 왔고, 최근에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분석은 각 년도별 평가대상기술, 대분류 및 평가방법이 변경되어 단순비교는 불가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당시에는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다고 평가되었다가, 2018년 최근에는 격차가 없다고 평가되었다는 팩트를 간과할 수 없다. 팩트는 이러하다. 2008년 기준 세계 최고 기술국가와의 기술격차는 한국이 6.6년이며 중국은 9.3년으로 한중간 격차는 2.7년이었다. 2018년 기준 세계 최고 기술국가와의 기술격차는 한국과 중국이 모두 3.8년으로 나타나 한중간 격차는 0년이 되었다. 즉,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2008년 2.7년에서 2016년 1.0년으로 빠르게 축소되어 왔고, 2018년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제조 산업(85개) 중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생산비’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은 30개, ‘기술’ 비교우위 산업은 17개에 그친다. 이미 중국 등에 추월당해 생산비 비교 ‘열위’가 된 산업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최근 30개에 달한다.
제조 경쟁력 약화는 수출 경쟁력 약화로 귀결 돼
기술경쟁력 수준을 나타내는 기술무역수지는 미국, 일본, 독일 등이 모두 흑자인 가운데 한국은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무역수지(기술수출액-기술도입액)는 2001년 20.2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최근까지 적자를 지속중이다. 2017년에는 46.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통계 비교가 가능한 2015년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6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미국(419억 달러), 일본(276억 달러), 독일(181억 달러) 등 주요 제조업 강국들은 흑자를 지속중이다. 더욱이 한국을 제외한 제조 강국들은 기술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제품·기술 혁신을 외면한 채 물량에 의존해온 제조업의 관행과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은 준 가공무역형 산업구조 및 박리다매형 생산구조 하에 있다. 준 가공무역형 산업구조에서는 핵심 부품 및 소재와 중요 기술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아 물건을 팔수록 해외로 빠져나가는 부가가치가 증가하는 모습이다. 또한 박리다매형 생산구조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고부가·고기술 시장이 아닌 저부가·저기술 시장에 통용될 수밖에 없다. 중국 시장 붐이 한창일 때 국내 기업들이 (마진이 적은) ‘빨간 고무대야’ 생산라인까지 경쟁적으로 확장했고, 지금도 물량 위주 경영 전략이 국내 제조업의 만성적 모습이 되고 있다. 산업 재편이 요구된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서비스 융합 등으로 제조 상품의 가치사슬 구조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각 제조업의 전방 및 후방 벨류체인(value chain) 상에서 부가가치가 높고, 향후 시장성이 높은 영역으로 산업 재편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반도체 산업이다. 메모리 반도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등의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으로의 진출을 위한 R&D와 사업전략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생태계’에서 ‘혁신을 촉진하는 생태계’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는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부품 및 원자재를 공급하는 수많은 중소 공급업체들로 단단히 얽혀 있는 구조가 고착화 되어 있다. 소위 대기업들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공급업체들에게 납품 공급 단가를 ‘쥐어짜는’ 생태계가 만연해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대기업들이 대량의 박리다매식 물량 수요로 공급업체들에게 압박할 수 있어 왔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고 혁신적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데 걸림돌이 되어온 이러한 생태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고기술의 숙련된 노동력을 양성해야 한다. 박리다매형 생산구조하에서는 사실 고기술의 숙련된 노동력이 요구되지 않기도 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거의 모든 제조업에 걸쳐 현장 투입 인력을 대폭 줄여 노동비를 낮추는 대신, 기계에 투자해 ‘자동화 경쟁’을 추구해 왔다. 최근에는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고, 인공지능과 로봇 등에 기초한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하는 등 그 움직임이 더욱 거세다. 이러한 과정에서 ‘탈숙련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고기술의 숙련된 인재들은 더 많은 대우를 약속하는 외국의 경쟁사로 이동함에 따라, 한국이 고수해 왔던 1등 산업의 경쟁력 격차가 줄어들거나 자리를 뺏기고 있다. 정부는 R&D 투자재원을 확대하고, 신성장동력산업을 더욱 육성해 산업재편을 이끌며, 고기술의 숙련 인재를 적극 양성해야 한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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