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디얼라이언스 오션얼라이언스와 다각적으로 협상을 벌였다. 제가 협상팀에 준 지침은 똑같은 조건이라면 2M에 우선권을 주라는 거였다. 2M이 (현대상선의) 손을 잡아줬던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운 관련 행사에 참석해 한 말이다. 이날 김 전 장관은 현대상선의 디얼라이언스 가입 추진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전 장관은 “결국 2M과 (계약을)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2M은 매년 300~400억원을 우리(현대상선)가 더 손해 보는 조건을 제시했다더라”라고 전했다.
기자는 김 전 장관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2M과 현대상선의 제휴에 대한 평가가 국내 해운업계의 인식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의 생각과 달리 해운업계는 3년 전 해운산업 구조조정 당시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현대상선을 품어준 2M에 호의적이지 않다. 2M+HMM이라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제휴형태로 현대상선을 끌어들인 걸 한국해운을 위한 행동으로 보지 않는 까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상선과 2M의 제휴는 배타적 협력 등이 배제되는 등 일반적인 얼라이언스 개념에 한참 못 미치는 계약형태였음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가 한진해운 공중분해를 결단케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글로벌 선사의 숨은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정부는 국내 양대 원양선사의 통합 등 구조조정의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었음에도 세계 7위 선사의 법정관리라는 역사에 남을 악수를 두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2M의 일원인 머스크는 한국해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재정난을 촉발케한 배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1위 선사는 과감한 초대형선 전략을 통해 국내외 해운시장에서 치킨게임에 불을 지폈다. 2~3위인 MSC CMA-CGM도 초대형선 발주 대열에 합류하며 글로벌선사들의 공급 확대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해운시장은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심각한 출혈경쟁으로 수익성 악화에 신음하던 선사들은 자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한진해운은 우리 정부의 외면 속에 4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세계 3위까지 도약했던 선사가 한순간에 침몰한 사건은 전 세계 해운시장을 경악케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한진해운 사태 이후 2M은 국적선사의 주력 노선인 북미노선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공룡선사의 치킨게임과 정부의 홀대, 금융논리만 고집한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오판 등으로 한진해운을 벼랑 끝으로 내몬 일화는 아직도 해운업계의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김 전 장관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는 등 해운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 파산을 유도한 선사에게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는 발언은 해운시장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해양 행정을 펴왔음을 자인하는 것이어서 많은 아쉬움을 준다.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해운산업에 대한 위정자들의 인식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대목이다.
20척의 초대형선을 인도받는 현대상선은 내년부터 디얼라이언스의 정식 멤버로서 전 세계 뱃길을 누비게 된다.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해운업이 재도약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정부와 공직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올바른 대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또다시 치킨게임에 골몰하는 글로벌 선사들의 저의나 숨은 전략을 모른 채 휘둘림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