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5일 국회에서 열린 인천 중고차 수출단지 클러스터 조성 토론회 막바지, 객석 의견 청취 시간에 첫 번째 질의자로 나선 한 지역주민은 “정말 착잡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그는 “지난 44년간 주민들이 여러 소음과 먼지, 악취를 버티며 지금까지 살았고 이제서야 내항재개발 계획이 나왔는데 여기에 중고차 단지를 조성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관람석의 항만업계 관계자들이 반발하면서 토론회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고, 고성과 욕설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기자는 토론회를 지켜보며 2010년부터 항만, 지역경제기관, 중고차업계에서 목소리를 낸 사안이니 중고차 단지 조성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한 참이었다. 2시간 가량 이어진 토론회에서 모든 주제발표자와 토론자가 ‘인천 중고차 수출단지 조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도 했다. 예상은 마지막에 터진 갈등으로 빗나갔다.
항만과 중고차업계에서는 인천 내 중고차산업이 퇴화할 경우 항만과 지역경제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손실을 입게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인천의 중고차 수출 규모는 연간 25만대로, 국내 중고차 시장의 80%, 인천내항 물동량의 15%를 차지한다.
반면, 지역주민들은 산업 특성상 발생될 수밖에 없는 먼지, 소음 등으로 인한 주거지 피해를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지역시민단체 관계자는 “작년 5월에도 내항에 정박하던 중고차운반선 화재로 주민들이 온갖 연기와 매연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사실 양측은 지난 1월 발표된 내항재개발 마스터플랜을 두고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역사회는 내항이 해양관광과 친수공간으로 탈바꿈 하길 염원하고 있지만, 항만업계는 자동차운반선·3000t 미만 소형선 접안에 가장 적합한 내항의 특수성을 내세워 항만기능 폐지는 어불성설이라며 맞서고 있다. 항만공사나 해수부에서 발표하는 보도자료에는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주민을 위한’과 같은 표현이 매번 나오지만, 지역주민과 항만업계 사이는 아직 멀어 보인다.
토론회를 통해 인천항에 대한 업계와 지역주민 간 의견차를 접하며, 인천 주민들에겐 ‘이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항만분야 취재를 막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건 항만이 국가 물류기간시설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었다. 바다 인근지역 출신이 아니거나 항만산업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라면 항만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체감할 기회는 많지 않다.
현장을 경험하고 산업을 알게 되면서 점차 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인천 역시 마찬가지다. 인천은 항만도시 이전에 수도권 위성도시라는 입지적인 특성이 강하다. 항만을 지역성장의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산보다 상대적으로 항만 친밀도가 낮을 수 있다. 산업시설로 기능하는 인천항이 오히려 바다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아갔다는 인근 주민의 주장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인천항발전협의회(인발협)는 기자에게 “지역사회에서는 내항 물동량이 감소하므로 신항에 기능재배치를 하라고 하지만, 이는 항만에 대해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인천 지역내총생산(GRDP) 추산 결과 인천항이 약 30%를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만업계에서는 익히 아는 이야기겠지만, 일반 주민 중 이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올해 인발협은 항만의 중요성과 영향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소통 강화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해운항만 1번지인 부산도 부산북항재개발 사업 추진 초기엔 지역사회와 수십 번의 협의를 거쳐야 했다. 꾸준한 소통과 이해과정을 거쳐 지역사회의 협력이 수반될 때, 현안 해결과 인천항 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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