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포워딩(국제물류주선)시장의 심각한 업체 난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출물동량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새로운 업체들이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제살 깎아먹기식 운임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업체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일하던 종사자들이 2개의 법인을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국에서 4000여곳의 포워더가 경쟁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지난해 서울시에서만 2400여곳이 포워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한 해에만 100곳이 넘는 기업이 새로 생겨나고 또 문을 닫았다.
업체 난립을 두고 일각에서는 현행 ‘등록제’가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물류산업 촉진을 명목으로 포워더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업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포워더는 물류정책기본법과 관세법에 따라 자본금 3억원과 화물배상책임보험을 갖추면 전국 각 시도에서 개업을 신청할 수 있다.
등록이 손쉽게 이뤄지면서, 포워딩시장은 이전투구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일부 포워더들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화주에게 무작정 저가요율을 제시했다가 빚더미에 올랐다고 하소연한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하루 아침에 폐업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도덕적 해이’도 왕왕 눈에 띈다.
업계가 저가수주의 수렁에 빠지는 점은 십분 이해할만 하다. 포워더들의 물류서비스가 상향평준화된 데다, 신규 진입이 잇따르면서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운임을 제시하는 경쟁자가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대규모 물량으로 우월적 협상력을 자랑하는 대형 화주들의 입찰가는 항상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보니 업계가 차별화로 내세울 수 있는 게 저렴한 운임 정도다.
오죽하면 1980년대에 폐지된 허가제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여기저기서 나올까. 지난해 12월 국제물류협회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운임 안정화의 해결책으로 허가제가 언급됐다.
허가제는 정부가 포워더의 개수를 제한해 사업면허발급을 극도로 억제하는 제도다. 1970년대 허가제 당시 ▲자본금 3000만원 이상 ▲일관선하증권 발행 ▲외국포워더와 대리점 계약 ▲텔렉스 보유 또는 공동사용 ▲컨테이너장치장(CY)·조작장(CFS) 확보 등의 요건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해운항만청에 면허신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주들의 서비스 불만족과 물류비 과다청구 등이 문제로 부각되면서 1987년부터 포워더 설립이 등록제로 대전환을 맞았다.
등록제가 정착한 현재 허가제로 회귀하는 건 자유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허가제로 업체 수를 대폭 줄인다고 해서 운임경쟁을 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고가의 면허장사 등 역기능도 예상된다.
일개 ‘해프닝’으로 허가제까지 언급됐지만 업계가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업체난립에 따른 만성적 폐해는 제도적 보완을 거쳐 해결돼야 하는 과제임은 분명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화제가 된 외식사업가 백종원 대표의 발언은 국내 포워딩업계도 곱씹어볼 만하다. 백 대표는 당시 “미국에서는 새로운 자리에 매장(식당)을 열려면 최소 1~2년이 걸린다. 우리나라는 신고만 하면 바로 할 수 있는 게 문제다”며 자영업 설립요건의 허점과 예비 창업자들의 준비성 부진 등을 지적했다. 씁쓸하게도 창업과 폐업이 자유로운 포워딩업계에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동안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넘어오는 동안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었다. 어떤 제도가 정답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행 등록제 아래에서 시장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설립기준을 강화하고, 몇 년마다 등록을 갱신하는 등 포화상태에 이른 포워딩시장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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