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을 향한 해운업계의 하소연과 푸념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은 해운업에 대한 대출 규모를 크게 줄였다. 투자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해 국내 선사를 대상으로 한 선박금융의 문턱을 크게 높인 것이다.
그렇다고 국책은행의 선박금융 규모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외국 선사에 쏠렸다. 정책금융기관이 2008년 이후 해외 선사에 124억달러 규모의 선박금융을 지원하는 사이 국내 해운사에 투입한 금액은 26억달러에 불과했다.
머스크라인은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6억달러를 지원받아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대우조선해양에서 건조하며 세계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세계 으뜸의 선박 건조 기술력이 외국 해운사의 경쟁력 강화에 오롯이 쓰인 셈이다.
국내 민간은행들의 행보는 더욱 우려스럽다. 최근 열린 ‘해운시황전망 세미나’에서 한국해양대학교 이기환 교수는 해양금융공사 출범을 맞아 시중은행들이 선박금융 참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중은행에서 적극적으로 선박금융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국내 해운조선업이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상업은행들의 해양금융 비중은 국책은행 대비 10% 수준에 그쳐 중국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2007년 3조7000억원을 돌파했던 상업은행의 선박금융은 2015년 3억6900만원으로 고꾸라졌다.
반면 국책은행의 선박금융 금액은 1조1390억원에서 3조7100억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말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의 선박금융 대출잔액은 2조126억원이었다. 이들 은행의 자산대비 선박금융 비중은 0.12%에 불과한 수준이다. 5%대를 기록하고 있는 유럽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해운업에 손을 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선사를 대상으로 한 해운금융은 조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조선 금융에 5조8000억원이 투입된 반면 해운에는 절반도 안 되는 2조5000원이 지원됐다. 유럽 일본 등 해외은행에서는 시황과 관계없이 일정한 등급을 가지고 해운사를 평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권은 시황이 나빠졌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기간산업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해운사들을 외면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숙원이었던 해양진흥공사가 지난달 출범했다. 해양진흥공사의 최우선 과제는 ‘한국해운 재건’이다. 해양진흥공사 주도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민간금융을 활성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불어 정부는 앞으로 친환경선박 발주가 크게 늘어날 점을 고려해 시중은행들이 해운업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책을 강구해야 한다. 해양진흥공사에서 보증 업무를 강화하는 것도 선박금융 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지난해 2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위축된 한국 해운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선박금융의 원활한 공급이 시급하다. 해운과 금융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해운업 재건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시중은행들의 관심이 해운업 살리기로 이어져 해운과 금융이 상생하는 생태계가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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