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중재기구는 해운조선산업에서 국제경쟁이 가능한 인프라가 하나 갖춰지는 것이다. 우리 당사자 사이에 발생한 해사분쟁은 한국에서 처리하고 외국인과의 사건도 절반은 한국에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외국인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도 한국에서 처리하길 바란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지난 5일 열린 해사중재세미나에서 서울해사중재협회(SMAA)를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국내 당사자 사이에서 발생한 해사분쟁을 국내 중재기구를 통해 처리함으로써 외국으로 유출되는 법률비용을 막고, 장기적으로 국부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해사분쟁 사건의 90% 이상이 영국을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재는 3심까지 가는 소송과 달리 단심으로 끝나고 법 적용이 유연한 데다 실무 관행 등이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선박충돌 등의 분야에서 신속하고 저렴한 분쟁 해결이 가능하다. 해운 특수성이 개입된 사건을 선장 출신 등의 해사전문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아울러 중재판정문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신청인은 중재판정문을 관할법원에 제출해 승인 혹은 집행결정을 받은 뒤 집행관에게 제출해 강제집행할 수 있다. 뉴욕협약에 의해 외국법원도 중재판정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판정문은 당사자들의 승낙없이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임의중재는 기관이 개입하지 않고 당사자들과 중재인이 이끌기에 전문적이면서도 저렴하고 신속한 중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분쟁 당사자들이 직접 전문중재인을 선정하기 때문에 중재인에게 지급되는 보수 외에 행정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국의 런던해사인중재협회(LMAA)와 싱가포르해사중재(SCMA)가 대표적인 임의중재기구다.
설립한 지 한 달여 지난 서울해사중재협회도 임의중재기구로 출발을 알렸다. 해사중재인 명부관리와 해사중재인 교육, 중재판정문 관리 등 중재에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대한상사중재원의 기관중재와 서울해사중재협회의 임의중재가 병존하는 체제를 갖게 됐다. 싱가포르도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와 SCMA가 비슷한 구조다.
김 교수는 한중일에서만 통용되는 서렌더선하증권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BBCHP)은 한국에 설치된 임의중재기구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박충돌중재와 같은 특수한 제도 운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재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정병석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싱가포르도 SIAC과 같은 기관중재가 있지만 해사분쟁은 임의중재에 익숙하다는 점이 있어 2009년 SMAC를 설립했다”며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에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서울중재협회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중재 전문가인 서울대 벤자민 휴스 교수가 국제 중재 현황을 소개하는 한편 패트리샤 추아 SCMA 사업개발팀장과 로렌스 테 덴톤스로딕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나와 SCMA와 싱가포르 해사중재 환경에 대해 발표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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